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주체 110년(2021년), 무더운 여름이었다.
"신병, 이것 좀 보라우!"
"하급병사! 고성춘! "
고개를 들어 쳐다보니, 내가 가장 존경하는 선임해병 중
한분이셨던 무모륙 해병님이셨다.
무모륙 해병님의 손에는 로동신문이 들려있었고,
그 로동신문 속에는 문천군 소식으로 보였는데,
문천군 군청 식량창고에 이번년도 수확한 강냉이가 들어왔다는 기사와 사진이 있었다.
'존경하는 최고령도자 해병오겹살 동지 만세'
굉장히 많은 양이어서,
내래 여쭤볼 수 밖에 없었다.
"혹시 저희에게 보급되는 것인지 여쭤봐도 괜찮겠습네까? "
"아아, 기뻐해라 신병! 그렇다!"
아! 2년 간의 고난의 행군 뒤 드디어 첫 식량 보급을
받는것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었다.
로동신문 속에는 제24해상저격려단에 보급된다는 어떠한
내용도 있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런 의문을 가진 나의 표정을 보신 무모륙 해병님께서는
"걱정할 것 없네! 아직 공식적으로 발표가 안났을 뿐이지비.
오늘 밤에 문천군 창고를 찾아가 우리의 정당한 보급품을 찾아가고, 성대한 잔치를 열어줄 생각이네. 같이 가겠나 신병?"
라고 말씀하셨다.
잔치라니,, 감격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시간이 지나 밤 11시가 되었고,
내래 무모륙 해병님께서 말씀하신 장소로 향했다.
그곳에는 목탄차 한대와 무모륙 해병님, 강령술 해병님,
박히민 해병님, 그람정 해병님 등 여러명의 로도
선임해병님들이 계셨다.
" 시간이 없다 신병! 날래 목탄차에 탑승하라! "
라는 말과 함께, 나는 성급히 목탄차에 탑승했다.
그렇게 8명의 해상저격려단원을 태운 목탄차는 부대를 빠져나가
한적한 시골길을 하염없이 달리기 시작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문천군 중심지에
들어서고 나서야 목탄차는 멈췄다.
선임해병님들은 일사불란하게 검은색 비닐과 되놈제 입마개를 착용하고, 한손에는 두꺼운 나뭇가지 혹은 88식 보총, 대대기관총을 챙기시는 모습이었다.
내래 저것이 잔치와 무슨 상관이 있나 궁금했지만,
해상저격려단의 행동에는 이유가 있다는 철칙이 생각이나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때, 저 멀리 창고가 눈에 띄었다.
공화국에는 없고 자본주의 돼지국가에만 있는 강도, 좀도둑이 두려워 자물쇠를 채워놨다는 사실에
내래 너무나 반동적이라 생각하여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그 때 였다.
목탄차를 운전하고 계시던 박히민 해병님께서
갑자기 풀악셀을 밟더니 급발진을 하시는게 아닌가?
하지만 목탄차는 제 속도를 내지 못했고,
끼익! 콰앙!
하는 소리와 함께 창고문과 목탄차는 충돌했다.
창고 문은 목탄차에 의해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은 것처럼 멀쩡했지만
어느 순간 문 경첩이 삭아버렸는지 갑자기 문이 무너졌다.
그 장면을 본 무모륙 해병님과 강령술 해병님은
아직 완전히 무너지지 않은 문에 다가가 보총 개머리판과 기관총 총구로
창고 문을 완전히 부셔버렸고
그람정 해병님은 그 장면을 목격한 로동단원으로 추정되는
반동분자 3명을 붙잡아 순식간에 생매장 시켰다.
식량들을 죄다 목탄차에 싣고,
목탄차는 그렇게 아무일 없다는듯이 다시 부대로 향했
으면 좋으련만 훌러빠진 목탄차가 고작 강냉이 몇 포대에 퍼지는 바람에 결국 인력과 손수레로 싣고 와야 했다.
강냉이를 가지고 오는 동안 나는 강냉이 포대를 확인하며
식량의 정체를 파악했다.
'이북 동포 돕기 가축 사료용 옥수수'
남조선 괴뢰도당놈들이 어려운 형편에 보내준 것이었다.
미제의 압박에 시달리는 남조선의 동포들이
어려운 형편 와중에도 공화국을 도와주려 하다니..
감동이 눈물로 차올라 눈앞을 뿌옇게 만들었다.
부대에 도착한 우리는 잔치를 거행하기 위해,
강냉이 포대들을 모두 쌓아놓고
갯수를 세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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