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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웅크리고 컨테이너 안에 쓰러져 있었다. 한 시간 후면 모든 것은 끝나는 것이다.


손과 발이 돌덩어리처럼 차다. 깊고 깊은 컨테이너 속, 철창으로 막힌 창문 틈 사이로 차가운 하늘이 엿보인다.


퀴퀴한 똥꾸릉내가 코를 찌른다. 냄새로 짐작하여 그리 오래 된 것 같지는 않다. 누가 며칠 전까지 있었던 모양이다.


"그놈처럼 수육이 되겠군", 나를 컨테이너로 던져넣으며 서로 주고받던 그자들의 대화가 아직도 귀에 익다.


그놈은 누구일까. 형 집행 직전에 내가 목격하고 필사적으로 놈들을 향하여 방아쇠를 당겼던 그 사람이었을까...

만일 그 사람이 아니었다면 또 어떤 사람이었을까……. 몸이 떨린다. 뼈 속까지 얼음이 박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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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 사단은? 학벌은? 고향은?

포항 탈환작전에 참여한 동기는?

해병대를 어떻게 생각하나?

공군에 대한 감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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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끼…기열!

아쎄이의 말은 하나도 이치에 맞지 않다! 아쎄이는 아직도 싸제의 습성이 그대로 남아 있다. 다시 한 번 생각할 여유를 주겠다. 한 시간 후 아쎄이의 답변이 모든 것을 결정지을 것이다.


몽롱한 의식 속에 갓 지나간 대화가 오고 간다. 한 시간 후면 모든 것은 끝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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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을 향해 쏜살같이 진격은 계속되었다. 수차례의 전투가 일어났다. 우리는 포항을 탈환하라는 명을 받고 적의 배후 깊숙이 파고 들어갔다. 자주 본대와의 연락이 끊어지기 시작하였다.


초조한 소대원의 얼굴은 통신병에게로만 쏠렸다.


후퇴다!


이미 길은 모두 해병대에 의하여 차단되었다. 적의 어느 면을 뚫고 남하할 것인가?


자주 전투가 벌어졌다. 한 명 두 명 사라지기 시작하였다. 될 수 있는 한 적과의 근접을 피하면서 천자봉을 타고 올랐다.


기아와 피로. 점점 줄어가는 소대원. 첩첩이 쌓인 눈과 추위, 눈보라 속에 무릎까지 덮이는 눈 속을 헤매다 방향을 잃고 가까운 어느 마을로 파고 들어갔다.


불에 타고 흉하게 철거된 마을은 눈 속에 호젓이 파묻혀 있다. 모두 지쳐 쓰러졌다.

눈보라는 더욱 세차게 몰아치고 밤이 다가왔다. 산 속의 밤은 급히 내린다. 잠시 눈을 붙였다.


몹시 춥다. 몸을 약간 꿈틀거려 본다.

전 근육이 추위에 마비되어 감각을 잃은 것만 같다.


이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다. 개씹썅똥꾸릉내가 코를 찌른다.


어렴풋이 눈 속에 부서지는 쎄무와카 소리가 들려 온다. 점점 가까워진다. 시간이 된 모양이다.


몸을 일으키려고 움직여 본다. 잠시 몽롱한 시각이 흐른다. 워커 소리가 점점 멀어지기 시작하였다.

아무 것도 아니다. 아무 것도 아닌 것이다.


몹시 춥다. 왜 오다가 다시 돌아가는 것일까…….


몽롱하게 정신이 흩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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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학력은?

아쎄이는 왜 초등학교 진학을 선택했는가?

어렸을 때부터 아쎄이는 기열 민간교육에 세뇌되어 있다. 그것을 버려라 아쎄이.


나는 아쎄이를 어느 때라도 후임으로 맞아들일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다.

나는 아쎄이를 훌륭한 한명의 해병으로 키워내고 싶다!



그리곤 황근출은 즉석에서 해병짜장 69인분을 제조하기 시작했다. '악으로 깡으로 먹어라.'

나는 묵묵히 그것을 바라만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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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쎄이는 어찌하여 내 얼굴을 그렇게 차갑게 쳐다보고만 있는가? 한마디 대답도 없이 입을 다문 채…….

알겠다. 나는 아쎄이가 지키고 있는 그 침묵으로 아쎄이가 말하고 있는 그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유감이구만 그래.


주고받던 대화, 조그만 방안, 해병짜장의 개씨발내음이 어렴풋이 머릿속을 스친다. 그는 무겁게 몸을 뒤틀었다.


희미하게 또 과거가 이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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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해가 높아졌을 무렵에 눈을 떴다. 나는 순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이상한 발자국 소리를 듣고 한쪽 벽으로 몸을 피했다.

부서진 벽 구멍으로 밖의 상황을 살폈다.

아무 일도 없는 것 같다. 스산한 내 정신의 탓인가?


그러나 다음 순간 나는 확실히 사람의 음성을 들었다.

기대와 긴장이 동시에 서린다.

나는 담 구멍을 통하여 사방을 유심히 살폈다.

좀 떨어진 맞은편의 언덕을 타고 한 무리가 몰려가고 있다. 그들은 얼마 안 가 멈추었다.


멀리서 보기에도 확실히 군인임엔 틀림없다. 아군 선내에 들어와 있는 것인가? 그러면……? 나는 숨죽여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담장에 몸을 숨기고 무너진 담 구멍으로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았다. 눈앞의 그림자처럼 아른거린다. 그들이 주고받는 말소리가 간간이 들려 온다.


기열참새……. 수육, 이 두 마디가 나의 머릿속에 못 박혔다. 눈앞이 아찔했다. 나는 더욱 정신을 가다듬고 그들의 행동을 살폈다.

잡힌 이의 복장을 보아하니 그는 이곳에 불시착해 포로로 잡힌 조종사임에 틀림없었다.



“기열 공군...! 오도 해병의 처사에 대하여 이의가 있나?”



노리끼리한 각개빤쓰만을 착용한 해병이 물었다. 그 위엄으로 보아 대장인 듯 싶다.



“생명체는 도구와는 다른 것이오.

내 이상 더 무엇을 말하고 싶겠소?


나는 포로가 되어 전우애인 형이 아닌 해병수육 형을 선고받았을 때 비로소 내가 확실히 호흡하고 있는 인간이라는 것을 알았을 뿐이오. 나는 기쁘오.


내가 한낱 전우애용품으로 취급받지 아니하였다는 것, 하나의 생명체인 인간으로서 살아 있었다는 것, 그리고 인간으로서 죽어 간다는 것, 이것이 한없이 기쁠 뿐입니다.”


명확하고 차가운 음성이었다.


“좋다.”


경멸적인 조소가 입술에 어렸다.


“이 길을 따라 똑바로 걸어가라. 진주흘러빠진기열특별시 쪽으로 내닫는 길이다. 그처럼 가고 싶어하던 길이니 유감은 없을 것이다.”


그는 돌아섰다. 한 발자국, 한 발자국 걷기 시작하였다.

뒤에서 두 놈이 포신을 꺼냈다.


바야흐로 올챙이크림을 뿜으려는 포신을 등 뒤에 받으며, 주저 없이 정확한 걸음걸이로 그는 눈길을 맨발로 헤쳐 가고 있다. 이제 몇 발의 '븃' 소리와 더불어 그는 무참히 쓰러지고 말 것이다. 똑바로 정면으로 눈을 준 채 조금도 흩어질 줄 모르는 그의 침착한 걸음걸이…….


눈앞이 빙빙 돈다. 나는 마치 저 언덕길을 걸어가고 있는 것이 나 자신인 것만 같았다. 순간, 나는 총을 꽉 움켜쥐었다.

지금 저 눈길을 걸어가고 있는 피해자는 조종사가 아니라 나 자신이다.


내가 지금 피살당하러 가고 있는 것이다.

쏴야 한다.


나는 온몸이 검은 해병을 겨누었다. 숨죽이는 순간 이미 두 총구에서는 빗발같이 총알이 쏟아져 나갔다. 쓰러진다. 분명히 한놈이 쓰러졌다. 나는 다음 다음 연달아 쏘았다. 조금이 지나자 응수가 왔다. 이마에서 줄곧 땀이 흐른다. 눈앞이 돈다.



그 순간 푹 쓰러졌다. 의식이 깜박 사라진다. 갓 지나간 격렬한 총성의 여음이 귓가에서 맴돈다. 몸 어느 한 구석이 쿡쿡 찔리고, 끈적끈적한 액체가 흘러내리고 있는 것 같다. 소리가 난다. 무엇이 다가오고 있다. 머리를 쾅 하고 내리친다. 나는 순간 의식을 잃었다.



어디선가 찔꺽찔꺽거리는 기분나쁜 소리가 들린다. 두 살이 격렬하게 맞부딪히는 소리도.

방안이다. 방안에 눕혀져 있는 것이다. 이따금 흰 눈을 밟고 지나가는 발자국 소리가 희미한 의식 속에 떠오른다. 점점 멀어져 가는 발자국 소리를 따라서 나의 의식도 희미해진다.



그 후 몇 번이고 심문이 지나갔다. 모든 것은 결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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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모든 것은 끝나는 것이다. 얼음장처럼 밑이 차다. 아무 생각도 없다. 전신의 근육이 감각을 잃은 채 이따금 경련을 일으킨다.


발자국 소리가 난다. 말소리도. 시간이 되었다 보다.


문이 띨따구릏...거리며 열리고 급기야 어둠을 헤치고 흘러 들어오는 광선을 타고 해병들이 들이닥칠 것이다.


숨죽인 채 기다린다. 일순간이 지났다. 조용하다. 아무런 기척도 없다. 어쩐 일인가?…… 몽롱한 의식의 착오 탓인가.


확실히 쎄무워커 소리다. 점점 가까워 오는……정확한……그는 몸을 일으키려 애썼다. 고개를 들었다. 맑은 광선이 눈부시게 흘러 들어온다.


황근출이다.


“새끼... 기열! 빨리 나오도록!”


착각이 아니었다.


그들은 벌써부터 빨리 나오라고 고함을 지르며 독촉하고 있었다. 한 단 한 단 정신을 가다듬고 감각을 잃은 무릎을 힘껏 괴어 짚으며 기어올랐다.


입구에 다다르자 억센 손아귀가 뒷덜미를 움켜쥐고 끌어당겼다. 몸이 밖으로 나가는 순간 눈 속에서 그대로 머리를 박고 쓰러졌다. 찬 눈이 얼굴 위에 스치자 정신이 돌아왔다.


일어서야만 한다.

그리고 정확히 걸음을 옮겨야 한다.

모든 것은 이제 끝나는 것이다. 끝나는 그 순간까지 정확히 나를 끝맺어야 한다.


나는 눈을 다섯 손가락으로 꽉 움켜쥐고 떨리는 다리를 바로 잡아가며 일어섰다. 그리고 한 걸음 한 걸음 정확히 걸음을 옮겼다. 눈은 의지적인 신념으로 차가이 빛나고 있었다.


본부에서 몇 마디 주고받은 다음, 준비 완료 보고와 집행 명령이 뒤이어 떨어졌다.


눈이 함빡 쌓인 흰 길이다.

오! 이 길……. 몇 사람이나 이 길을 걸었을 거냐…….


훤칠히 트인 벌판 너머로 마주선 언덕, 흰 눈이다. 가슴이 탁 트이는 것 같다.



똑바로 걸어라 아쎄이. 진주 쪽으로 내닫는 길이다. 그처럼 가고 싶어하던 길이니 유감은 없을 것이다.



걸음마다 흰 눈 위에 발자국이 따른다. 한 걸음, 두 걸음 정확히 걸어야 한다. 아쎄이 준비! 장전하는 소리가 바람처럼 차갑다.


눈앞엔 흰 눈 뿐, 아무 것도 없다. 이제 모든 것은 끝난다. 끝나는 그 순간까지 정확히 끝을 맺어야 한다. 끝나는 일초 일각까지 나를, 자기를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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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음걸이는 나의 의지처럼 또한 정확했다. 아무리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는 걸음걸이가 죽음에 접근하여 가는 마지막 길일지라도 결코 허투른, 불안한, 절망적인 것일 수는 없었다. 흰 눈, 그 속을 걷고 있다. 훤칠히 트인 벌판 너머로 마주선 언덕, 흰 눈이다.


연발하는 썅음.

마치 외부 세계의 잡음만 같다.

아니 아무 것도 아닌 것이다.


나는 흰 속을 그대로 한 걸음 한 걸음 정확히 걸아가고 있었다. 눈 속에 부서지는 발자국 소리가 어렴풋이 들려 온다.


무하하하 웃음 소리가 난다.

항문에 격통을 느낀다.

아니 아무 것도 아니다. 아무 것도 아닌 것이다.


흰 눈이 검붉은 해병짜장 빛깔로 흩어지다가 점점 어두워 간다.

모든 것은 끝난 것이다.


놈들은 멋적게 포신을 다시 각개빤쓰 안으로 집어넣고 성채로 돌아들 갈 테지. 눈을 털고 추위에 포신을 서로 비벼 가며 방안으로 들어들 갈 것이다. 몇 분 후면 항문을 예열하고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떼씹을 벌일 것이다.



지나가고 나면 아무 것도 아니다. 모두 평범한 일인 것이다.


의식이 점점 그로부터 어두워 갔다.

흰 눈 위다. 햇볕이 따스히 눈 위에 부서진다.




- 오도상원 해병의 수기에서 긴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