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해병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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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1 박 노인>



"이... 이 시부럴 놈의 새끼가 또...!"



화가 난 박 노인이 주먹을 들어 개다리소반을 쿵 하고 내려치자 잔에 담겨 있던 막걸리가 쏟아져 나와 이불을 흥건히 적셨다.


그러나 그런건 현재 박 노인의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박 노인은 마치 모니터 속으로 들어갈 기세로 모니터 화면에 얼굴을 바싹 붙이고 침침한 눈을 끔뻑이며 글을 읽어내려가고 있었다.



'여기 새끼들은 왜캐 진지충 투성이냐?'


'하긴 인생 최대의 업적이 해병대 전역일 새끼들이니 그깟 사고로 진지빨만도 하다. 이게 다 니들이 부르짖는 전우애란거겠지?'


'특히, 여기 상주하는 노땅 꼰대새끼들 말이야.'



아이피 주소 12.XXX


놈은 오늘도 어김없이 출몰하여 해병대 갤러리에 뭣같은 글을 싸지르고 있었다.


예전부터 간간히 도발성이 짙은 쓰레기 같은 글들을 쓰며 박 노인 자신을 포함한 뭇 이용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었는데 최근 해병대에서 벌어진 한 비극적인 사고가 사회적인 이슈로 부상하여 덩달아 해병대 갤러리도 성난 여론으로 들끓기 시작하자 이에 편승한 이 놈도 덩달아 날뛰고 있었던 것이었다.



물론, 사고의 희생자를 애도하는 여론과는 정반대로 말이다.



박 노인 또한 '그 놈' 의 천인공노할 패악질에 화가 치솟았지만 무엇보다 그를 화나게 만들었던 점은 녀석이 줄곧 비아냥대고 까내리기 바쁜 해병대 출신의 노인들에 대한 지적질이었다.



하긴 인생 최대의 업적이 해병대 전역일 새끼들이니....'



몇 번이고 곱씹어보아도 화만 돋구게 하는 녀석의 발언에 박 노인은 홀로 욕지거리를 중얼거리며 분노를 삭히고자 몇 분째 작은 방 안을 서성이고 있었다.




이 작고 조촐한 단칸방의 세간살이는 한 눈에 보아도 독거노인의 방임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부엌의 싱크대에는 그저께 먹은 저녁의 식기류가 아무렇게나 널부러져 있었고 담배 연기로 누렇게 뜬 방바닥 장판에 나있는 담뱃불 지진 자국은 한켠에 오도카니 놓여져 있는 잿떨이의 존재를 무색하게 하고 있었다.


서랍장에는 세탁 후 제대로 말리지 않은 탓에 퀴퀴한 냄새를 풍기고 있는 옷들이 고개를 삐죽 내밀고 있었고 그 옆에는 그가 늘 자랑스레 입고 다니는 얼룩무늬의 군복이 반듯이 걸려 있었다.




자식 내외와 연을 끊고 산지 어언 10여년째.



자식 놈들이 있었더라면 박 노인의 꾀죄죄한 외양만큼이나 형편없는 이 방구석의 살림도 조금이나마 나아졌을까.



문득 자식 내외에까지 생각이 미치자 다시금 한동안 잊고 지내던 화가 울컥하고 치밀어 오르는 박 노인이었다.



'아버지, 솔직히 말씀드려서 저희도 이젠 힘들어요. 대체 언제까지 동네에서 그러고 다니실거에요? 동네사람들 창피하지도 않으세요?'



아들놈의 분노어린 절규가 귀에 쟁쟁했다.



"시건방진 놈의 새끼 같으니..."



박 노인의 입가에서 욕지거리가 흘러나왔다.



참으로 우둔하고도 어리석은 아들놈이었다.


해병대 전우회원으로서 지역의 발전과 유지에 불철주야 힘쓰는 자신에 대한 감사와 격려는커녕 비아냥대는 꼴이라니.


아들놈도 자신을 따라 해병대에 보냈어야 했거늘, 하필이면 육군을 간다고 하여 그냥 보내주었건만 지금 생각해보면 어쩌면 이것이 부자관계가 소원해지기 시작한 신호탄이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녀석도 해병대를 나왔으면 아마도 부친의 선행에 대해 아낌없는 지지와 박수를 보내주었으리라.



'아버님, 친구분들이랑 어울리시는건 좋은데... 자꾸 동네주민들로부터 불편하다는 얘기가 들려와요.. 그냥 가볍게 어디 여행이라도 가시거나 아니면 그냥 노인회관에서 화투나 바둑, 장기 같은거 즐기시는건 어떠셔요..?'



아들놈에 이어 이번에는 며느리가 꺼낸 말이 문득 떠올랐다.


며느리가 시아버지에게 조언이랍시고 가르치듯 하는 꼴이라니. 기가 차다 못해 어이가 없는 일이 아니던가.


같은 전우회 회원들과 어엿한 인생선배이자 웃어른들로서 동네주민들에게 진심어린 충고와 조언을 건넬 수도 있는 일이 아니던가.


그걸 잔소리와 간섭으로 받아들여 불편하다고 투덜대는 동네주민들도 그렇거니와 그걸 그대로 듣고 자신에게 불만을 토로하는 며느리 년의 꼬락서니라니!



"에이, 시부럴! 말세야 말세! 하여간 인터넷이건 사는 이 세상이건 웃어른에 대한 공경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으니 말이여!"



박 노인은 벌컥 화를 내며 모니터를 꺼버리고 주섬주섬 외투를 챙겨입었다.


자신의 울분을 달래주고 함께 나눌 수 있는 이들은 역시 전우들 밖에 없었기에 오늘도 그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밤을 지새울 생각이었다.



아, 그 전에 해야할 일이 있었다.



아무래도 해병대 갤러리에 글을 싸지른 그 놈, 12.XXX에 대해 일갈하는 글이라도 써놓고 가야 마음 한 켠이 편할 것만 같았던 것이었다.



박 노인은 양 손의 검지 손가락으로 한글자씩 두들기며 녀석이 싸지른 글에 댓글을 달기 시작했다.



'너 이 개놈의 새끼야. 네놈 어디서 배워먹은 짓거리냐. 어른 무서운 줄 모르고 함부로 지껄이다간 언젠가는 네놈 찾아가서 죽여주마. 네놈 어디 사느냐.'






<Chapter-2 김씨>




늦은 밤.



김씨는 고양이 걸음으로 살금살금 거실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그가 향하는 곳은 부엌이었다.



행여나 안방의 부모님이 들을세라 김씨는 냉장고 문을 조심히 열었다.



냉기가 훅 뿜어져 나오며 모습을 드러낸 그 안의 음식물들이 고운 자태를 자랑하기라도 하듯 김씨를 맞이하고 있었다.



그러나 김씨가 찾는 것은 따로 있었다. 어제 먹다 남은 치킨이 생각났던 것이었다.



헌데 아무리 찾아보아도 치킨은 보이질 않았고 김씨의 시선도 갈 곳을 잃고 방황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부모님이 먹어치운 듯했다.



"아, 시발..."



김씨가 뇌까리며 냉장고 문을 닫았다.



김씨의 하루는 부모님이 잠든 밤 12시부터 시작되건만, 하루를 시작할 양식이 동나버린 상태라니, 화가 울컥 치솟는 김씨였다. 그리고 그의 성난 눈길이 향한 곳은 굳게 닫힌 안방의 문짝이었다.



별 수 없이 빈손으로 터덜터덜 돌아와 책상 앞에 앉은 그는 초점 잃은 눈으로 정면을 응시했다.



책상의 한 켠에는 온갖 책들이 수북히 쌓여 서로 경쟁하듯 탑을 이루고 있었고 바로 눈 앞에서는 어느 여자 BJ가 거의 헐벗다시피 한 몸으로 야릇한 춤사위를 뽐내며 유혹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살아 움직이는 그 모니터의 바로 아래에는 방금 전 잠시 들여다본 공무원 시험책이 쳐박혀 있었다. 그 옆에는 그녀의 야릇한 모습을 보며 분출해낸 욕망 덩어리를 고스란히 품어낸 물티슈 두어 장이 스탠드에서 창백하게 흘러나오고 있는 백색조명을 반사하여 반짝이고 있었다.



시험이 얼마 남지 않았건만, 도통 공부가 손에 잡히지 않는 김씨는 한숨을 푹 쉬며 달력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2023년. 어느새 벌써 그의 나이도 서른을 넘긴 상태였다.



불과 4년전만 하더라도 호기롭게 시작한 싸움이었건만 어느새 장기전을 치루고 있던 터였다.


공무원, 경찰시험, 인적성, 토익, 토플, GSAT 등등.... 책상에 번잡하게 널려있는, 도통 교집합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이 무질서한 서적들은 그동안 그가 방황해온 지난 4년이라는 세월을 고스란히 방증하고 있는 듯 했다.



처음에는 방황하던 그를 응원해주고 지지해주던 부모님도 이 생활이 4년차에 접어들자 우려의 눈길을 보내기 시작하였고 그럴 때마다 김씨는 자신의 선택에 대한 못 미더움은 물론이요, 자존심을 짓밟고 존중하지 않는 것으로 여기어 이에 발끈하며 그러한 우려의 목소리를 일언지하에 불식시키곤 하였다.



그러나, 그 또한 깊은 속내의 어딘가에서는 현실이라는 고약한 놈이 시간이 흐르면서 서서히 고개를 쳐들고 있음을 알고는 있었기에 그럴 때마다 그가 그 놈의 고개를 억지로 짓누르기 위해 선택하는 것은 인터넷과 게임이었다.



사실, 원래는 평소 인터넷이나 게임과는 다소 거리가 멀었던 김씨였지만 공부로 달궈진 머리를 식힌답시고 들여다보기 시작했던 것이 발단이 되었고 그 발단은 이내 습관으로, 그리고 습관은 곧 생활로 자리잡기까지 하루가 멀다하고 빠르게 진화해나갔던 것이었다.



그러나 도피처랍시고 찾은 인터넷이라는 세상에서조차도 그는 별반 볼일 없는 하등한 존재였다. 주위의 지인들이 인스타에 자랑하듯 올리는 여행사진, 남자친구, 여자친구와의 낭만적인 사진들, 그리고 아마도 맛집에서 찍었을 미식(美食) 사진들. 거기에 인터넷 커뮤니티에 하루가 멀다하고 올라오는 회사, 연봉 자랑글. 마치 김씨 홀로 세상에서 이격되어 살아가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고 바깥 세상은 김씨와는 정반대로 돌아가고 있는 듯 보였다.



유일한 안식처이자 도피처마저 잃은 듯한 상실감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던 김씨의 눈에 들어온 것은 어느 커뮤니티 사이트였다.



조우한 계기는 간단했다. 늘 그래왔듯 손바닥만한 세상 속에서 유목민처럼 이곳저곳을 방랑하던 김씨가 타고 간 어느 링크를 통해 접하게 된 새로운 세상이었다.


다만 여느 커뮤니티들과 차이점이 있다라면 '해병대 갤러리' 라고 불리우는 그 커뮤니티 사이트에서는 모두가 비정상적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비정상적인 컨셉으로 놀고 즐기는 이용자들로 가득한 곳이었다랄까.



해병문학이라고 불리우는 특이하지만 유쾌한 글들을 올리며 노는 이곳에서 그는 잠시 이방인으로서의 가면을 벗어던지고 거기에 동화되기로 하였다.



물론, 처음은 다른 이용자들이 올리는 해병문학이 재밌고 웃겨서 시작한 것이었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그는 이 곳에 대해 집착하기 시작하였다. 왠지 이 비정상을 정상으로도 받아들이고 인정해주는 곳에서라면 현실에서도 비정상적인 삶을 영위해나가는 자신을 품어줄 것만 같았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의 예상대로 김씨도 어느덧 '기합', '기열' 이라는 단어를 서슴없이 내뱉고 즐기는 어엿한 '해갤러' 가 되어 이들의 세상에 녹아들기 시작했다.



적어도 '그 사건' 이 터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해병대에서 모종의 사고로 인하여 어느 해병이 목숨을 잃자 비정상임을 줄곧 표방하고 즐기던 다른 이용자들이 돌연 정상인으로 돌아와 버린 것이었다.



해병대의 추태에 대한 신랄한 비판글이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졌고 커뮤니티의 분위기도 어느새 진지하고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는 김씨에게 있어서 참을 수 없는 고역이었다.



이곳저곳에서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오랜 방랑 끝에 겨우 이곳에 안착했는데 여기서도 쫓겨날 위기에 처하다니. 다시 또 어딜 가야한단 말인가.



그는 애써 원래의 분위기와 비정상 컨셉을 유지하고자 여러번 장난성 글을 올렸으나 돌아오는 것은 다른 이용자들의 힐난 뿐이었다.



'아니 시발, 평소에는 툭하면 해병- 어쩌구하면서 낄낄대더니만, 지금와서 갑자기 왜 진지한 척들 하고 지랄이야?'




'야 이 새끼야. 사람이 죽었는데 지금 장난글을 싸지를 때냐?'



'새끼야, 컨셉도 때와 장소를 가려서 해야지. 지금 상황이나 분위기 파악 못하냐?'




아니, 지금 와서 갑자기 진지한 척이라도 하면 자기들이 뭐 대단한 사회적 평론가 내지 주관이나 가치관이 올바른 인물이라도 된단 말인가?


대관절 갑자기 왜들 이렇게 변해버린단 말인가?



이렇게나 위선적인 행태의 댓글들을 보고 있자라니 김씨는 돌연 역겨움이 치솟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역겨움에 다시금 도피처를 잃은 데에 대한 분노와 아쉬움을 더하여 김씨는 오늘도 키보드 앞에 앉은 것이다.



'여기 새끼들은 왜캐 진지충 투성이냐?'


'하긴 인생 최대의 업적이 해병대 전역일 새끼들이니 그깟 사고로 진지빨만도 하다. 이게 다 니들이 부르짖는 전우애란거겠지?'


'특히, 여기 상주하는 노땅 꼰대새끼들 말이야.'



글을 다 작성한 김씨는 엔터키를 쿡 눌렀다. 다쓰고 나니 스트레스가 좀 풀리는 듯 했다.



"에이, 시발... 과자나 먹어야지."



김씨는 중얼대며 과자를 우적우적 씹으며 달릴 댓글을 기다렸다. 그리고 잠시 후, 댓글알림이 뜨자 부리나케 마우스를 놀리는 김씨였다.



'너 이 개놈의 새끼야. 네놈 어디서 배워먹은 짓거리냐. 어른 무서운 줄 모르고 함부로 지껄이다간 언젠가는 네놈 찾아가서 죽여주마. 네놈 어디 사느냐.'



아이피 주소로 미루어보건대 요 며칠째 자주 보이는 어느 꼰대로 추정되는 이용자였다.



하, 현피라도 하자는건가.



사실 이 스트레스와 화를 어디 풀 곳도 마땅찮던 그는 호기롭게 답글을 달기 시작했다.



'포항 XXX에 산다, 왜? 꼽으면 연락해라 ㅋㅋㅋ 010-XXXX-XXXX'



사실 현피란 것은 해본적도 없는 그였지만 뭐 아무래도 좋았다. 어차피 익명이 보장되는 인터넷에서의 만용이 아니던가.



더구나, 상대는 어투로 보건대 아무리 보아도 나이 지긋한 꼰대임이 분명해 보였기에, 설령 현피란 것이 이루어진다고 하더라도 젊은 그가 못당해낼 이유는 없었다.




- 中에서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