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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럭




오늘은 6974년, 아니 2022년 11월 말 나 황룡은 아직도 해병 성채에서 탈출하지 못하고 있다.




말딸필의 자비로 받은 내 피부로 만든 황룡지(紙)와 손가락을 깨물어 나온 피로 혹시 모르는, 불운하게도 이곳으로 떨어진 이들을 위해 글을 남기고자 한다.




이곳은 현세의 지옥이다. 희망을 버린 곳이다.




아직도 실핏줄의 흔적이 남은 종이 위로 말라붙은 갈색의 글씨는 혼란스럽게 이어지고 있었다. 다급하게 휘갈겨 쓴 탓인지 글자 크기가 제각각인 것은 물론이고 알아볼 수 없는 단어도 많았지만,그는 별 생각 없이 페이지를 넘겼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절대 당황하지 마라. 아마 당신도 이 새끼들이 '자진입대'라 불리는 대대적인 납치극의 희생자 중 하나일 테니까. 다시 한 번 말한다. 절대 당황하지 마라. 머리를 차갑게 식히고 냉철하게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종이는 물이 번진듯한 반점들이 드문드문 찍혀 있었다. 그는 혀를 차며 떨어져 버린 보관성을 어떻게 할지 담담하게 고민할 뿐이었다.




연병장에서 무슨 일을 겪었을지 나는 이해한다. 다시는 떠올리기 싫은 기억들이 머릿속을 맴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그저 이곳에서의 일상인 것을 명심해야 한다.




마지막 글씨는 누군가에게 방해받은 것처럼 길게 늘어져 있었다. 아마 이 페이지를 작성하는 와중에 주계장으로 끌려갔거나, 그저 이유 없이 분쇄됐었을 것이다.




만약 당신의 지인이나 가족이 분류 과정에서 대대장실이나 주계장에 배치되는 사람이 있다면, 깔끔하게 잊어라. 운이 좋아야 인육 다짐이 되거나 더 불운한 상태로 살아있을 것이다. 잊어야 한다.




그는 혀를 찼다. 모든 사람이 황룡, 그처럼 생각하고 행동 할수는 없었다. 오랜 세월 동안 사람들이 오고 가는 것을 보아 왔던 그였기에 되려 확신할 수 있었다.



이곳에는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음식도, 물도 없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이곳에는 그 어떤 음식도 물도 없다. 주계장에서 나오는 그 '식사'나 인근 하천에서 흐르는 물을 한 입, 한 모금이라도 마셨다면 행운을 빈다. 적어도 고통은 없을 것이다.



진떡팔 해병님께서 보셨다면 오늘 특식으로 오마카세와 통구이 요리가 나올법한 이야기였지만, 그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글을 읽을 수 있는지조차 의문이지만 그것의 여부를 떠나서 오늘 특식 메뉴는 공교롭게도 위에서 언급한 것과 동일한 메뉴였다.



혹시나, 만약에 이곳에 도달한 사람을 위해 먹을 수 있는 안전한 음식을 남겨놓고 가겠다. 전부 다 가져가도 상관없다. 단, 당신 이후로 이곳에 떨어지게 될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작은 응원의 말 한마디만을 부탁한다.



그는 3사로 화장실 문을 열었다. 오랜 기간 사용되지 못한듯한 화장실 문은 경첩이 뒤틀리는듯한 마찰음을 내며 힘겹게 열렸다. 그곳에는 천장에 이어진 실에 매달려 있는 말린 고기들과, 먼지 앉은 작은 페트병들에 담긴 물이 있었다. 그는 무심한 눈동자로 매달린 고기 하나를 낚아챈 뒤 입에 욱여넣었다.



그것은 익숙한 동시에 매우 퍽퍽했다.



입 안에서 침으로 수분을 머금기 시작하는 고기를 몇 번 질겅질겅 씹은 뒤 바닥에 퉤, 하고 내뱉자 그제야 화장실 벽면에 가득 채워진 글씨들이 보였다. 고맙다는 말들, 원망하는 말들, 희망을 기원하는 말들. 이름 모를 수많은 이들의 흔적이 이 좁은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가 무의식적으로 페이지를 넘기려는 순간, 자신이 마지막 장을 읽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애당초 자신이 건네준 종이는 한정적이었기에 크게 이상할 일은 아니었다.



-탁



화장실을 벗어나, 연병장을 넘어, 주계장을 지나 도서관에 도착한 그는 익숙한 손길로 책장의 비워진 공간을 채워넣었다.



누군가는 말한다. 살아서는 기열, 죽어서는 기합인 해병이 있다고.



나는 그 사이에서 지켜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