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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한기수 후임으로 사회에서 락밴드를 하던 애가 들어왔다.

가명인 철호라고 소개해두겠다.

철호는 목소리도 좋았고, 몸집도 다부지고, 얼굴도 잘생겨 참 해병감으로 보였다.

하지만 철호는 유약하고 심성이 순박해 자신 물건을 긴빠이당해도 히히 웃고 말아버리는, 해병보다는 땅개에, 땅개보다는 사회인에 어울리던 친구였다.

철호는 대학도 좀 되는 학벌이었다. 꽤나 이름있는 대학교의 실용음악과. 그의 학벌을 들었을 때, 소대원 모두가 "이열~" 하면서 놀라던 모습이 기억난다.

그는 해병대에 온 이유를 아버지가 시켰다고 답했다. 그럼 그렇지, 철호같은 애가 자기 발로 해병대에 올 리는 없었다.

이런 철호를 유독 못마땅해하던 한 선임이 있었다. 가명인 영수정도로 소개해 두겠다.

영수는 고졸이었고, 항상 화가 나 있었으며, 노가다 일용직을 전전하며 살고 있었다. 그나마도 가는곳마다 싸움을 일으켜 소문이 나 더이상 고용되지 않자, 이렇게 된거 군대나 가야겠다며 해병대에 들어왔다. 가장 빨리 입대되는데가 해병대였다고 말했다.

그는 '오도'의 집합체와도 같은 인물이었다. 어길 수 있는 규칙은 모두 어겼으며 부릴 수 있는 꼰티는 모두 부려댔다. 그래도 아무도 뭐라하지 못했다.

그가 선임이었으니까.

그는 심지어 그 해병대 내에서도 몰상식한 행동을 계속 저지르곤 했었다. 그는 상상을 초월하게 무식했다. 사회 생활은 어떻게든 하고, 구구단까지는 알았지만 정말 이걸모른다고? 싶은걸 몰랐다. 그는 삼일절에 왜 쉬는지 몰랐으며, 조선시대가 무슨시대냐고 물었고, 물이 끓는 온도가 100도인걸 신기해 했고, 물 1리터가 1킬로그램이라고 하자 거짓말치지말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런 그에게, 철호는 아니꼬운 대상이었다.

철호가 처음 전입온 날, 철호가 사회에서 노래를 했다고 하자 다들 이야~하고 감탄하는 분위기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영수는 철호를 괜찮게 봤었던것 같다.

다음날, 영수는 철호를 불러다가(맞선임인 나도 그 자리에 함께 있었다)"노래한번 불러봐라"하고 걸쭉한 경상도 사투리를 섞어 명령했다.

철호는 콜드플레이의 '비바 라 비다'를 멋들어지게 뽑았다. 그러나 영수의 표정은 구겨졌다.

"뭐꼬 아쎄이, 지금 내 앞에서 아는척하는기가? 한국노래로 뽑아보래이"

철호는 다시, 럼블피쉬의 '비와 당신'을 아까보다도 멋있게 불렀다.

그러나 영수는 다시 표정이 구겨졌다.

"뭐 이상한 노래만 부르노, 아는 노래로 뽑아보래이"

이는 철호가 동요를 부를 때까지 반복되었다. 영수는 중간부터는 아는 노래인것 같았지만, 계속 반복했다. 꼰티였다.

철호는 세상에서 제일 슬픈 '산토끼'를 부르고 있었다.

그날 밤, 철호는 진짜 꺼이꺼이 울었다. 내가 데리고 나가서 울어도 좋다라고 하자마자 정말 크게 울었다. 큰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던 성대에서, 큰 울음소리만이 나왔다.

영수는 그날 외에도 계속해서 철호를 괴롭혔다. 자기보다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을 괴롭힌다는 저열한 쾌감이 영수에게 마약처럼 다가왔다.

나는 매일 밤 철호가 우는 꼴을 봐야했다. 그러나 나도 아쎄이인 마당에 뭘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철호가 불쌍했지만, 나서면 나는 '기열' 이었다. 해병대는 그런 법이었고 나는 철호를 위로하는것 외엔 할 수 있는게 없었다.

날들이 지나가고, 철호도 더 이상 울지 않게 되었다. 영수의 괴롭힘도 어느정도 견딜만큼 철호의 심성도 굳어갔다.

그러나 철호는 나에게, 반드시 복수할거라고 이야기했다. 영수가 사회에 나가든, 어쩌든 간에 반드시 복수하겠노라고 말했다.

그날 철호의 표정을 난 아직 기억한다.

우리 대대엔 여자가 한 명도 없었다. 그래서 대대 장기자랑 시간에는 별 이상한 장기자랑이 다 나왔다.

알몸으로 고추를 빙빙 돌리면서 '코끼리헬리콥터'라고 하던 녀석, 환복을 5초 안으로 하는걸 보여주면서 '변검' 이러는 녀석, 콜라 1.5리터를 트림 없이 원샷한 후, 십초를 센 후 모든 가스를 트림으로 내보낸 후 '해병사자후' 라고 하던 녀석, 직접 만든 장치로 담배 한 갑을 동시에 피운 다음(어떻게 살아있는지는 아직 모르겠다)초대형 도나쓰를 만들던 녀석... 아직도 기억나는건 그 정도고 별 장기자랑이 다 나왔고 대대장만 웃기면 그만이었다.

일년에 두번 있었던 장기자랑(설/추석)시간이 돌아왔다. 설날이었다. 철호는 장기자랑 무대에 나가서 노래를 부르기로 했다.

영수는 또 철호에게 "너 나가서 동요 부르래이, 안부르면 죽이삔다"라며 철호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철호는 고민하다가, 동요를 불러도 다른 선임에게 죽고, 동요를 안불러도 영수에게 죽는다면, 자존심을 지키기로 했다.

철호는 퀸의 '위 윌 락 유' 를 부르기로 했다. 이왕 영수 말을 안 들을거, 그가 모르는 노래를 부르고 싶다는게 이유였다. 철호 나름의 소소한 복수였다. 철호는 해병대에 맞게 개사해서 부르기로 했고, 개사 작업은 내가 조금 도와주었다.

시간은 흐르고 장기자랑 당일날이 되었다. 해병진기명기들을 관람하고, 철호의 차례가 되었다. 철호는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그리고 가장 하이라이트인 'we will we will rock you' 부분을 부르기 전에, 크게 외쳤다. "다같이!" 그리고 노래를 불렀다.

"we will we will fuck you"

fuck 한마디에 분위기가 달아오른 장기자랑대회는 집단떼fuck장소로 변했으며, 장교, 부사관, 병 할것 없이 서로 전우애를 나누는 기합찬 장소가 된것이 아닌가!

철호는 그 상황에서도 꿋꿋이 노래를 부르니, 여간 기합인게 아니었다. 모두들 노래를 따라 부르며 전우애를 나누고 있었다!

그러나 영수는 노래를 따라부르지 못했고, 영수가 노래를 따라부르지 않는것을 발견한 해병대원들은 영수를 집단폭행해 전치 6개월의 상해를 입혔으며, 평생 인공항문을 달고 살아야하게 만들었고, 제 16기 치핵을 온몸에 돋아나게 만들었으니, 가히 기합이었다.

그날, 스테이지 위에서 집단떼씹을 지휘하던 지휘자 철호는 아직도 내 마음의 해병카라얀으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