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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행성에서 있던 일이다. 당시는 자대배치를 받자마자 전투에 투입될 정도의 급박한 상황이었다.




아쎄이였던 나는 저 멀리 달려오는 저그떼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발이 얼어붙었다. 쏘라는 구령에도 그대로 굳어있던 나의 앞에 일순간 거대한 벽이 들어섰다.




그것은 벽이 아니었다. 토르를 방불케 하는 기세의 그는 해병 중의 해병, 황근출 해병님이셨던 것이다.




황근출 해병님은 나에게 눈길도 주지 않으시고 저그에게 돌진하셨다.




잠시 뒤 내 눈에 보인 것은 황근출 해병님과 그 발 앞에 쓰러져 있는 울트라리스크였다.




응징자 유탄도, 크루시오 충격포 자국도 없었다. 오직 가우스 라이플 탄환만이 무수히 박힌 채 말이다.




전투를 끝내고 병영으로 돌아온 나는 샤워실로 들어갔다. 황근출 해병님의 전투를 직접 보게 된 건 엄청난 영광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론 나 자신에 대한 한심함도 차올랐다. 아무도 없는 샤워실에서 나 홀로 눈물을 씻어내었다.




"아쎄이."




"이병! 김 해! ㅂ..."




갑자기 들어온 누군가의 목소리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려 관등성명을 대려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내 눈앞에 계신 분은 바로 황근출 해병님이셨다. 해병님은 다시 나를 부르시며 말씀하셨다.




''아쎄이, 해병이 전장에서 필요한 두 가지 덕목이 무엇인지 아나?''




"이병 김! 해! 병! 해병은 첫째로 전방의 불곰을 보조하고 둘째로 후방의 공성전차를 보호하며 착실히 전투를 수행하는 것으로..."




"아니다."




황근출 해병님의 단호한 대답에 나는 등골이 서늘해졌다. 내가 대답을 실수한 것일까?




"해병이 전장에서 필요한 것은 옆 해병과의 전우애와,"




황근출 해병님은 성큼 성큼 내 앞으로 걸어오셨다. 그리고 순간 전율이 흘렀다.




"이 허리다."




황근출 해병님의 손길이 내 허리에 닿았다. 내 얼굴은 자극제를 맞은 듯 빨개졌다.




"허리 하나만 돌릴 수 있다면 맹독충도, 울트라리스크도 전혀 두려운 상대가 아니다."




황근출 해병님의 손은 내 허리에서 점차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지금 그 두 가지를 알려주겠다."




"황근출 해병님..."




황근출 해병님이 점차 나에게 가까워져 오셨다.




차 행성의 화산이 아무리 뜨겁다 할지라도 그 날 샤워실의 열기보다 뜨겁진 않았으리라.







황근출 해병님의 교육 덕분에 난 나날이 성장했다. 해병님이 가시는 전장은 승리만이 있었고, 난 그 뒤를 열심히 따라갔다.




그러나 황근출 해병님이 아우리 날랜 호랑이처럼 싸우신다 해도 행성 전체 전투에 참가할 수 는 없었다.




승전 소식보다 패전 소식이 더 늘어가면서 저그는 점차 차 행성을 잠식했고, 끝내 우리는 퇴각할 수 밖에 없었다.




황근출 해병님과 나는 의료선에 탑승했다. 정돈되지 않고 구석에 쑤셔박힌 땅거미 지뢰 3기가 급박한 후퇴 상황을 보여주는 듯 했다.




뒤쪽에 난 자그마한 창 밖으로 불타는 기지가 보였다. 내가 황근출 해병님의 십분의 일이라도 싸울 수 있었다면 저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한심스러운 일이었다.




캬아아아아악




순간 귀를 찢는 굉음이 들려왔다. 다시 창 밖을 보니 하늘을 까맣게 덮은 뮤탈리스크 떼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곧 의료선은 격추되고 우린 잿더미가 되고 말 것이었다.




우우웅




갑자기 옆에서 또다른 소리가 들려왔다. 황근출 해병님이 탑승구를 여신 것이었다. 해병님은 땅거미 지뢰 셋을 짊어지고 계셨다. 설마, 나는 황급히 해병님을 불렀다.




"황근출 해병님!"




뛰어내리시려던 해병님은 잠시 멈칫하셨다. 그리고 내 얼굴을 바라보시곤 입을 여셨다.




"그 동안 수많은 전우애 교육을 했지만 이제 마지막 시간인 것 같군."




해병님은 잠시 눈을 감았다 뜨신 후 나지막히 다시 말씀하셨다.




"진정한 전우애란, 동료 해병을 위해 죽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살아남아라 아쎄이...아니, [해병]"




그리고 황근출 해병님은 땅거미 지뢰와 함께 뮤탈리스크 사이로 뛰어내렸다. 황근출 해병님의 마지막 말씀에 나는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꾹 참았다. 진정한 해병, 황근출 해병님의 마지막 모습을 두 눈으로 꼭 보고 기억하기 위해서였다.




의료선을 쫒던 뮤탈리스크들이 황근출 해병님을 쫒아 내려갔다. 그리고 몇 초가 지났을까. 세 차례의 굉음과 함께 하늘이 핏빛으로 물들고 불덩이가 떨어졌다.




황근출 해병님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불덩이 그 자체가 되신 것 처럼. 그분의 뜨거운 인생은 그렇게 해병답게 끝나셨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