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는 픽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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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무조건 해병대다.



방위 출신이셨던 아버지께서는 20살이었던 저에게 해병대에 지원하라고 이야기 하셨습니다. 아버지의 말에 거스를 수 없었던 저는 어쩔 수 없이 육군 대신 해병대에 지원을 했고, 아버지는 그런 저를 보고 "역시 남자다, 나는 자랑스런 해병대원의 아버지다!" 라고 동네방네 자랑하고 다니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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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저는 벚꽃이 피던 날, 훈련단에 입소했습니다. 저와 같은 많은 젊은이들이 까까머리를 하고 억울한 표정을 짓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희는 도살장에 끌려가는 돼지처럼 번호가 매겨졌습니다. 웃기지 않습니까? 청춘을 즐겨야 할 20대 젊은이들이 기계로 들어가는 돼지들 마냥 줄지어 서 있다는 것이? 그렇게 저의 훈련소 생활, 군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아무리 군대가 편해졌다고 했지만 훈련소 생활은 저의 몸과 마음에 심한 부담을 주었습니다. 조교와 교관들의 욕설은 기본이었고, 구타와 가혹행위가 만연한 작은 사회였습니다. 아, 이렇게는 말하고 있지만 모든 분들이 다 그렇다는 건 아닙니다. 그저 그런 사람들의 비율이 더 많을 뿐이었습니다. 하루는 중식을 먹던 도중 사레가 들려 심하게 기침을 하였습니다. 훈련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목에선 쇳가루 맛이 났습니다. 그 중 저를 엄하게 기합 주시던 조교님이, 아직도 이름이 기억납니다. 박정우 조교님이셨습니다. 박 조교님이 저를 보시고는



-훈련병은 농부들이 피땀 흘려 길러낸 쌀과 나물을 기침한다는 명목 하에 뱉어냈다. 본 조교는 이를 용납할 수 없다.



라고 하시며, 훈련에서 예외 시켜 얼차려를 주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받아들였습니다. 이 행위는 조교님이 저를 한명의 해병대원으로 만들기 위해서, 빨간 명찰을 달기 위해서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저는 감사했습니다, 아니, 감사했을까요? 그 때 저의 마음은 어땠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이 곳을 버티지 못할 것 같을 때, 아버지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아버지는 힘드냐는 말 한마디 없이



-네가 해병대원이라 이 아비는 자랑스럽다!



라고 말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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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이 거의 끝나갈 무렵, 저는 빨간 명찰을 달았습니다. 그리고 정신을 차려보니 저는 배를 타고 강화도에 도착했습니다. 이곳이 내가 근 2년 가까이 있을 곳이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필! 승! 이병! 최! 갑! 룡! 19OO년! 4월! OO일! 전입을! 명! 받았습니다! 이에! 신고! 합니다!

저는 충분히 열심히 했다고 생각합니다. 선임들이 나를 좋게 봐주겠지, 싶었습니다.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쟤 목소리가 너무 크다야. 신병 교육 안 시키나?

그렇습니다. 최재민 해병, 그러니까 지금은 전역하신 최재민 병장님과 다른 분들께서 몰래 티비를 보고 계신 와중에 제가 눈치 없이 큰소리를 냈다고 하시는 겁니다.

그때부터 지옥이 시작되었습니다.

이제부터는 최 해병님이라고 하겠습니다. 저는 전입 첫 날부터 최 해병님께 찍혔습니다. 그 후 저는 많은 것을 알았습니다.

일단 물 통제라는 것을 당했습니다. 저는 식사 시간에도, 뜨거운 태양 아래서 작업한 후에도, 강제로 참여한 풋살 후 목이 말라도 물을 마실 수 없었습니다. 심지어 마시다 걸리면 죽이겠다고 이야기 하셨습니다.

아, 혹시 공기청정기라고 아십니까? 선임이 방귀를 뀌고 박수를 두 번 치면 숨을 크게 들이 마셔야 했습니다. 피가 고이는 느낌이 날 만큼 매일 목이 따가웠습니다.

제일 힘들었던 건 최 해병님의 '샌드백' 이었습니다.  가만히 서서, 움직이지 않아야 했습니다. 꼼지락거려도 안됐습니다. 그 후, 최 해병님의 주먹이 제 명치에 꽂혔습니다.

한번은 옆구리를 맞고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에 스르륵 하고 쓰러졌었습니다. 저를 본 최 해병님은 저에게 다가와,

-너무 아팠지? 미안해.

라고 하시고는 제 맞선임이신 김동수 해병님을 세우고 복날에 개 패듯이 때리셨습니다.

-샌드백에 모래가 터져서 다른 걸로 갈아 껴야겠다~

다른 건 많지만 더 적지는 않겠습니다. 제가 계속 맞던 일병 3호봉 때, 한병태 하사님이 맞던 저를 보고 최 해병님을 멈춰 세우셨습니다.

-니 뭐 하나?

-필썽. 장난치고 있었슴다.

저는 이때까지만 해도 한 하사님이 그만하라고 할 줄 알았습니다.

-심하게 하지 마라.

-네, 들어가십쇼. 필썽~!

그 후 저는 장난이었다고 먼저 안 말했다는 이유로 개 같이 맞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괜찮았습니다. 나는 남자니까. 열심히 작업하고 선임에게 복종한다면 그만하실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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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저는 완전히 투명인간 취급을 당했습니다. 언제나 혼자였습니다. 부대원들은 저를 '기열'이라고 불렀습니다. 식사 도중 저를 치고 가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났습니다. 후임들조차 저한테 경례를 하지 않았습니다.

제일 힘들었던 건 뭔지 아십니까? 동기들조차 저를 보면 눈을 피하면서 무시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저를 보고 짓는 불쌍하다는 눈빛. 그게 제일 힘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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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지났을까, 소대장님이 저를 불렀습니다. 아버지께서 갑자기 쓰러져 병원에 있다고, 휴가 준비를 하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아버지 생각보다도 이 부대에서 사흘이라도 나갈 수 있다는 생각이 더 앞섰던 것 같습니다. 이 지옥에서. 최 해병의 손에서.

휴가를 나와 아버지를 뵈러 갔습니다. 아버지는 인공호흡기를 달고 계셨습니다. 의사 말로는 심장마비가 왔다고 합니다. 아버지 직장 동료분들이 이야기하시길,

-너희 아빠는 참 좋은 사람이다. 언제나 해병대 간 아들 자랑만 한다.

아버지는 제 걱정보다는 해병대 아들이 더 먼저였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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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 복귀 후, 배수로 작업을 하던 도중에 최 해병이 저를 불렀습니다.

-아빠는 봤냐?

-일병 최갑룡. 맞습니다.

최 해병님께서 걱정해주신 듯 했습니다. 최 해병님은 한숨을 쉰 후 담배에 불을 붙이고 말을 이어 나갔습니다.

-느그 애비, 왜 그런지 아냐? 기열 아들이라 애새끼 복이 없어서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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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기억나는 건 피를 흘리면서 쓰러져 있는 최 해병님과 삽을 쥐고 가쁜 숨을 몰아 쉬던 저와 최 해병을 흔들고 있던 사람들 뿐이었습니다.

저는, 일병 최갑룡은 지금 징계위원회에서 이렇게 진술합니다. 그런데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왜 내가 가해잔데? 왜 내가 처벌 받는건데? 난 그냥 잘 하고 싶어 서 그런건데 왜? 나쁜 건 그 새낀데 왜 나야! 왜 나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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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서 병사들이 구보를 하고 있다. 우리는 해병대... 라이라이 차차차... 차차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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