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아쎄이가 있었다.
그 아쎄이는 다른 두 해병 사이에 있었던 비극을 기억한다.
뒤틀렸던 부대는 그 비극이 일어난 후 거의 해체되는 수준에 이르렀고 대부분의 해병들은 다른 곳으로 전출을 가게 되었다.
아쎄이는 그 날 이후 부대가 다시 재건되는 과정에서 유일한 병사로 남았었고 그 이후로 새 아쎄이들이 들어오며 일찍이 일수로 등극하게 되었다.
아쎄이는 그렇게 부대를 만들어나갈 힘을 얻게 되었다.
그로부터 더 많은 시간이 흘렀다.
아쎄이는 어느새 병장이 되었고 곧 전역을 앞두게 되었다.
오늘은 새 아쎄이가 들어오는 날이었다.
생활관의 테이블 위에는 냉동식품과 과자들이 한가득 쌓여있다.
아쎄이는 긴장된 표정으로 음식들을 바라본다.
"저... 김민준 해병님? 저... 정말... 이걸 다...
정말 다 먹어도 되는겁니까?"
"야, 임마. 너 환영한다고 애들이 열심히 준비한거야. 가능하면 냉동부터 먹고, 과자는 못먹겠으면 뒀다가 나중에 뜯어먹어."
"에이, 민준이형. 사람이 몇명인데 이걸 다 못먹겠어? 오히려 모자라겠구만!"
테이블에 옹기종기 모인 해병들이 화기애애하게 웃는다.
새로 전입온 아쎄이를 환영해주기 위해 환영식이 열렸다.
후임들은 모르는 과거의 모습을 기억하는 김민준은 흐뭇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해병성채는 그대로 없어지고 다시 깔끔한 신막사가 들어섰으며 악기바리와 같은 악습은 간단한 환영회로 대체되었다.
새로 온 간부들 또한 김민준의 노력에 호응하여 부대의 문화와 환경을 개선할 수 있게끔 지원을 아끼질 않았다.
그 결과 지금의 부대는 과거의 강인한 듯 하면서도 살벌했던 모습 대신 화기애애한 '전우애'가 넘치는 부대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그렇게 밝고 희망찬 해병대를 만들었으나, 정작 김민준의 눈빛 한 구석에는 슬픔이 어려있는 듯 했다.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김민준에게 행정병이 다가와 소포 하나를 건내줬다.
소포를 뜯어본 김민준은 내용물을 보고는 추억에 잠긴 표정을 짓는다.
또 다시 며칠이 지나고 김민준의 전역날이 다가왔다.
부대의 정문 앞에 해병들이 모여 김민준에게 박수를 쳐주고 있었다.
"김민준 해병님. 고생하셨습니다!"
"민준이형, 고생 많았어!"
"연락도 하고 면회도 꼭 오셔야 합니다!"
"그래. 한 번은 올게. 다들 고맙다!"
김민준 역시 동료 해병들에게 손을 흔들어준다.
"근데 민준이형. 나가기 전에 기념으로 장기자랑이라도 해야하는거 아니야?"
"맞아! 노래라도 한 곡 뽑아야지!"
"아이... 짜식들."
김민준은 해병들의 요청에 피식 웃을 뿐이었다.
"그래. 까짓거... 한 곡 뽑을게.
내가 철모르는 아쎄이 시절부터 일수노릇 한다고 찐빠 한 번 마음대로 못내봤는데, 나가기 전에 찐빠 하나 거하게 내고 가볼란다!"
김민준은 잠시 목을 가다듬고 무언가를 흥얼거리기 시작한다.
"...흘러가는 물결 그늘 아래 편지를 띄우고..."
이제는 더 이상 전해지지 않는 싸가였다.
노래를 듣던 해병들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다 가사를 들으며 폭소하기 시작한다.
"와하하하! 아니 부라보 해병도 아니고 무슨 노래야 그게?"
"민준이형 되게 의외다! 하하하!"
그러거나 말거나 김민준은 계속 싸가를 부르며 가방속에서 무언가를 꺼내들고 요상한 춤까지 추기 시작했다.
며칠 전 소포로 도착했던 약간 낡은 듯 한 팔각모였다.
팔각모의 곳곳에는 자신 말고는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옛 동료들의 이름이 세겨져 있었고 특히 모자의 윗부분에는 가장 먼저 세겨넣은 듯 한 두 해병의 이름이 세겨져 있었다.
김민준은 싸가를 부르며 옛 생각들을 떠올린다.
과거 아쎄이 시절 일어났던 비극.
그 사태의 주동자로 알려진 해병은 교도소로 끌려가게 되었다.
그가 교도소로 가기 전 아쎄이였던 자신에게 하나의 말을 남기고 갔다.
"...지금 와서 이런 말을 한다면 우습게 들리겠다만, 넌 내가 본 해병중 최고의 '기합'이었다. 넌 모든게 원점으로 돌가가게 된 이 부대를 새롭게 만들어나갈 수 있겠지... 그 새로운 해병대에선 그 녀석같은 놈도, 나 같은 새끼도 없는 그런 해병대를 만들어 줄 수 있겠나?"
김민준은 묵묵히 고개만을 끄덕였다.
"내가 모든 걸 가져갈테니... 부디 부탁한다... 녀석은 나 때문에 실패했지만, 너는 더 이상 내가 없으니 충분히 할 수 있을거다."
그 해병의 얼굴은 여전히 그늘에 가려져 보이질 않았다.
"...우리 마누라 키가 작아. 싹싹 하기는 그만인데..."
노래가 흐르면 흐를수록 주변의 웃음소리는 커져간다.
그러나 김민준에게 그 웃음소리들은 들리지 않는다.
김민준은 떠올렸다.
"...지금 와서 이런 말을 한다면 우습게 들리겠다만, 넌 내가 본 해병중 최고의 '기합'이었다. 넌 모든게 원점으로 돌가가게 된 이 부대를 새롭게 만들어나갈 수 있겠지... 그 새로운 해병대에선 그 녀석같은 놈도, 나 같은 새끼도 없는 그런 해병대를 만들어 줄 수 있겠나?
내가 모든 걸 가져갈테니...
부디 부탁한다... 녀석은 나 때문에 실패했지만, 너는 더 이상 내가 없으니 충분히 할 수 있을거다."
해병이어야만 했던 전우를.
김민준은 떠올린다.
"해병은 말이지... 서로가 '전우애'로 이어져있어.
'전우애'... 항상 전우들을 챙기고, 챙겨주고. 아껴주고, 믿어주고. 그리고... 어떤 상황에 놓인다 해도 절대 자신의 전우를 포기해선... 포기해선 안 되는거야."
그저 전우이고 싶었던 한 해병을.
그가 모든것을 짊어지고 떠나갔던 날, 김민준은 보이지 않던 그의 얼굴이 무슨 표정을 짓고 있었는지 이제는 확실히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는 낡은 팔각모를 슬며시 바라본다.
더 이상 아무도 기억하지 않을 옛 동료들과 두 해병.
만약 해병대가 아니라 사회, 하다못해 타 군에서 만났다면 이들은 절친한 동료로 남을 수 있지 않았을까?
그 누구보다도 마음을 잘 나눌 수 있는 전우들이 되지 않았을까?
그러나 어떤 생각을 하던 이미 비극으로 끝맺어진 이야기었을 뿐이었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이런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게끔 노력하고 혼자서 이들을 추억하는 일 뿐이었다.
싸가의 제창이 끝나고 주변은 괴상하면서도 웃기는 노래를 들었다며 박장대소를 하고 있었다.
김민준은 슬며시 웃다가 옛 비극에 감정이 복받쳐 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는 손에 쥐고있던 모자를 눌러썼다.
그러자 김민준의 얼굴에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그의 표정을 가려준다.
아마도, 그림자 너머의 표정은 그 날 모든 걸 짊어졌던 그 해병이 짓고 있던 표정과 같은 표정이리라...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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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전우애...
새끼...기합!!!
기합
마침내 완결!
이것은 좋은 문학
새끼...애절!!
결국 황근출이 일수던 해병대가 해체되고 민준이 중심으로 개혁 성공해서 해병-부조리(기열말로 선진병영)가 들끓는 곳이 되었군! 기합!!!!!
장편문학 잘봤음 현실성 가미해서 해병들 새로 해석한거 마음에 들더라 그동안 문학쓰느라 수고했다 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