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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역 후, 마음껏 누리던 바깥 세상에서의 자유의 즐거움도 슬슬 시들해지고 현실과의 경계벽도 서서히 허물어지며 그 틈으로 현실이라는 차디찬 냉기가 나만의 발할라로 스산하게 스며들어 그 한기를 느끼기 시작하던 무렵, 나는 구직어플을 통해 아르바이트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놀만큼 놀았으니 이제 복학 후 사용할 내 생활비 정도라도 넉넉히 미리 마련해두자는 심산이었다.



복학까지는 얼추 두 달 남짓 남았던지라 장기 아르바이트는 사업주들이 나를 내켜하지 않아할 것이 분명하였기에 나는 부득불 단기 아르바이트 위주로 알아볼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기왕하는거 몸이 좀 힘들더라도 짧고 굵게 목돈을 만질 수 있는 이른바 노가다 아르바이트를 해보자라는 생각이었고 그런 참된 노예이자 일꾼은 웬만한 사업주들이 눈에 불을 켜고 쌍수들어 환영할만한 인재상이었던지라 나는 보다 많은 선택지를 두고 즐거운 고민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고민 끝에 내가 고른 것은 도시 외곽에 자리잡은 모 공단의 어느 중소기업의 생산직 아르바이트였다. 철강을 가공하고 제련하는 사업을 하는 그 회사는 철강이라는 묵직하고도 육중한 어감이 가져다 주는 고되고 힘들 것 같다라는 인상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는지 하루가 멀다하고 나처럼 호기롭게 덤벼든 휴학생이나 20~30대 초의 건장한 성인은 물론이고 노가다라면 잔뼈가 굵었다고 자부하는 웬만한 일용직 노동자들도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나가떨어지기로 악명 높은 곳이었다.



그럼에도 내가 그 아르바이트를 선택한 데에는 평소 운동을 통해 단련된 체력을 자부하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자타가 공인하는 내 특유의 인내심과 끈기를 믿어 의심치 않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부모님 말씀에 의하면 아직 말도 제대로 못할 어릴적부터 한번 마음 먹은 일은 어지간해서는 굽히거나 물러서는 일이 없어서 엄하셨던 아버지도 그런 나를 보시고는 저놈의 새끼는 도저히 못 이기겠다라며 혀를 내두르셨을 정도라고 하니 먹어가는 나이와 함께 뿌리내린 그 고집과 인내심, 오기 또한 더욱 굳어지고 단단해졌으니 20대 초의 나는 자평하기에도 상당한 뚝심의 소유자였던 것이다.



뭐, 아무튼 각설하고 아르바이트에 지원하고 그 다음날 회사로부터 당일에 바로 면접을 보러 올 수 있냐라는 연락을 받은 나는 흔쾌히 응하고 그 즉시 회사로 향했다.



비록 일개 생산직 아르바이트라고는 하나, 고될 뿐 더러 위험을 감수하고 하기에 작업의 이해도 또한 중요한 만큼 작업자의 수준을 알아야 하기에 약식으로라도 현장 관리자들과 대면 면접을 해야한다라는 회사 노무 담당자의 안내에 따라 나는 시뻘건 쇳물이 콸콸 쏟아지고 증기, 열기로 자욱한 공장 한 켠에 마련된 작은 사무실에서 현장 관리자들과 대면하게 되었다.



면접관으로 나온 현장 관리자들은 만약 같이 일하게 되면 나를 관리하고 지도할 현역 현장반장인 김 반장과 김 반장 이전의 전임 반장이자 회사의 건국공신, 원훈이라는 소리를 들을만큼 오랫동안 현역으로 회사에 몸을 담고 있다가 퇴직 후에도 고문으로서 남아있다라는 정 고문이라는 사람들이었다.



여느 공장의 나이든 아저씨들이 그러하든 이 두 사람 또한 첫 인상은 매우 날카로웠다. 그러나 둘의 차이라면 김 반장은 생겨먹은 심술궂은 생김새처럼 나를 이리저리 뜯어보는 듯한 기분 나쁜 시선에 반말과 존대가 오락가락 하는 어투, 불거져 나온 그의 뱃살만큼이나 빵빵한 양 볼을 연신 이완과 수축을 반복하며 거친 숨을 내쉬는 것까지 여러모로 거슬렸고 반면에 후덕하다 못해 비만이 의심되는 김 반장과는 달리 보통 체격에 날렵하고 짙은 눈썹이 인상적이었던 정 고문은 후 경상도 특유의 강세가 두드러지는 사투리가 묻어나오긴 하였으나 시종일관 존대하며 중저음의 점잖고 온화한 어조였기에 첫 인상 점수는 아무래도 정 고문이 선점하게 되었다라는 것이다.



"혹시 군대는 어디 나오셨습니까?"



면접도 어느 정도 거의 다 보고 한가로이 사담을 나누는 절차로 접어든 김 반장이 문득 질문을 던졌다.



"예, 육군 수색대대 나왔습니다."



"육군?"



반문하는 김 반장의 미간이 꿈틀거리는 듯 했다.



"그렇군요.. 전역은 얼마 전에 하셨다고 했고..."



김 반장은 마른 입맛을 쩍쩍 다시며 말꼬리를 흐렸다. 표정을 보아하니 못내 어딘가가 아쉽거나 마땅찮은 듯한 모양새였다.



"허허, 수색대대라면 그 힘들다는 곳인데 거길 다 다녀오시고, 고생하셨겠군요."



옆에서 듣고 있던 정 고문이 마냥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보이며 말하자 나 역시 멋쩍은 웃음을 지어보이며 대답했다.



"과찬이십니다, 대한민국 남자라면 어차피 모두가 다 다녀오는 군대인걸요."



"뭐, 군대라고 다 같은 군대는 아니지요. 허허..."



김 반장이 돌연 내뱉듯이 던진 말에 정 고문은 흘끗 김 반장을 쳐다보았고 나 역시 당황스러움도 잠시 그의 의중이 무엇일까 추측하며 한편으로는 도발어린 그 발언에 불쾌하면서도 어찌 반응을 해야 하나 하고 고민하던 차에 정 고문은 내 눈치를 살피듯 나와 김 반장을 번갈아 보더니 당황스럽다는 듯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여는 것이었다.



"김 반장, 뭔 소리고, 갑자기... 허허..."



"농담입니다 하하.. 요즘 군대는 옛날에 비해서 군대 같지가 않으니 말이죠."



김 반장도 잠시 아차 싶었는지 이내 어색하기 짝이 없는 미소를 지으며 손사래를 치고 있었으나 나로서는 초면에, 그것도 면접자리에서 웬 갑자기 군대 얘기를 하나 싶기도 하거니와 사람을 불쾌하게 만드는 저 비아냥대는 어투에 대해 대관절 어찌 반응을 해야 하나 싶어 난감한 것이었다. 그러자 정 고문도 이미 굳어져 있는 내 표정에서 나의 불편한 심기를 읽었는지, 이내 면접을 마무리하려는 듯 했다.



"자자, 어찌 되었건 간에 A씨는 혹시 우리 회사에서 일할 생각 있으십니까? 일단 제가 보기에 근면성실해 보이고.... 또 빠릿빠릿하게 일 잘할 것 같으니 같이 일하면 좋을 것 같은데.. 김 반장은 우예 생각합니까?"



김 반장은 잠시 뜸을 들이더니 코만 킁킁대는 것이었다. 그러고는 이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나를 쳐다보았다. 그런 그의 행동에서 나는 어렵지 않게 내포된 그의 불만과 나에 대한 탐탁찮음을 느낄 수 있었다. 대체 내가 어느 부분에서 잘못 말했길래 저러는 걸까? 내가 면접 중에 무슨 실수라도 한건가? 혼자 아무리 돌이켜보아도 그냥 평이한 면접자리였다. 사실 까놓고 얘기해서 생산직 아르바이트 자리에서 심도있는 문답이 나올리가 없지 않은가. 그냥 내가 싫어서 저러는 걸까?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억울한 마음에 돌연 욱하고 속에서 무언가 뜨거운 것이 끓어오르는 듯한 기분이 들었지만 참아야지 어쩌겠는가. 다만 한편으로는 면접 전 사전 안내해준 바와 같이 만약 여기서 일하게 된다면 저 반장이 나의 직속 관리자로서 좋든 싫든 저 사람과 가장 많이 접하게 될 것일텐데 벌써부터 나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기색을 보이니 걱정도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어차피 두 달이다. 두 달만 바짝 일하고 나갈 것인데 그깟 두 달을 못버티겠는가. 두 달 뒤면 어차피 안 볼 사람이 아니던가.



"네, 저도 여기서 짧게 일하더라도 열심히 일하고 싶습니다. 다른 사람들처럼 도망 안가고 일해 보겠습니다."



호기롭게 포부 아닌 포부를 밝히는 나의 대답에 정 고문은 만족스럽다는 듯 껄껄 웃었고 김 반장은 눈을 내리깔고 입술을 삐죽이며 여전히 애꿎은 내 이력서만 만지작 댈 뿐이었다.




- 계 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