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군대 폐급은 사회에서의 에이스, 사회 폐급은 군대의 에이스.
별로 믿진 않는 말이다. 군대 역시 하나의 작은 사회니까. 각자의 맡은바가 있고 끈임없이 각잡힌 채로 돌아가는 사회.
민간사회의 나는 겉으로 보기엔 멀쩡했을지 몰라도 누군가 나의 속을 들여다본다면 그는 기겁을 했을지도 모른다.
세상사 아무것도 관심이 없었다. 돈이나 명예, 지위, 능력. 있으면 좋기야 하겠지만은 없어도 나 하나 먹고사는데는 아무 지장 없는 것 들이니까.
아는 사람들이 없는건 아니었다. 다들 연락은 자주 하진 않는 편이고 내가 먼저 연락을 하는 일은 없었다.
살아가려면 조금의 돈은 필요하니까 일을 한다. 몸이 너무 힘든 일은 하고싶지 않다. 버는 돈 보다도 육체가 느끼는 고통, 그리고 그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나의 고통이 더 커다랗기에.
그런 일을 하지 않으려면 능력이 있어야한다. 능력이란, 무엇이든.
혈연,지연,학연 이라 하던가. 그 무엇도 없었던 나는 그랬기에 공부를 했다. 꽤 오래 전부터 이런 생각의 울타리에 갇혀살던 나는 일찍 늙어버린건지 아니면 아직도 어린애 인건지.
그렇게 얻은 일을 하며 사람들을 만나는건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사람들에겐 관심이 없지만 사람들은 내게 관심이 있는듯 하다. 많이는 아니고 조금씩만.
관심이 없다고 해서 그들을 냉대하고 내쫓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두팔벌려 환영하지도 않는다. 그저 미지근하게. 술에 물탄듯 물에 술탄듯.
그랬기에 나의 속은 그저 쓸쓸히 텅 비어있는 모양이다. 무언가 조금씩 보인다면 무료함이나 소박한 짜증 등의 작고 한심한 먼지들 일것이다.
그렇게 오늘이 무슨요일 인지도 모른채, 가만히 앉아 일을 해서 돈을 타고, 사람들이 말을 걸면 대답을 하고, 배가 고프면 밥을 먹는다.
세상사 아무것도 관심이 없다. 나 자신 조차 에게도.
도대체 왜 사는건가?
삶의 이유란게 보이질 않는다. 그렇다고 나는 감당키 힘든 우울의 늪에 빠진것도 아니요, 해결할 수 없는 빚더미에 앉은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왜 사는지를, 도무지를 모르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든 생각일것이다. 일을 못해서 답답하고, 사회에 폐를 끼치고, 남들의 등을 쳐먹고 하는게 폐급이 아니다. 이런걸 보고 폐급이라고 해야한다.
인간이라는, 영장류와 지구 모든 생태계를 통틀어 정점에 있는 그 지위를 태어날 때부터 가졌으면서 아무곳에도 가져다 쓸 생각을 안한다.
능력의 부족도 아니요, 육신의 결함도 아니다. 그냥 관심이 없다. 부족이나 결함이 있다면 나의 영혼에 있을 것이다.
본능에 따라서만 움직이는 금수, 아니 하다못해 버러지들도 종의 존속이라는 목적이 있다.
그런데 나는, 그냥 산다. 아무 목적 없이, 아무것에도 관심을 두지 않은 채로. 자살에도 별 관심이 없어 사는것일지도 모른다.
그저 폐급이다.
세상사 아무것도 관심이 없다.
2.
까먹고 있었구나. 관심이 없어 잊고 있었구나.
입영통지서다. 보는순간 떠올린 생각이 있다. 여기보단 나을 것이다. 그저 까라면 까고, 시키는 대로만 하면 문제가 없는 곳. 하라는 대로 그냥 사는게 목적인 인간이 될 수 있는 곳.
여기보다는 좋을수도 있겠다 싶었다.
1년반의 시간따윈 애초부터 날려먹던말던 관심이 없었다.
해병대는 그런 이유에 이끌려서 온 곳이었다.
3.
훈련소를 거쳐 자대배치를 받아 가게된 6974 부대. 태양이 무섭도록 패악을 부리던, 눅눅하고 뜨겁기만 하던 한 여름날에 난 그곳의 풍경을 처음으로 마주하게 되었다.
온종일 하늘에서 기승을 부리며 더위를 토해내는 태양에게 비웃음을 당하기라도 하는듯 초라한 작대기 하나. 직업도 지위도 없는 하나의 이등병으로 존재하던 나 라는 것은 인간이 아니었다.
민간인 시절의 나 역시 인간이라 하기엔 무언가 애매하고 공허한 영혼을 가졌었지만 이곳에서 말하는 인간 이라는 것의 의미는 조금 다르다.
인권 이라는 것이 철저히 짓밟인채로 생활하는, 과연 그 일련의 과정을 '생활' 이라고 할 수 있는건지도 의구심이 드는 시간들. 나와 훈련소서부터 자대까지 같이 오게된 근출 이라는 사내 역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도록 조용히 생각했었다.
부조리한 구조 속에서 보내는 부조리한 시간. 그 부조리 속에서 내게 다가오는 고통. 하지만 나의 마음은, 정신은 평온하다. 사실, 평온하다기 보다는 이전과 같이 무료하다.
인권이라는 것을 지금 애써 쟁취할 생각은 없다. 이곳에선 그저 시간이 모든걸 만들어주니까. 인권 그 다음엔 부자유 속에서지만 조금씩의 자유, 그 후엔 권력. 시간이 지나기만 하면 누구나 얻을 수 있는 구조의 사회.
시간이란 나의 노력이나 행동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저 바람보다 순수하게, 물보다 투명하게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게 흘러가니까.
어차피 언젠간 노력 없이도 알아서 나의 손에 잡히게 될 것들이니까.
그런 생각들을 증명해 주기라도 하듯 시간은 흘러갔다. 나와 근출이란 사내에게 가해지는 폭력과 통제는 서서히 줄어들었다. 다부진 몸과 그을린 피부에 어울리지 않게 그늘진 얼굴을 해 표정이란게 잘 보이지 않는 그는 항상 어딘가 외로워 보였다.
나와 비슷해 보이면서도 분명히 다른 느낌을 풍기는 나와 그 사이엔 어느새 매우 가느다란 실로 짜낸 면사포 같은, 얇아서 그 모습이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무언가의 연대감 같은것이 생겼다.
그 알수없는 것을 무어라고 해야 할 지 몰랐다. 전우애라고 하기엔 끈끈하거나 뜨겁진 않았고 동질감이라고 하기엔 너무 이질적이었으며 또한 서로가 너무 외로워 보였다.
그러던 그 사내는, 근출이라는 이름의 사내는 언젠가 대대를 통째로 뒤엎어버리는 사건들을 터뜨리게 된다.
그리고 그로 인해 나 역시 그 사내에 의해 터져버린 사건들의 버섯구름을 흐리멍덩한 두눈으로 똑똑히 목도했고 피할 수 없었던 폭풍들과 칼바람을 온몸으로 받아내게 된다.
후에 그것이 나에게 있어 어떤 의미가 될지는 아무것도 모른 채로.
4.
근출이란 사내가 하극상을 벌였다.
악질적이었던 한 선임병을 근출이란 사내가 나서서 제압했던 사건. 사실 그가 한 행동은 제압이라고 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그저 근출에 의해 일방적으로 가해진 폭압적인 유린. 나는 이 세상에 나와서 여태껏 그렇게 잔악하고 혹독한 광경을 목격한 적이 없었다.
엄지가 거대했던 그 선임병은 탈장과 더불어 이런저런 중상을 몇개씩이나 얻어 의가사전역을 했다.
그때부터 나의 모든것은 뒤틀리기 시작한다.
한 전문하사는 대대장을 개 패듯이 반쯤을 패죽여놔 병신을 만들어 직책을 빼았고 언젠가부터 후임병들의 상태나 신병들 역시 슬픔인지 기쁨인지 알 수 없는 광기에 젖어물들기 시작했다.
이내 알 수 없는 소리들을 지껄여대며 외국인을 납치하거나 (납치된 외국인 마저도 얼마안가 미쳐버렸다지만) 육체를 보았을 때 절대로 여성이라고 인정할 수 없는 여자 소위가 전출을 오거나 등의 비상식적인 일들이 일어났다.
근출이란 사내가 날뛰기 전까진 어떤짓을 해도 잠자코 흘러가던 시간이라는 것도 이제는 멈춰버린것만 같았다.
그렇게 매일매일 나의 세상은 천박하고 잔인하고 역겨웁게만 변해갔고 나의 공허했던 영혼은 깨지고 기울어져 이내 더러운 모양으로 뒤틀려버린것만 같았다. 텅 빈 밋밋한 유리구슬은 이젠 더러운 오물을 뒤집어 쓴 채 자신을 물어뜯으며 뒤엉켜 똬리를 튼 한마리의 구렁이가 되어있었다.
그리고 어느샌가 흘러가는 시간이 무심하게 나의 손에 쥐여준 것들을 나는 다시 빼앗겼다. 근출을 필두로 한 그들은 나의 육신을 뜯어 발라냈고 자르고 찢어대며 식인을 하였고 나에게도 그것들을 강제로 먹도록 했다.
저주에 걸린 것일까? 지옥에 와버린 것일까? 인간으로 살아가기엔 너무나도 무능력했던 나에게 신이 벌을 내리는 것일까?
몇번이고 난자질을 당하고 몸이 쪼개어져도 나는 화장실 5사로 칸에서 꿈을 깨듯 다시 살아날 뿐이었다.
시작이 반이라 했던가. 이젠 죽음과 고통도 익숙한 존재들이 될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5.
오늘이 무슨요일 인지도 알 필요가 없다. 가만히 앉아 해병들이 말을 걸면 의미없는 단말마의 대답을 하고, 대답이 끝나기 전에 죽음이 찾아온다. 배가 고플 일은 없었다. 배가 고플때까지 살아본 날이 없었다.
항상 배고픔을 앞질러 찾아오는 죽음의 훼방으로 인해 배고픔과는 작별한지 오래다.
아무것도 먹지 못하는것은 아니지만 차라리 굶어죽고 싶은 것들을 먹었기에. 그렇기에 죽음 조차도 반가울 때가 있었다.
육신마저 과거 나의 영혼처럼 쓸쓸하고 텅 빈 모양새가 되어버렸다.
황량한 영혼으로 사람들을 대하던 나는 네 아니오 등등의 너무나도 보편적이고 상투적인 대화를, 대화라고 하기엔 너무 가볍고 시간낭비라고 생각될 만한 것들을 해왔다.
지금에서 달라진 것이 있다고 하면 나의 영혼에는 혐오와 증오, 반항심과 적개심들이 들어차 있다는 것이었다.
해병들에게 역시 의미없고 그저 정신이 이끄는 대로의 말들을 지껄였지만 네 아니오 가 아닌 좆게이 씨발 등의 그저 천박한 내용들만이 쏟아져 나왔던 것이다.
그런 나날들을 지내던 언젠가 근출이란 사내는 이미 해병들의 신앙이 되어있었다.
내가 그와 나 사이에 있다고 느꼈던 보이지 않는 무언가는 이제는 더욱더 가늘고 얇아져 있었다.
그의 얼굴에 드리운 어둡디 어두운 그림자에 가린 눈이 내게 보내는 시선은 여타 다른 해병들에게 보내는 것과는 무언가 다른 것이 있었다.
언젠가 한번 나는 그에게 물었다. "너는 날 뭐라고 생각하는거냐? 알동기? 아니면 그저 그런 기열? 가끔씩 궁금해져서 물어본다." 그가 대답했다. "새끼, 기열." 낮게 울리는 목소리와 함께 나는 또다시 5사로에서 고개를 들었다.
창밖에서 서서히 져가는 태양이 뿜어내는 노을이 보였다. 노을빛은 해병들의 새빨간 팔각모와 군번줄, 혹은 부대 뒤켠의 곰팡이가 두개쯤 피어오른 썩은 나물 찌꺼기를 비추고 있었다.
6.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 무엇하나 느껴지지 않는것만 같다. 삶과 죽음 마저도 기찻길에 수도없이 놓여있는 자갈들 사이에서 나뿌끼는 먼지바람처럼 느껴지기만 할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곳을 나가지 않는다. 나갈 능력이 있음에도 이곳을 나갈 생각조차 떠올리지 못한다.
부자유 속의 자유란 속된 거짓말에 길들여진것일까?
아닐것이다.
바깥에 나가도 똑같을 것이란걸 마음속 한켠에선 조용하게나마 알고있기 때문이리라. 이곳에선 무언가 다를 것이라는, 그 다름 이란것이 내 영혼을 바꾸어 놓을것이라는, 이젠 알 수 없게 되어버린 무언가의 의미를 깨닫게 해줄 수도 있다는 희망이 나의 발목을 끈질기게 잡고 늘어지는 것이었다.
이곳이 대체 무엇이길래 이토록 나의 마음을 옭아매는것일까.
우악스럽게 달리는 오도봉고가 지나가는 자리마다 흩날리는 먼지와 그 먼지 사이에서 시끄럽게 뛰노는 똥꾸릉내. 동작마다 기합을 넣어 투박하고 거칠게 몰아치는 해병들의 철썩임. 새들이 날아들 때마다 푸른 하늘 풍경에 훼방을 놓는 광경을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죽을 힘을 다해 달음박질 하는 사내들.
모든곳이 잘못되어버린 이곳에서 나는 무엇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이곳에 있는것일까. 해병들에게 좆게이새끼들 따위의 욕지거리를 내뱉는것이 내게 있어 대체 어떤 의미를 갖는다는 말인가.
근출은 대체 어떠한 의미 아래에서 이런 짓들을 벌이는 것일까.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나는 또다시 근출에게 말을 걸었다.
"아무리 기열이라고 해도 내가 뭐 변하는건 없을거야. 본래부터가 이렇게 생겨먹은 놈이다. 무얼 어떻게 해도 너희들에겐 좆게이새끼들이란 말 밖에는 해줄 수가 없다."
근출은 잠시 말없이 내 앞을 지키고 서있더니 이만 다른 곳으로 걸어갔다.
근출의 얼굴에 드리운 그림자 속에서 무언가의 오묘한 움직임을 본 것만 같았지만 끝끝내 아무런 대답을 듣진 못했다.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들은 어쩔 수 없는 좆게이새끼들 인것이다. 그들의 통제에 나는 반항하고 역정을 내지를 수 밖에는 없는 노릇이다.
이내 나의 눈에서 눈물이 나오려 했다. 살면서 한번도 울어본 적이 없는 나였지만, 나는 그것이 눈물이 나오려고 한다는 느낌인것을 알았다.
나는 그들에게 반항할 수밖에 없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를 이제서야 깨달아버린 것이었다. 아름다움이란 의미 역시 이제서야, 지금에 와서야 드디어 알게되었다.
내 영혼은 공허하게 비어있던 탓에 흐르는 물길에 움직임을 맡기고 그저 둥둥 떠다니는것 밖에는 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
그런 나의 영혼은 이제서야 반항이라는 것을 손에 쥐게 되었다. 반항이라는 것은 내 영혼의 주체적 움직임이었으며, 그 움직임은 희망차게 움직이는 것이었고, 동시에 그것은 열정이었다.
텅 빈 무언가는 이젠 희망으로 가득차 있었고, 열정적으로 그리고 아름답게 반항하고 있었다.
굳게 닫혀있던 문을 열고 이제서야 밖으로 나오게 된 것이었으며 세상은 아름다웠다. 자유를 흉내내는 사회 속에서 자유를 빼았기고 갇혀있던 나는 이곳에서 마침내 자유를 알게 되었다. 이제서야 사회를 경험하는 나 였고 대답없던 근출에게 던진 나의 말 한마디는 밖으로 향하던 나의 첫 발걸음이었다.
이곳에서 나는 새로 태어났다.
물론 그 모습이 해병은 아니었다. 그들은 좆게이새끼들이니까. 그렇다고 나는 아쎄이도 아니었다. 나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기에.
나는 하나의 사람, 인간으로서 다시 태어나며 그 동시에 그 영혼이 해방되었다.
6.9.
오늘은 톤요일이다. 배가 고플 즈음이면 해병들이 짜장을 요리하는 모습을 뒤로하고 몰래 맛다시를 꺼내어 먹는다. 가끔씩 그런 나의 모습은 이내 수육이 되어버리기도 한다.
세상사 모든것이 열정적으로 그리고 아름답게 빛나고 있다. 새 한마리 없는 저 푸른 창공 아래에서 나는 자유롭다.
저 멀리서 마라톤 회의를 마친 해병들이 이내 눈을 번득이며 나를 찾아오기 시작한다. 무슨일이 일어날지 대충 짐작은 가지만, 한편으론 알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벌써부터 5사로의 풍경이 보이는 듯 하다.
하지만 황룡은 슬며시 미소짓는다.
아무렴 어떠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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