흠... 그냥 재획 하다가 멍하니 볼거도 없고.. 관심 있는거도 없고.. 하다가 글을 끄적여본다..
일단 제목은... 어린 시절에 ‘아빠의 흙 묻은 휴대폰’ 이다.
일단 글을 쓸줄 도 모르고 그냥 두서 없이 내가 생각 나는 대로 덩어리 채 적어본다….
내가 자아를 가지고 세상의 많은 것을 보고 듣고 생각하던 시절의 기억은 5살 때부터 기억인 거 같다. 그 시절에 우리 집 동네의 길은 대문 밖을 나가면 삼거리 가 있었고, 그 시절엔 길이 다 언덕이 가팔랐던 거 같다. 왼쪽으로 올라가면 보건소가 나오고 오른쪽으로 가면 읍내로 갈 수 있었고 아래로 내려가면 소방서가 나오고 터미널이 나온다. 그래서 항상 주소를 택시기사나 누군가에게 말할 때 “소방서 위에 삼거리요~” 라고 말하면 대부분 다 알아 들으셨던 거 같다. 그 삼 거리 갈림길에 가운데 쪽에 항상 할머니들이 모여서 수다를 떠셨다. 지금으로 따지면 약간 정자 같은 곳에서 어르신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얘기하시는 거처럼 그런 곳이 있었는데 거기 앞을 지나가면 할머니들이 “이름이 뭐야? 어디 살아? ” 이렇게 물어보시고 “어디 집 둘째야?” 이런 식으로 얘기하시고 나는 어릴 때 생각해 보면 매우 소심했던 성격이다. 그런 관심을 받고 모르는 사람들이 물어보고 질문하고 대답 했던 걸 두려워했었다.
약간 긴장 이랄까? 내가 모르는 걸 물어보면 어떡하지? 이런 생각을 가졌었다. 어릴 때부터 나는 완벽 주의자 같은 성향을 지녔던 걸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그런 부분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그렇게 살다가 어느 날 우리 집은 마당이 제법 넓은 편이었고, 밭도 넓은 편이었다.
그래서 그 당시에는 할머니는 없었고 할아버지만 살아 계셨었고, 우리 집은 2층 단독 주택 집 이였다. 나는 1층에 살았고 2층은 작은 아빠네가 살고 있었다. 그래서 밭 일을 하거나 뭔가 작업을 하면 다 나와서 돕는 그런 구조였다.
유난히 햇살이 뜨거웠던 오후, 밭 일하다가 아빠가 밀짚모자를 쓰고 수건을 목에 두르며 땀을 닦고 나에게 다가왔다. 아빠의 손은 마트나 편의점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빨간색 목 장갑 이었고 거기엔 흙이 잔뜩 묻어있었는데, 휴대전화를 내밀며 이미 중국집 “풍운각”이라는 곳의 번호가 찍혀 있었다.
나는 갑자기 심장이 두근두근했다
.
그리고 아빠는 당연하게도 통화 버튼을 눌렀고, 바로 수화기 너머로 “풍운각입니다~” 이 소리가 들리고 휴대전화를 내 귀에 들이댔다. 아빠가 그리고 “ 짜장면 하나, 콩국수 두 개” 라고 반복해서 얘기했다. 나는 머릿속이 하얘졌고 주소는커녕 내 이름조차 기억이 나지 않았다.
중국집 점원은 “뭐로 드릴까요?”라고 얘기했다.
나는 “저……. 그…. 짜장면 하나랑요, 콩국수 두 개 주세요.” 라고 얘기했다.
점원은 “어디로 드릴까요?” 라고 대답했다.
“저…. 그…….”
나를 쳐다 보는 아빠의 얼굴은 답답해 했다.
나는 주소를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 당시 나이가 5살~6살 정도 되었던 거 같다.
아빠가 왜 이걸 나에게 시켰는가에 관해 얘기하자면 우리 부모님은 양쪽 다 청각 장애인이시다.
그런데 선천적인 청각장애가 아니고 후천적 장애로 되신 거고 아버지는 어렸을 때 아프셔서 주사를 맞는데 갑자기 부작용으로 청력을 잃었다고 한다. 나도 정확한 사유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리고 엄마는 고열로 인해서 청력을 잃으셨다고 한다. 이 부분도 정확한 사실을 들은 건 아니고 대충 이런 느낌으로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 해보니 나는 왜 이런 거도 관심을 안 가지고 모르는 거지? 라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나는 당황해 휴대전화 전화를 그냥 끊었다.
아빠의 기대 섞인 눈빛이 실망으로 변하였고, 나에게 화를 냈다. 왜 끊냐고.
나는 오히려 반대로 아빠에게 화를 냈다. 왜 나한테 이런 걸 시키냐고.
나는 갑자기 눈물이 차올랐다. 무언가 무서웠던 거 같다.
아빠가 다시 전화를 걸려고 하자 나는 도망갔다. 그때 전화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나 빼고 아무도 없었다. 아빠도 땀 흘리고 힘들었는지 배달을 시키려 한 것일 것이다.
그러자 결국 아빠는 직접 오토바이를 타고 가게에 가서 봉지에 음식들을 포장해서 직접 가져오셨다.
아빠가 목장갑을 벗고 복장 그대로 오토바이를 타고 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는데 그 뒷 모습은 가족들에게 맛있는 걸 먹게 하기 위해 자기도 솔직히 원래 일반 사람 이였고 다른 사람들에게 자기의 이런 말하는 거나 목소리 이런걸 나타 내는걸 많이 창피 하실텐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정말 가장 이란건 이런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함을 받으시고 아버지가 잘하셨던 거는 항상 친근하게 정확한 말을 하지는 못하지만, 항상 웃으면서 인사를 잘하시고 남들처럼 마주치면 웃으면서 “어디가?” 이러면서 인사를 하는 걸 좋아하신다. 아저씨들은 그런 걸 좋아하시는 거 같았다. 그래서 진짜 친하신 분은 그냥 전화해서 일반 사람은 잘 못 알아들을 정도의 말로 “짜 장면 2개 주세요” 이렇게 또박또박 얘기하시고 제대로 상대방이 들었는지 자기가 제대로 말한 게 맞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이 나에게 “맞아? 맞아?” 이렇게 물어보시고 그랬었던 기억이 있다.
성인이 된 지금, 가끔 배달 음식을 시킬 때면 그때 아빠의 굽은 등과 흙 묻은 손이 떠오른다. 그건 단순한 배달 전화가 아니라, 세상과 소통하고 싶었던 아빠의 간절한 손짓이었지 않았냐는 생각이 든다.….
물론 지금은 아무렇지 않게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고 말도 잘하며, 서비스 일을 많이 하다 보니 서비스 톤의 말투가 가끔 나도 모르게 나올 정도고 전화 응대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사원에게 표창 하는 상을 받은 적도 있다.
요즘 들어 아빠가 나이가 드시고 지금 65세이신데 뇌출혈이 한 번 있으셨고 약을 안 먹으면 발작 증상을 일으키신다. 청각도 안 들리시고 뇌출혈 후유증으로 인해 성격도 조금 화가 많아지시고 급해지시고 그렇게 변하신 모습을 보면 정말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심지어 후각 미각도 코로나 때 이후로 소실된 상태여서 지금은 약간의 단맛만 느끼는 상태이시다.
그래서 청각도 안 들리고 맛도 안 느껴지고 냄새도 안 나는 상황이라 정말 삶의 낙이 없는 상태이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화를 내고 그렇게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해도 우리 가족들은 어쩔 수 없다는 생각으로 그냥 보살피기로 해드리고 있다.
그래서 아빠가 솔직히 가족들에게 스트레스를 많이 주고 있는 거도 사실이지만…. 가장 힘든 건 가장 가까이에 있는 엄마가 아닐까 싶다.
그냥 요즘 아버지 일로 계속 돈이 들어가고 스트레스 받고 하는 상황이 계속 일어나고 있는데 미워도 결국 아빠는 아빠 이지 않을 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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