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9번 글에 댓글 달다가 질문과 상관없는 내용이 너무 길어져서 따로 올려요.

지리 전공자의 입지가 어중간한 것은 어중간하게 공부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전공의 폭이 넓은 만큼 헐렁하게 학부 생활을 흘려보낼 수 있는 위험도 있는것 같습니다. 지리학 전공의 이점을 얻지 못했다고 말할 수도 있겠네요. 우리나라에서 지리학과의 이름값이 별로라는 느낌은 들지만 그 정도 불리함은 감수할 만한 매력이 있습니다.

저와 같이 일하는 분들은 제가 지리학을 전공했다고 몇 번 말해줘도 자꾸 까먹습니다. 까먹는다는 것은 지리학의 위상을 볼 때 아쉬운 부분이기도 하고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어떤 관문을 통과할 때는 타이틀이 중요할 수도 있지만 일을 시작하면 실력으로 판단하잖아요. 이 실력이 암기한 전공지식만으로 채워지는 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어느 분야든 현대의 지식근로자로 살아가면서 한번 배운 기술이나 지식을 평생 써먹을 수 있을거란 기대는 안하는게 좋습니다.

저는 과제나 답사를 할 때 현상을 보고 의미있는 문장을 뽑아내는 훈련을 한 것이 업무를 보는데 도움이 되는것 같습니다. 교수님들이 '지리적 시각'이라고 말하는거요. 이게 은근히 힘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공학 분야나 자연과학의 다른 전공을 한 사회초년생들은 이런 훈련이 덜 된 것 같더라고요. 산이나 강에 가서 암괴류나 배후습지를 가리킬 수 있는건 재미있는 일이지만 이건 지리적 시각이 아닌것 같습니다. 지형학적인 식견으로 볼 수는 있겠네요. 검증되지 않은 개인적인 생각이라 위험한 말일 수도 있겠지만, 지리적 시각은 우리가 활동하는 공간에서 나타나는 현상들을 꿰뚫는 눈이라 생각하고 있어요. 속세에서 말하는 통찰력의 일종으로 볼 수 있으려나요. 얘네들을 통으로 꿰느냐 비슷한 것만 골라서 꿰느냐 하는 것은 지리학 방법론에서 중요하게 거론되는 부분인데,  지리학 전공자라면 이런 것들이 충분히 훈련되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띄엄띄엄 놀러오다가 갑자기 떠벌리는 이유는 더 이상 지리학 전공한 분들의 자조 섞인 말을 듣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가 뭘 잘 해서 할 수 있는 말은 분명 아니고요. 각자 본인의 부족함과 배움의 한계를 얘기할 수는 있어도 원래 그런 학문이야라는 식으로 재단해버리는 것은 지리학의 본질을 왜곡시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디씨의 장점은 한없이 가볍다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지리갤은 지리갤 나름의 정체성이 있고 이제 막 공부를 시작하려는 분들도 많이 보는듯 하여 걱정스런 마음에 적고 갑니다. 특정인을 까려는 목적으로 쓴게 아니니 오해 마셔요;;;짤방이 없어서 죄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