홍국사 남쪽에서 마주쳐서 교전했는데 박진재, 김약진, 노석숭은 각각 그 도당을 인솔하고 하나는 진고개(泥峴)를 넘고 하나는 모래재(沙峴)를 넘고 또 하나는 고달고개(高達坂)를 넘어서 서로 호응하면서 전후로 협공하였으며 최충헌은 어고(御庫)의 대각노(大角努)를 가지고 마구 쏘아 화살이 비오듯 내렸다. 그래서 최충수의 일당은 낭하 문짝을 뜯어서 방패 삼아 막았으나 견디지 못하고 드디어 괴주하니 최충수가 말하기를 “오늘의 패배는 천명이다. 형은 임진강 이북에서 살고 나는 임진강 이남에서 살겠다”라고 하면서 즉시 오숙비 준존심 등과 함께 말을 달려 보정문으로 가서 수문(守門) 군사를 죽이고 성문을 나와 장단(長湍) 나루를 건너 파평현(坡平縣), 금강사(金剛寺)에 도착했을 때 추격한 사람이 잡아 죽이고 그의 수급을 서울로 전송(傳送)했다. 최충헌이 소리 내어 울면서 추격한 사람에게 말하기를 “나는 사로잡으려고 했는데 어찌 갑자기 죽였는가?”라고 하고 사람을 보내서 시체를 거두어 장사해 주었다.

왕이 논공(論功)하고 유사(有司)에게 조서를 내려 최충헌의 화상을 벽 상에 그리게 하고 그 부모에게 작호(爵號)를 추가하였으며 최충헌은 지주사 지어사대사(知奏事知御史臺事)로 승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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