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 경상도 포항 지방에는 홍곤출(紅褌出)이라는 도적이 있었다.

본래는 황가인데 홍곤출(紅褌出)이라는 별명이 붙은 이유는 항상 붉은 잠방이만 입고 도적질을 했기 때문이었다.

본래 수군에 지원하였으나 자맥질을 못 하고 바다를 두려워 하여 땅으로 돌격하여 도적질을 하게 되었다.

홍곤출과 부하들은 뒷간의 썩은 두엄냄새를 풍기면서 도적질을 하였는데 그 악취가 바다건너 대명과 왜국까지 전해질 정도였다.

그들은 도적질을 할 때 남자들을 겁탈하고 강제로 자신들의 부하로 삼으면서 제 스스로 들어왔다고 했다.

또 부하들에게 괴이한 이름을 지어주는 관습이 있었는데 여진이나 몽골에도 없는 이름이었다.

범어에 정통한 승려들도 알지 못하는 이름이었는데 다만 명나라 사신을 따라온 남만인이 "그것은 우리말이다. 우리나라에서 숙부를 가리켜 그렇게 부른다." 하며 자기네 글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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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고 썼다.

그들은 마을을 노략질하고 모조리 불태우며 유희를 한다고 하였다.

이윽고 일본이 조선을 침략하고 홍곤출이 있는 곳 역시 왜군의 공격을 받았다.

포항을 공격한 왜장은 바구리노스케베(場栗之助兵衛)라는 자였다. 그는 넉 자나 되는 왜검을 사납게 휘둘렀는데 칼날이 번쩍이면 조선인의 팔다리가 떨어져 나가고 머리뼈가 가래떡 썰리듯 잘려 나갔다.

도적질도 나라가 있어야 하는 법.


홍곤출은 부하들을 이끌고 의병대를 조직해 바구리노스케베에게 맞서기로 하였다.

의병대는 관군으로부터 삼지창 월도  엑스칼리버 편곤 등을 대여(竊盜)하여 무장하였다.

마침내 왜병들과 맞닥뜨린 의병대는 그들과 자웅을 겨루게 되었다.

왜장 바구리노스케베가 칼집에서 왜검을 뽑아 홍곤출에게 달려들었다.


시퍼렇게 날이 선 바구리노스케베의 칼은 햇빛을 받아 번쩍이며 공중에서 춤을 췄다.


이에 질세라 홍곤출도 잠방이에서 잘 단련된 오도(汚刀)를 꺼내 왜검에 대적했다.

조선 땅에 상륙한 이래로 자신의 검을 막아낸 어떤 무기도 못 본 바구리노스케베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무엇이든 한 번만 닿으면 두 동강이 났기 때문이다.

왜검과 오도가 칭! 챙! 총! 하는 소리를 내며 부딪히자 불꽃이 튀었다. 지켜보는 사람의 심장을 옥죄는 대결이었다.

69합을 겨루고도 승부가 나지 않자 바구리노스케베가 홍곤출에게 왜말로 이르길


"키사마 나까나까 야룬자나이까(네놈 안에다 안에다 하지 않겠는가)" 하였다.


그러자 홍곤출도 역시 왜말로 "오마에 코소(笑)" 하며 상대를 추켜세웠다.

마침내 5합을 더 겨루고 74합째에 승부가 결정났다. 바구리노스케베의 검이 부러진 것이었다.

왜병들은 혼비백산하여 다스께떼 다스께떼 하며 소리를 질렀다. 이는 조선말로 혼자서는 할 수 없으니 도와주시오라는 뜻이다.

의병대가 바구리노스케베와 왜병을 포위하고 그들의 무장을 노획하니 왜검 장창 장도 엠십육 사슬낫 조총 등 수십종에 달하였다.

홍곤출과 부하들이 왜군들의 훈도시를 벗겨 그들을 겁간하였다. 조선 사내들은 범하면 따흐흑 따흐앙 하는 소리를 내는데 왜군들은 간사스럽게도 계집처럼 다메(감사하옵니다) 야메떼(영광이옵니다) 같은 소리를 내었다.

의병대는 왜군에게 당한 조선인들의 억울함을 달래기 위해 왜군들을 의병수육으로 만들어 원혼들의 넋을 위로하였다.

왜란이 끝난 후 홍곤출과 의병대는 나라에서 벼슬을 내렸으나 사양하고 사내들을 능욕하고 자발적으로 입단시키며 평범한 생활을 하였다.

裸爾裸爾 車車車

(너를 벗겨 너를 벗겨 오도수레에 실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