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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여개의 부품들로 정밀하게 조립된 K-2 소총에 있어서 가스조절기만큼 쉽게 분실하게 되는 부품은 아마 없을 것이다.


외부에 노출되어 갖은 외력의 영향을 받기도 쉽거니와 조금이라도 결합부와의 호환이 맞지 않으면 서서히 떨어져 나가는 것이 이 가스조절기란 녀석의 까다롭고도 너절한 특징인 것이다.


그리고 여기, 흡사 가스조절기를 연상케 하는 어느 한 녀석이 있었다.


모든 것은 이 가스조절기에서 비롯되었다.









기수 동기로서 A란 녀석은 더할 나위없이 좋은 친구였다.



우리 나이 대의 또래들이 대개 그러하듯 녀석도 대학교 1학년을 마치고 국가의 부름을 받아 해병대교육훈련단에 입소하여 나처럼 낯설고도 고된 군대라는 사바나 초원에 첫 발을 들여놓았다.



그리고 이 사바나의 우리라는 가젤들로 말할 것 같으면, 머리도 죄다 돌격머리로 똑같이 깎아놓아 외관으로는 그 놈이 그 놈 같이 보이고 그동안 어떠한 삶을 살아왔고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건 죄다 똘똘 말아 빵틀에 우겨넣고는 군인이라는 명찰을 달아 기계적으로 찍어내어 버리는 군대라는 집단의 특성상, 특별하게 무엇하나 도드라지는 것이라곤 없던 우리였으나 A는 그 중에서도 우리와는 뭔가 확연하게 차이가 두드러지는 다른 이질적인 존재이기도 했다.



A는 쉽게 말하자면 '인싸' 라 할 수 있었다. 바깥에서는 이름만 들어도 아는 서울의 어느 명문대에 재학 중이었으며, 그가 수줍게 보여준 여자친구 사진은 나를 비롯한 뭇 동기들의 부러움을 사기에는 충분하였는데다 어디 그 뿐인가, 그의 생김새만큼이나 서글서글한 성격과 매사에 자신 넘치는 모습, 이에 우리는 훗날 그가 자대배치 받고 선임들에게 이쁨받는 'A급 아쎄이' 로 거듭날 것이라는 데에 이견이 없을만큼 녀석은 가히 군계일학에 비견될만한 존재였다.



그러나 그런 그를 보며 뒤에서 씁쓸함과 비참함을 맛보던 존재가 나였다. 평범한 외모, 평범한 학벌이라는 그야말로 범속한 인생의 표본이 바로 이게 아닐까 싶을 만큼 초라한 인생의 성적표를 쥐고 있던 내게 있어서 녀석은 나의 친구이자 우상, 또한 질시어린 시선을 보내게끔 만드는 다른 세계 속의 존재였다. 물론, 모든 것은 나의 하등 쓸데없는 자격지심에서 비롯된 것임을 나 역시 자각하고 있었으나, 질투에 눈이 멀어버린 사람의 마음이란 것이 실로 간사하고 어린아이 같이 유치하기 짝이 없어 나는 겉으로는 그와는 좋은 동기로 지냈지만 한편으로는 내심 그의 완벽함이 허물어져 내가 속한 인세(人世)로의 추락을 바라는 표리부동한 관계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고되었던 훈단에서의 기간이 끝나고 나와 A는 자대배치를 받아 어느 해병대 여단의 모 대대로 전입을 가게 되었다. 그 대대는 해안철책선을 따라 경계하는 부대로서, 철책선을 따라 부단히 움직이고 경계근무를 서는 것이 주요 임무였다.



입대 전 인터넷이나 주위 형들로부터 수없이 듣고 봐온 이른바 '군생활 썰' 에 비하면 생각보다 덜 힘들겠다라는 안도감이 들었던 나는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전입 첫 날밤, 소대장을 따라 A와 첫 경계근무에 투입되었다. 신병들인만큼 첫 날은 소대장을 따라 섹터도 익히고 소대장과의 상담도 겸하는 것이 주된 취지였다.



겨울의 해풍은 생각보다 매서웠다. 목토시건 귀마개건 온갖 방한장비를 동원하여도 뚫고 바람이 숭숭 들어오는 것이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번쩍이는 철책조명을 따라 나와 A는 소대장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거니 받거니 하며 섹터를 걸었고 이윽고 소대장을 따라 섹터의 한 구석에 마련된 휴게초소에 발을 들여 놓았다.


휴게 초소는 그 이름에 걸맞게 몸이 얼어있을 초병들을 위해 마련된 난로와 약간의 부식이 준비되어 있었다. 소대장은 익숙하다라는 듯 손을 비비며 여기서 잠시 시간 좀 때우다 가자라며 우리에게 편하게 있을 것은 권했고 우리 또한 생각보다 매서웠던 한풍에 괜스레 빼는 법 없이 냉큼 마련된 의자에 앉았다.



"우리 여기서 딱 30분만 있다가 가자. 너네도 편히 쉬어. 여기 과자도 있으니까 좀 먹고."



소대장은 신병들 앞에서 농땡이 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내심 멋쩍은지 어색하게 웃으며 우리에게 과자를 건네었고 우리는 어리버리한 신병이 그러하듯 굽신거리며 황송하다라는 표정으로 공손히 받았다.



몇 분쯤 지났을까, 난로 가까이 의자를 바짝 땡겨 앉고 말없이 핸드폰만 보던 소대장은 이내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고 몸이 녹았던 나도 졸음이 밀려왔으나 애써 참고 있었다. 그리고 A를 흘끗 보니 A 역시 매한가지로 눈꺼풀이 반쯤 감겨 있는 것이었다. 평소에는 눈도 똘망똘망하고 준수한 외모를 자랑하던 녀석도 졸음과의 힘겨운 사투를 벌이는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보니 나는 내심 웃음이 일었다. 녀석도 이런 경우가 있구나. 너도 사람이긴 하구나.



그렇게 실없는 웃음을 흘리며 벽 한켠에 세워둔 K-2 소총이 행여나 쓰러질세라 총을 조심스레 잡고 바닥에 눕히려는 찰나, 무심코 스치듯 본 K-2 소총의 대가리 부분이 뭔가 허전하다라는 느낌이 문득 들어 다시금 보니 가스조절기가 있어야 할 부위가 텅 비어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 순간 잠이 순식간에 달아나며 가슴이 섬뜩해진 나는 다시금 눈을 비비고 보았으나 가스조절기는 없었다. 황망한 마음에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초소의 바닥 어디에도 가스조절기는 보이지 않았다.



어라, 어디갔지. 어, 이러면 안되는데...



그러기를 몇 분, 아무리 찾아봐도 초소에 없는 것이 아무래도 섹터 어딘가에서 흘린 것 같았다.



아, 좆됐다.. 하, 시발, 시발, 시발... 어쩌지 이거...



전입 첫날부터 가스조절기를 잃어버린 신병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쓰게 생긴 마당에 나는 애써 요동치는 가슴을 달래듯 부여잡고 연거푸 마른 침만 삼켰다. 이제 부대에 복귀해서 총기 안전검사를 하고 총기함에 수납할텐데, 모르는 척 하고 있어도 조만간 들통날 것이 자명했다. 의도했건 안했건 어쨌든 나의 실수는 곧 찐빠요, 이는 곧 소대장은 물론 선임들로부터 병신취급을 받게 될 것이 훤히 보였다. 



곧 닥쳐올 후환으로 두려움으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졸고 있는 소대장과 또한 어느새 같이 졸고 있는 A를 번갈아 보며 황망히 눈알을 굴리던 차에 A의 옆에 놓여 있는 K-2 소총이 눈에 들어왔다.



녀석이 매끈하게 닦아놓은 가스조절기는 난로의 불빛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다.




- 계 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