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유월을 채 넘기기도 전에 벌써 섭씨 영상 삼십도를 넘어가는 더위에 하루종일 공사 현장에서 일하고 나니, 한여름은 아직인데 이 몸에는 벌써 장마가 찾아온 듯 했다. 노가다 일을 해온지도 거진 20년. 군 전역한 그 해 바로 현장에 뛰어들었으니 얼추 그 쯤 되는 것 같다. 식비도 아까워 허구헌날 라면과 소주만 찾으니, 삼양라면과 참이슬의 맛이 변했는지, 알코올 도수의 변천사는 어떤지 따위는 아마도 내가 사장보다 잘 알 것이다. 그러다 한 번 씩 라면 포장지의 주황 빛깔만 눈에 들어와도 구역질이 올라오는 날에는 나도 식사다운 식사를 하곤 한다. 라이라이창, 동네에서 가장 값싼 중국집이며 정감이 가는 그 이름에 그곳 이외의 중국집은 쳐다보지도 않는다. 무려 라면의 수십배에 달하는 6,900원이라는 어마어마한 값이지만, 이상하게도 이 집 짜장면은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무언가 숙연해지는, 또 무엇인가 그리워지는 그런 맛과 향이다.
'20년 전에는 이런 짜장면 마음껏 먹었는데. 그때가 행복했지.'
막 해병대 실무 배치를 받은 날, 아마 2002일 8년 21월 쯤이었나. 나의 생일이기도 했던 전입날은 지옥(地獄)이었다. 너무나도 서글서글하고 잘해주던 선임 해병님들, 무척이나 긴장하고 군기가 바짝 든 나에 비해 이상하리만치 이곳이 익숙해 보이는 동기, 나의 생일인것을 알아내고 같은 내무실 선임분들께서 만들어주신 초코파이 케이크로 진행하던 내 생일 잔치. 이것들이 모두 각각 악마와 같은 선임, 작대기 4줄 짜리 동기, 악기바리로 변하는 데에는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결국 악기바리완료에 실패해 음식물 취식 금지령이 떨어진 다음날 밤, 흘러빠지게도 몰래 화장실에서 악으로 삼켜내던 내 울음을 눈치챈 마철두 해병님께서 하해와 같은 자비로 선사해주신 짜장 한 무더기.
'아쎄이, 오늘 하루종일 제대로 된 식사 하나 못하지 않았는가.'
'해병짜장이 그렇게도 궁금한가, 아쎄이?'
그 후로도 지속된 음식 깨스에도 마철두 해병님의 사랑(戰友愛)으로 오히려 살이 보기좋게 오른 내 모습을 보고 호랑이처럼 달려온 무취식 해병님에게 가슴팍을 걷어차일 뻔 했으나, 그마저도 막아주셨던 마철두 해병님. 후에도 많은 선임 해병님들께 해병짜장을 하사받아 먹었지만, 마철두 해병님의 좆맛으로 빚어낸 그 짜장의 맛은 무엇에도 비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런데 라이라이창의 짜장면을 먹을 때면, 그 맛과 향에서 자꾸 그 시절의 향수가 떠오르곤 했다.
분명히 흘러빠진 기열 싸제 짜장에서 해병짜장의 맛이 날 리는 만무했다. 그럼에도 나에게로 하여금 옛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는 것은 분명히 무엇인가 비밀이 있다고 생각하여, 한 번은 짜장면을 먹다 말고 일어나 주방으로 향했다. 지금까지 몇번이고 이 중국집을 방문했지만 단 한 번도 얼굴을 뵌 적이 없는 주방장님. 그 베일을 벗기기 위해 주방에 난 창문으로 조심스레 얼굴을 들이밀 때였다.
'!!!!!!'
앞은 희고 누런, 그리고 뒤는 갈색 얼룩으로 범벅진, 하지만 바탕이 너무나도 시뻘건, 각개빤쓰임이 확실한 그것을 내린 채로 주방장님은 허리를 구십도로 숙여, 귀두에는 싸제 짜장이 들어오는 호스를, 그리고 항문에서는 해병짜장 하지만 기열 싸제 짜장이 섞인 '진짜' 짜장을 내뿜는 주방장님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자 마자, 나는 그 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었다.
'여간 기합이 아니지 않을 수 없지 않은가!'
그리고 주방장님의 각개빤쓰에는, 워낙 해지고 얼룩져 잘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히 노란 자수 글씨로 '마철두' 라고 쓰여있었다. 나의 포신에서는 닭짜장같은 좆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단순히 한 감정에 의해 흐르는 좆물이 아니었다. 그리움, 반가움, 아련함, 기쁨, 슬픔, 흥분, 꼴림 등 온갖 감정이 벅차올라 이루말할 수 없는 좆같음의 물결이 일렁였다.
그 순간, 마철두 해병님과 눈이 마주쳤다.
나는 머릿속이 새하얘져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지만, 나의 오른손은 이미 일체의 굽힘도 없이 올라가 그 끝은 나의 오른쪽 눈썹 끝을 향했고 나의 성대는 20년 전 그 때의 울림 그대로 떨리기 시작했다.
"필-쓰엉!!!!!!!"
마철두 해병님께서는 나의 마지막 기억속에 남아있는 그 모습 그대로셨다. 탄탄한 말근육의 허벅지와 마치 투포환과도 같은 무쇠궁둥짝. 분명 입고있지 않음에도 제대로 된 각을 유지하고 있는 각개빤스. 그런 그는 아무 말 없이 다정하지만 절제되고 엄격한 미소로 나를 맞아주셨고, 나는 무언가에 홀린 듯 주계장으로 들어가 마철두 해병님과 진한 전우애를 나누었다.
...삐비비빅! ...뽀르삐빅! ...띯따구빅! ...
강렬한 알람이 나를 깨운 것은 사정 직전의 시점이었다. 눈을 뜨자 내 눈앞의 알람 시계는 오전 여섯시 정각을 알리고 있었고, 나의 포신은 그 어떤 때보다 꼿꼿하고 단단하게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처음 눈을 떴을 때에는 사리분별이 되지 않았다. 지금이 꿈이고, 전우애를 나누는 와중에 잠이 든 줄 알았다. 그러나 그럴리가 없다는 것을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나는 눈물이 났다.
얼마나 울었는지도 모른다.
어렸을 때 보았던 소설의 한 장면이 뇌리를 스쳐지나갔다. 누군가가 나에게 와서 묻는다.
"왜 울고있는 것인가, 아쎄이?"
나는 답한다.
"아주 달콤하고 좆같은 꿈을 꾸었습니다."
그러자 누군가는 재차 나에게 묻는다.
"달콤한 꿈? 그런데 왜 울고있는 것이냐?"
"...그것은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기 때문입니다..."
여름이었다.
- 현판걸, 톤아출판 초등학교 2학년 교과서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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