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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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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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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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 자정작용을 위해 공론화를 원한다면 읽고나서 개추 한 번씩 눌러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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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편을 좀 늦게 써서 미안하다. 하지만 이제는 괜찮다고 생각했던


10년전 그 때의 상황들을 다시 떠올리는게 생각보다 어려운 일 일이었다.


당장 어제 그 때 겪었던 부조리들과 폭행에 대한 꿈을 꿨다.




이제부터 써 내려갈 내용들은, 3편의 사건이 마무리 되고


일어나는 2개의 큰 사건들과 내가 어떻게 트라우마를 이겨내고 무사히 군생활을 마쳤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어쩌면 앞선 3편에 대해서 임팩트가 크지 않을 수 있지만,


혹시라도 군입대를 앞두거나 인생에서 힘든 일을 겪은 친구들이 읽게된다면


이겨내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피해자 A해병이 의가사로 전역을 하고, 사건은 마무리 단계에 이르렀다.


우리 중대는 본래 대대의 에이스 중대로써,


상급부대에 큰 훈련이나 작전이 있을 때 항상 대표로 보내는 부대였다고 한다.




하지만 이 대형사태로 인해, 장기간 헌병대 조사를 받으면서


모든 교육, 훈련, 작전은 멈추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타 중대에게 그 역할이 넘어갔다.




돌이켜보니 그 시절 우리 중대가 그런 퍼포먼스를 유지해온 원동력은


간부들의 폭행, 부조리 묵인과 선임 해병들에게 갈궈진 피해자들이 피가 아니었을까 싶다.




몇 개월동안 전역 대기를 받은 탓에, 전역 전 취업이 예정되었던 전임 중대장은


이 사건 때문에 취업이 무산되었다.




꼴보기도 싫다면서 우리들에게 마지막 인사조차 남기기 싫다곤 했지만,


간결하게 나마 중대 홀에서 퇴임식을 했다.




해사에서 에이스였던 신임 중대장은 부임 하자마자 벌어진 사태에 엄청난 충격을 받았고,


우리 중대에서 폭력을 뿌리 뽑겠다는 마인드를 가지고


다른 간부들보다 눈에 띄게 많은 노력을 하였지만,


솔직히 말해서 큰 효과는 없었다.




중대장과 행정관을 비롯해서 많은 자리가 새로운 사람들고 교체되었고,


간부들은 인사적인 피해를 많이 보게 되었다.




대표적으로 우리 부소대장은 하사 시절 음주운전으로 인해 중사를 9년차에 달았기 때문에


어지간한 상사에게 경례를 받을 정도로, 개짬 중사였지만 이 사태로 상사를 다는게 더 미뤄졌다.


그리고 그 불똥은 우리에게 튀었다.



명목상 간부들의 주장은 "왜 우리에게 이런 사태가 벌어졌을 때 감추었느냐?" 였지만,


우리에게는 "왜 이 사태를 걸렸느냐?" 라고 들렸다.




해사 차석를 차석으로 졸업했다던 신임중대장은


우리들의 구타가 이루어질 힘도 빼놓겠다라고 작정을 했는지


아니면 우리들에게 보복을 하려는건지


그냥 해사 에이스라 FM인건지..




주 3회 완전무장 + 병기를 들고 10km 구보를 시켰다.

-> 이거 보고 지나가다가 본 옆 부대 연대장이 애들 무릎 부서진다고 미쳤냐고 했었는데
중대장이 ㅈ까라고 하고 계속했음.


1달 즈음 지났을 때 견디지 못하고 쓰러지는 사람이 속출했고


병원에 다녀온 해병들은 다시 선임들에게 스트레스 해소용 샌드백이 되었다.




간부들의 합법적 괴롭힘이 장기화 되는 관계로


진술을 했다는 10여명의 해병들에게 화살이 꽂혔고,


선임들은 "찌를 사람은 아랫기수들 밖에 없다."라고 합심하여


아래서부터 조지기 시작했다.




중대에서 제일 막내였던 나와 내 맞선임, 맞맞선임은 집중 포화가 되었다.


심지어 내 맞선임은 사건이 터졌을 시절, 위탁교육을 받으러 나가있었기 때문에


사건과 전혀 관계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그냥 쳐맞았다.




특히 내 맞선임에게 폭행이 집중되었는데,


왜 사건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내 맞선임을 그렇게 죽도록 팼는지는


아직도 이해가 안가는 부분이다.




구타는 일상이었으니 제외하고,


당한 부조리 중 기억나는 몇가지만 말하자면




화장실 소변기에서 ㅈ털 묻은 나프탈렌을 박하사탕이라면 줘서 입안에 담았던 것이라던가


대변기 칸에 들어가 있으면 양동이나 호스로 흠뻑 젖게 만드는 것,


초소 근무가서 난간에 철봉처럼 매달리게 하는 것,


5일동안 썪힌 우유에 자신의 정x을 담아서 먹이는 것,


배식 때 선임이 밥과 반찬을 퍼주면 그 만큼 남김없이 다 먹게 하는 것 등..

(밥을 존나 많이 퍼주고 반찬과 국은 거의 안줌.)


기발한 괴롭힘들이 많았다.




그냥 그 당시에는 견디는 방법 밖에 없었다.


게다가 나는 내 나름의 정의를 실천했기 때문에 후회하지 않았다.




문제는 내 맞선임이 견디다 못해 선임을 밀치는 사태가 벌어졌고,


이로인해 나에 대한 화살까지 맞선임이 몰아서 맞게 되었다.




근데 이 모든 상황은 존나 허무 할 수 있을정도로


대충 사소한(?) 사건 3가지로 빠르게 정상화 되었다.



미리 주의합니다. 진짜 개허무하게 폭력사태 종료됩니다.


근데 이게 리얼이라 사실대로 적습니다.









몇 개월이 지나고 막혀있던 후임들이 물밀듯이 들어왔다.


폭력 사태로 전출간 인원들까지 메꾸기 위해


우리 중대에 엄청나게 많은 인원을 배당해주었다.




그 중 현역 육군 4스타의 조카가 있었고 그 녀석이 우리 소대로 오게 됨으로써


자연스럽게 선임들의 구타와 부조리가 줄어들었다.




내가 이렇게 적어서 별거 아닌것 같지만


현역 육군 대장에다가 당시 국방부 장관이 되냐마냐 뉴스에 오르내리던 분이라서


영향력이 장난이 아니었고, 지금 기억을 더듬어 봤을 때 이게 큰 이유라고 생각한다.




+위에 첫번째 이유고, 아래는 두번째 이유다.



구타에 연관되어서 20~30자 후반 대부분이 전출되었고


40자 초반들이 실세가 되어 중대 실권을 잡게 되었을 때,


또 하나의 사건이 터지게 되었다.





전투병사였나? 타군에도 있는 인증제도 같은 게 있었다.

(필기+실기)


우리 부대는 아무리 100일 휴가 같은 첫 휴가를 나가더라도


이 인증을 통과하지 못하면 휴가를 안보내줬다.



그리고 이것은 선임들이 후임을 괴롭히는 명분으로써 쓰여졌다.


그래서 전투체육시간에 짬찌들은 필기를 통과하기 위해서


자습실에 박아놓고 공부를 하게 되어있었다.




그러나 60자 막내라인 해병들이 모여서 부르마블을 하다가


중대 1도 40자에게 걸렸고,


심지어 그 과정에서 변명을 하여서 제대로 찍히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당시 일병라인에 3명이었던 나와 내 맞선임, 맞맞선임은


관리를 못했다는 이유로 꺾어를 ㅈㄴ당했다.




그럼에도 분이 안풀린 40자 선임은


저녁에 그 60자 찐빠를 불러서 엎드리게 하고


면상을 워커발로 계속 밟았다.




옆방이었던 내가 달려가 뜯어 말렸음에도


피해자 후임은 턱이 피가 폭포수같이 흐를 정도로 너덜너덜하게 찢어졌고,


새벽에 포항병원으로 실려가서 60여바늘을 꿰맸다.




이 사건으로 헌병대가 다시 도착하게 되었고,


연속으로 폭력사건이 터진 중대다 보니 관련된 사건 이외의 모든 폭력을 뽑아내려고 했다.


그 과정에서 40자 초반은 모두 팔려나가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마지막 한가지 큰 전환점을 맞게 되었고,


그것이 우리 중대가 정상화 되는데 가장 큰 기여를 했다고 생각된다.


정상화 되는 과정은 해피엔딩인데 원한다면 저녁에 쓰도록 하겠다.



개추 눌러주면 고맙겠다. 필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