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ebec223e0dc2bae61abe9e74683766c7ce4cefaf6b85a2c2f876b1d2aa415dc5650e792f28cc1df15e59077f389de346c0dfd3aadfdf57225c8

대한불교조계종 삼각산운가사 지덕 주지스님(장성진·해병 726)은 해병대전우 장영문(해병 147·부 49기)의 장남으로 태어나 학교에 다니면서 절과의 인연으로 스님의 수행을 시작하게 된다.
해병대 전역 후 22살에 절에 들어와 지금까지 23년을 절에서 불자의 길을 걷고 있다.
7년간의 기도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15년간 수행(선원)을 해오다가 올해 3월 12일 삼각산운가사에 주지스님으로 취임을 하여 수행하고 있다.
아버지인 장영문 전우는 사병과 부사관으로 들어가 월남 파병을 두 번이나 참전했다.
동생인 도흥 스님도 해병대부사관 출신으로 삼부자가 해병대 가족이다.

■ 삼부자 해병대 가족
지덕 스님은 군 입대 전부터 절에서 있다 보니 국방의 의무를 빨리 끝내고 출가하여 스님의 길을 걷기 위해 해병대 지원을 했다.
육군을 가려고 알아보니 1년을 기다려야 한다고 하기에 해병대 지원을 해 3번 만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병과 부사관으로서 월남전 참전한 아버지의 큰 해병대 사랑 때문에 해병대에 지원하게 됐다.
동생도 해병대 부사관으로 복무 중이었다.
1994년 해병대 1사단 수송부에서 운전병으로 시작된 26개월간의 해병대 생활을 한 지덕 스님은 아버님 세대에 비하면 자신의 해병대 생활은 말할 수 없이 부끄럽다고 말했다.

■ 스님이 된 해병대원
속세를 버리고 스님의 길로 접어들게 된 동기는 부모님들께서 불자이시고 스님들하고 많이 접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중·고등학교 시절 방학 때 절에 가서 일주일씩 있다가 18살 때 절에서 수행을 처음으로 맛보게 되면서 버릴 수가 없어서, 그때는 마음고생이 많았다며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했다.
수행의 맛을 못 봤으면 지금은 밖에서 일반인들과 같이 직장을 다니면서 살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절에서 10년쯤 지나니까 “옛날에 시주하러 다니시는 스님 한 분이 어머님하고 손 붙잡고 놀고 있는 저를 보시고는 쌀을 받으면서 집에 아마 스님이 되려고 하는 아이가 있을 거라고 하는 말을 스님이 되고 나니까 아버님이 말씀해주셨다”고 했다.

■ 해병대 동생, 도흥 스님
부사관 출신 동생 도흥 스님은 지덕 스님보다 먼저 해병대 입대해 4년 6개월간 근무를 했다.
이후 “돈 벌어서 형을 대신해서 자기가 꼭 부모님을 모셔야 형이 수행할 수 있다”며 포항의 포항제철에 근무했다.
그렇게 15년간 살다 보니 친구들 사는 것을 봐도 재미도 없고, 결혼도 생각이 없다고 하기에 “그럼 스님의 길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우리가 수행하면서도 얼마든지 부모님을 모실 수 있다”고 지덕 스님이 말했다.
그렇게 도흥 스님도 삼십 대 후반 때 뒤늦게 수행의 길로 들어와 8년째 스님으로 수행하고 있다.
동생 도흥 스님과는 “대구 동화사에서 1년 동안 같이 수행 생활을 한 적이 있다”면서 “지금은 강화도 보문사에서 수행 중이며 앞으로 1년 후면 이곳 삼각산 운가사에서 같이 수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 수혜 스님이 창건한 삼각산운가사
“1947년 수혜 큰스님께서 관세음보살의 현몽을 받으시고 삼각산운가사를 창건했습니다. 스님께서는 항상 이런 말씀을 했습니다. ‘당신은 그렇게 많이 배우지 못했다고 공양주만 해서 아는 게 별로 없다.’ 정말 현명하고 훌륭한 스님이었으며, 포교와 자비행이 정말 뛰어나신 분이었습니다.”
수혜 스님은 1996년에 사회복지법인 운가자비원을 설립하고, 2002년도에는 국가 보조금 없이 수유종합사회복지관을 건립했다.
또한 복지관 운영과 어린이집 위탁을 받아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 위로는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교화하는 보살의 수행)을 몸소 실천했다.
지덕 스님은 삼각산운가사 관내에 있는 신도와 해병대전우회 회원들에게도 시간이 허락되는 한 봉사하려고 계획을 잡고 있다고 했다.
또 여유가 생기면 노스님이 해왔던 홀몸노인 돕기, 지체장애인 돕기 등 많은 사회복지 봉사활동을 할 것이라고 했다.

■ 불교와 해병대정신
지덕 스님은 법어와 해병대정신에 관계에 대해 “절에서 이야기하는 보살 행위가 해병대정신하고 맞지 않나 생각이 된다”며 “해병대에서는 ‘헌신’이라고 말하지만, 절에서는 ‘보살 행위’라고 한다”고 말했다.
한없는 중생들에 대한 부모가 어린아이를 돌보듯 그러한 마음, 해병대정신 자체가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 온몸을 던지는 것이 마치 같은 뜻이 아닌가 생각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절에서 여자 신도를 보살이라고 하고 남자 신도를 거사·처사라고 하는데, 보살이라는 말은 수행자를 지칭하는 말로써 절에서 모든 수행자를 보살님이라고 합니다”
지덕 스님은 한없이 영민하고 마음 아프게 생각하고 거두려고 하는 보살 행위, 그런 것과 나라와 국민을 위해 헌신하는 해병대정신과 절에서의 보살 행위가 상통하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 전하고 싶은 이야기
지덕 스님은 “요즘 세상에는 너무나 많은 글과 말들이 넘쳐난다”면서 “지금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말보다는 행동으로 보여 주어야 할 것이며, 천 가지, 만 가지 잘난 척 보다는 한 가지의 행동을 보여 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아버지께서 ‘베풀면서 살아라, 도우면서 살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무엇을 해야 할까 생각하다가 사실은 태어나는 일과, 죽는 일이 가장 큰 일이라고 생각하고 평소에 천 마디 말하는 것보다, 불교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하는 것보다 마지막으로 가시는 분들에게 염불을 한번 해주는 것이 훨씬 값진 일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지덕스님은 “사람들은 아픈 일을 겪었을 때 말없이, 조건 없이 가서 염불해 준다면 평소 불교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 보다 신도들의 마음에 와 닿을 것”이라며 “이러한 이야기를 아버지한테 말씀드렸더니 무척 기뻐하시며 초심을 잃지 말고 끝까지 하라고 하셨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