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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갤러리에 오는 사람들은 누구일지 생각해 본다. 1) 지리학 전공자들이나 2) 지리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 그리고 3) 나광팔과 광고 글쟁이를 위시한 프로파간더 정도이지 않을까 싶다. 나는 꽤 오랜 시간 동안 지리갤러리에 흔적을 남겨왔고, 맨 처음의 분류에 따르자면 카테고리 2에 속할 수 있을 것이다.

 

나 역시 어릴 적부터 지도를 매우 매우 좋아했었다. 사회과부도를 끼고 사는 건 당연한 것이고, 온 갓 지도를 섭렵하면서 도시의 위치, 강줄기의 모양, 국경선들, 나라와 수도를 즐겨 외우고 다녔었다. 6차 교육과정의 중학교 사회과목의 1학년 1학기 부분은 지역별로 접근한 세계지리였다. 공부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사회는 100점이었고, 신나 했었다. 6차 교육과정의 중학교 사회과목은 그 다음 1 (1학년 2학기, 2학년 1학기)동안은 세계사, 그 다음 1년은 정치·경제였다. 그리고 3학년 2학기 때 주제별로 접근한 세계지리가 다시 찾아왔다. 하지만 이 때는 그리 신나지 않았다. 학습할 내용을 몰라서, 성적이 떨어져서가 아니었다. 그 사이 털이 나면서, 나름 진지한 고민을 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강줄기를 외우고, 도시와 수도와 국가와 국기를 외우고 있는 것이, 과연 나 자신을 먹여 살릴 수 있는 방법이 될 수 있는가. 진로를 고민하기 시작했었던 것이다.

 

나름 살펴 보았던 어른들의 직업의 세계에서, 그런 지식은 무의미해 보였다. 무엇보다, 그런 지식이 필요할 때는, 불확실한 내 기억보다 훨씬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내가 무엇보다 좋아했던 바로 그 지도를 통해서 취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다. 이것으로는 호구할 수 없겠구나.

 

고등학교에서 나는 진로를 지구과학에 관련되는 쪽으로 바꾸었다. 지리와 함께 천문 역시 어릴 때부터 좋아했었기 때문에, 꿈을 버리고 현실과 타협했다는 자괴감은 들지 않았다. 그리고 이후로도 두어 차례 진로를 미세 조정하여, 지금은 천문과 지리의 중간 즈음에 위치한다고 할 수 있을, 원격탐사를 연구하고 있다.

 

지리를 전공하시는 분들에게 “이것으로는 호구할 수 없겠구나”하는 결론은 좀 도발적으로 들리실 것 같아 좀 두렵고, 사실 그 이유 때문에 지난 수 년 동안 머리에 떠돌던 생각을 구조가 갖춰진 글로 옮기기 주저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최근, 힌트와 카말의 글에서 용기를 얻었다. 지리학을 전공하는 분들께 문외한이 드리는 질문이라고 봐 주고, 너무 까칠하지 않게 답변해 주면 좋겠다.

 

학부를 졸업하고, 대학원에 진학하여 연구를 배워가면서, 연구의 본질에 대하여 고민해야 하는 고비들이 수 차례 찾아왔었다. 그 질문에 대하여, 10년이 지난 지금 현재 내가 마련한 대답은 이렇다. 학문은 “세상을 설명하는 합리적이고 체계적인 지식”이고, 연구는 “세상이 제기하는 질문에 합리적이고 체계적으로 대답하기 위하여 학문을 확장하는 일”이다. 지리학에 대하여 가지는 질문이 그것이다. 지리학은 어떤 질문에 대답하는 학문인가? 지리학이 공간과 관련된 질문에 대답을 한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다만 의문이 생기는 지점은, 공간에 대한 어떤 질문이 주어졌을 때, 과연 지리학만이 체계적이고 합리적인 답을 할 수 있는 가이다. 때로는 다른 학문이 공간에 대한 질문에 지리학보다 더 체계적인 대답을 내 놓는 것 같기 때문이다.

 

대학교에서 놀랐던 것 중에 하나는, 문과 사회과에 있던 기후학에 관한 내용을 대기과학이 다루고 있는 것이었다. 특정 기후대의 공간적 분포를 기술하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대기의 평균적 흐름에 대한 총체적 설명을 목표로 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 강력한 설명의 틀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해양에서의 해류 또한 마찬가지이다. 산맥의 지구적인 분포는 지구물리·지질학이 설명했다. 비단 자연지리 뿐만이 아니다. 대표적으로 교통체증에 대한 설명은 모래의 물리학 같은 분과에서 하고 있다.

 

201212월에 포레스트와의 댓글 토론(원 글은 펠릭스호세 작성)에서도 나왔던 부분인데, 지구과학은 물리적, 화학적, 수학적 방법을 동원해서 문제를 해결(질문에 답)하려는 것에 대하여 전혀 거부감이 없다. 아니, 그러한 확립된 방법론을 적용하지 않고 문제에 답을 했다면, 그 방법이 옳은 방법임을 보이기 위하여 엄청난 에너지를 쏟아야 할 것이다. 왜 지리학은 그러한 방법론의 도입에 그렇게도 주저하는지, 아니면 지리학만의 방법론이 있는 것인지에 대하여 알고 싶다. 최근 힌트의 글에 대한 포레스트의 반응에서도 느껴지는 것이, 지리학만의 무언가가 있다고 주장은 하는데, 그것이 무엇인지는 여전히 불명확하다. 포레스트의 의견대로 자연 쪽으로만 더 깊이 공부할 학생은 지구과학과로 진학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면, 지리학과에서 배우는 자연지리는 어떤 의미가 있는지, 또는 어떤 방식으로 의미를 창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혹은 더 직설적으로 말해서 지구과학을 배경으로 자연지리를 공부한 사람이 인문지리까지 통합해서 연구를 한다면 그 때 지리학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좀 더 명확한 식견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는 아쉬운 점, 그리고 거기에서 파생된 질문이다. 2012 7월 경에 있었던 낙동강 상류 산각말단면 쓰레드에서 나왔던 부분인데, 지리학 하시는 분들이 시간을, 따라서 속도를, 거의 고려하지 않는다는 느낌적 느낌을 받았다. 지질학이 단순히 암석의 특징에 대한 기술에서 벗어나 체계를 갖춘 학문으로 탈바꿈하게 된 계기는 방사선 연대측정법이 확립되어서 시간을 정량적으로 기술할 수 있게 된 다음이다. 지질학에서 제임스 허턴의 지사학 5대 법칙은 여전히 불문율이지만, 그 이후에 도입된 정량적 방법론들도 모순 없이 지질학에 기여하고 있다. 지리학에 대한 게시물들을 보면 공간에 대한 연구임을 반복적으로 강조하고 있는데, 내가 느꼈던 지리학 하는 분들의 시간에 대한 무관심이, 단순히 혹은 우연히 그 때 토론 참여자들의 불찰이었는지, 아니면 지리학 자체가 시간에 대하여서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인지 의견을 듣고 싶다.

 

요약하자면 궁금한 점은 다음과 같다. 1) 지리학의 방법론은 무엇이고, 그것이 아직까지 (다른 방법론과 비교했을 때) 유리한 접근법인가? 다른 방법론들은 지리학의 전통적 방법론과 지리학이라는 지붕 아래에서 공존할 수 없는가? 2) 지리학에서는 시간을 어떻게 이해하는가? 즉, 시간을 어느 정도 정량적으로 다루는가? 사실 질문 1)2)를 보다 솔직하고 간결하게 표현하면 이렇게 쓸 수 있을 것 같다. 수학과 물리, 화학을 배우지 않고, 자연지리를 공부하는 것, 혹은 총체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보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