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산동 IT 기업에서 차장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나에게는 아내가 있고 딸이 하나 있었다.

집은 하계동 40평짜리 작은 아파트가 한 채 있었고 직장까지 7호선 전철로 다녔다.

그날은 1989년 2월 31일 밤이었다.


평소처럼 회사에서 나오는데 웬 새빨간 봉고차 한 대가 서 있었다.

역까지 걸어가는데 웬지 자꾸 그 봉고차가 따라오는 것 같았다.

조금 불안함을 느꼈지만 그냥 우연히 그쪽으로 가려는 차려니 하고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나는 학창시절 검도 2단까지 수련했고 직장에 다니면서 주짓수와 헬스를 꾸준히 하고 있다.

혹시 몰라 가스총과 강철로 된 삼단봉도 하나 가지고 다녔다.

만약 저 봉고가 나를 납치한다면 호신용품으로 매운맛을 보여 줄 것이다. 그럴 생각이었다.

전철을 타고 하계역에 도착했다.

그런데 아까 그 빨간 봉고차가 여전히 나를 따라오고 있었다.

'설마... 세상에 빨간봉고가 한 대만 있는 것도 아니고 전철로 왔는데 쫓아올 수가 있나? 아니겠지'

이것은 정말 안일한 생각이었다.

하계동 해병전우회 컨테이너 앞마당을 지날 때 갑자기 빨간 봉고가 내 앞에 섰다.

나는 무시하고 지나가려고 하는데

다시 내 앞을 막아섰다.

비켜서 가려는 순간 또 막았다.

뒤로 돌아가려고 하면 어느새 내 뒤를 막고 있었다.

그렇게 봉고차는 나를 축으로 빙빙 돌기 시작했다.

굉음을 내며 나를 스칠듯이 위협적으로 돌았다.

그리고 잠시 후

봉고차에서 사내 하나가 내렸다.

보통 키에 다부진 몸을 가진 남자였다

팔각모를 쓰고 군화를 신었는데 옷은 빨간 반바지 한 장만 입고 오른쪽 가슴에 빨간 명찰을 피어싱으로 박아 놓았다.

명찰에는 한글도 아랍어도 아닌 요상한 글자가 씌어 있었다.

다른 사람이 봤다면 남자가 덩치도 나보다 작고 내가 무기도 있으니까 충분히 대항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그 남자에게서는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깡이 느껴졌고 몸에서는 악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나는 그대로 얼어버렸고 운동도 호신용품도 무용지물일 뿐이었다.

남자가 입을 열었다.

"가자"

"네"

나는 순순히 오도봉고에 탑승했다.

탑승할 수밖에 없었다.

어떤 협박도 강요도 납치도 없었다. 나의 자발적 의사표시였다.

어떻게 자식이고 아내고 다 버리냐 가족을 생각하면 그럴 수 있냐 그렇게 겁이 많냐고 하겠지만 막상 저 상황이 닥쳐보면 그렇게 쉽게 말하지 못할 것이다.

그 뒤 나는 박철곤 해병님 무톤듀오 해병님 석딕조 해병님과 함께 나와 같은 기열을 구제하기 위해 열심히 아쎄이들을 물색하고 있다.

다음은 어디로 가볼까

성동구? 강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