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1943년, 자랑스런 대한민국 해병은 물론 한국이라는 국가마저 존재하지 못했던 시절
개씹샹동구릉내나는 악습은 '일본 해군 육전대'의 이름으로 전통처럼 이어져 왔다는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진정한 해병은 얼마 없을 것이다.
해군 육전대는 당시 엘리트 코스를 밟은 40년대 일본 해군 기준에서도 기열찐빠를 몰아넣던 곳으로
다만, 그 악바리만큼은 대단하여 육군에게는 질 수 없다는 심정으로 각종 상륙작전에 앞장서곤 했다.
이후 1945년 대한민국은 광복을 맞이했고 냉전의 혼란기 속에서 해병대를 창설했고,
마땅히 뽑아 넣을 자가 없던지라 일본 해군 육전대 출신이 창설 멤버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지금 이 자리를 빌어 그 창설 멤버 중 어떤 곳에도 기록되지 못한 전사, 오도기리(父切) 군조의 전설적인 이야기를 풀어볼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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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은 덕출, 집안 대대로 별 볼일 없던지라 성은 없으며 셋째로서 소일하는 사내가 있었다.
가난은 지독하게 싫었고, 수탈 받는 현실에 분노했지만 만주나 중원으로 건너가 독립에 투신할 용기는 없는 자였다.
무더운 7월 논밭의 거름냄새가 진동해 잠 못 이루는 날, 덕출은 원두막에 누워 생각했다.
'육시럴, 이놈의 가난도 지긋지긋하고 내지로 넘어가 한탕하면 더이상 비국민으로 살 필요도 없겠지?'
어처구니 없는 생각에 다다른 덕출은 형제들이 고생스레 몇년을 모은 돈을 긴빠이쳐서 그날로 일본 밀항에 올랐다.
일말의 죄책감 없이 그저 말로만 듣던 스시와 오니기리를 잔뜩 먹을 생각에 부푼 가슴을 안고 도착한 일본
도착 첫날부터 항구의 일본인들에게 다구리를 맞으며 나라 없는 설움을 한껏 느낄 수 밖에 없었다.
'문제는 이름이다. 내가 내지인과 같은 이름을 가지면 그들도 나를 국민으로 인정할 것이다.'
덕출은 퉁퉁부은 눈시울을 붉히며 이를 갈았다.
가난이 싫었다. 그리고 그의 가족들도 싫었다.
형제들이 일본놈들의 압제 속에서 힘겹게 모은 돈을 긴빠이칠 때도 일말의 죄책감 없던 그였다.
'그래, 난 반도에 남은 가족과 민족 모든 것과 연을 끊고 새로 시작할 것이다.'
'아비 부(父), 끊을 절(切), 성은 부절(오도기리)로 하고 그저 셋째였으니 흔하디 흔한 사부로(三郞)로 하자'
1943년 무더웠던 여름, 이름 모를 일본의 어느 항구에서 덕출은 '오도기리 사부로'로 다시 태어났다.
다음날 그는 자신을 구타했던 일본 항구 노역원들을 끌어다가 훗날 원산폭격으로 불릴 자세로 오도기합을 주고 유유히 떠나갔다.
그는 어설픈 일본어로 이 사람, 저 사람 붙잡아가며 일본 군대에 입대할 방법을 물었다.
누가 보아도 엉성한 꼬라지에 기열찐빠 아우라가 풀풀 나는 일본 아쎄이에 그들은 하나같이 '일본 해군 육전대'를 추천했고
그곳이 어디인지 알 일 없는 오도기리 사부로는 무턱대고 지원서를 내러 갔다.
일본군 내에서도 모나기로 소문난 일본 해군 육전대에는 같은 조선인 출신들이 적지 않았고,
오도기리 사부로는 일본놈들도 아닌 같은 조선인 오장(대한민국 병장과 동일)들에게 연일 구타와 끔찍한 악습을 견뎌낼 수 밖에 없었다.
끊임없는 똥군기 속에 오도기리는 이를 갈며 다짐했다.
'저 조선인 오장놈들 가만 두지 않겠다. 오장보다 높은게 군조였다지, 반드시 영미와의 싸움에 이겨 군조가 되어 본때를 보여주겠다.'
어느새 흘러빠진 덕출은 사라지고 악과 곤조만이 남은 오도기리 사부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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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흘러 1944년, 전황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일본의 패망은 기정사실과 다름없었으며 미군은 연합함대를 격파, 태평양의 요충지를 점거하며 다가오고 있었다.
모두가 기피하기로 유명한 남양군도로 자원한 오도기리,
1년간의 육전대 생활에서 오도기리는 일본어에도 능통하였으며, 나름 소대의 동료들과도 우정을 다질 수 있었다.
쿠소구에 긴따로, 니쿠모토 야스히로 이 둘은 오도기리와 전우애를 나눈 가장 특별한 동료였고
비록 개명으로 각자의 조선 이름은 알 수 없었으나 특유의 기합 가득한 자세로 이 셋은 어딜가나 함께였다.
아아 자랑스런 대한민국 해병들이여,
비록 원통하지만 그 시작의 부산물들이 일본 해군 육전대인 것을 어찌하리까
역사의 소용돌이 속, 각자의 사정으로 모인 오도기리와 그의 동료들의 이야기를 앞으로도 기대해주시길...
- (실제) 대한민국 해병대 최초 창설 당시 초대 사령관은 만주 간도특설대 출신, 주요 자원으로 일본 해군 육전대 출신을 대거 기용.
- (실제) 긴빠이, 곤조, 항고 등 다양한 해병 용어는 당시 일본 해군 육전대 출신들이 쓰던 말을 그대로 이어 쓴 것임.
반박 시 당신들 말이 맞고, 문제 시 자삭, 재미로 쓴 것이니 그저 재미로 받아주시길 :)
야로... 키아이!
쿠소구라에
악!
개재밌네 ㅅㅂ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