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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포 2사단 본부.


한창 작전회의가 진행중이던 상황실에 갑자기 통신병 한 명이 헐레벌떡 뛰어들어온다.


"포항의 곽말풍 중령님 지시사항입니다! 지금 즉시 모든 통신을 중단 시켜주십시오! 그리고 남석룡 소위님, 잠시 전산실로 와주십시오! 곽말풍 중령님 연락입니다."


갑작스런 통신 중단 명령에 모두가 어안이 벙벙 하면서도 남석룡은 일단 통신병을 따라 전산실로 이동했다.


통신병에게 건내받은 전화기는 수십년은 된 듯 한 낡은 전화기였다.


오래된 회선을 사용하는데다 음질도 좋지 않아 폐기 예정이던 장비였는데 곽말풍은 굳이 이런 회선으로 연락을 해왔다.


필시 이유가 있을 터...


"필승! 소위 남석룡. 전화 받았습니다."
[남 소위. 본론만 말하겠네. 김포쪽 전력이 아직 온전하다면, 지금 즉시 진행중인 계획을 전부 중단시키고 전면 수정하도록 하게. 이 좆게이들 우리 통신 내역을 모두 엿듣고 있었어. 일반 통신은 몰론이고 군 회선도 이 회선을 제외하면 다 엿듣고 있었다는 말일세! 놈들 손에 놀아나서 우리 포항은 전부 당하고 이젠 여기만 남았네.]
"...곽 중령님. 그럼 대피를 하시는게..."
[여기가 내 부대인데, 어딜 가라는건가. 더군다나 다른 인원들은 모두 당했는데 나 혼자 염치없이 도망을 치면 되겠나?]


남석룡은 대피를 권했으나 곽말풍은 담담하면서도 참담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어쨌든, 이 좆게이들이 이젠 막 나가기 시작했네. 민간인들을 납치해서 지들처럼 만들더군... 지들 말로는 '자진입대'라는데 아주 미친 짓거리가 따로 없어. 이 상황에서 여길 떴다간 이 포항은 지옥이 될걸세.]
"...도움이 되어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아니야. 내가 무능한 탓이지. 어쨌든 가능한 연락은 삼가고 정 연락을 하려면 이 회선을 사용하게나. 제주 해병대의 통신부대 하나가 아직 버티고 있는 모양인데 그 덕에 사용 가능한 회선일세.]
"조언 감사드립니다."
[우리도 우리지만, 제주도는 더욱 심각한 상황일세. 거긴 다른 간부들도 없이 병사 몇 명이서 간신히 버티고 있다더군. 거기마저 당하면 이젠 마땅한 통신수단도 없다네. 자네들이 저 좆게이들을 제압하고 사령관님을 복귀시켜야만 이 사태를 마무리지을 수 있을거야. 부탁하네.]
"알겠습니다. 필승!"
[그래... 기회가 된다면 또 연락하지.]


남석룡은 참담한 표정으로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김포 오도해병 점거 부대.


[이젠 놈들이 눈치챘군. 싸제 통신 감청은 불가능해졌네.]
[악! 군 회선도 마찬가지입니다!]


통신 감청을 담당하던 오도해병들이 연락을 해왔다.


아쉽긴 해도 다시 일어서려던 포항의 기열 해병들을 제압하고 포항을 접수하기 직전의 상황까지 왔으며 제주 해병대 또한 통신부대 하나만을 남겨놓고 접수하기 직전까지 왔다.


"하지만, 그 쏘가리... 아니, 남색룡이라는 해병 소위가 지금 여기 버티는 이상 아직 승리를 확정지을 수는 없네."


배석도가 남석룡을 떠올리며 말했다.


다른 두 지역과는 달리 남석룡이 지휘하는 김포는 다시 전력을 되찾아가고 있었으며, 몇 몇 부대를 탈환해내기까지 하였다.


감청으로 상황을 파악해가면서 남석룡과 맞선 결과가 이 정도라면, 감청이라는 이점을 잃어버린 지금, 사실상 김포는 그와 동률이 되어버린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만약 포항과 제주를 완전히 정리한다 한들 김포를 정리하지 못하고 저들이 성희룡을 구출해 복귀시키기만 해도 승리는 기열 해병들에게 넘어가게 된다.


"아직 우리가 유리할 때, 뭔가 수를 써야만 하네. 5도 지역에서 지원이 도착하고, 조팔갑 해병 원사가 서해상 해참총장이랑 담판을 지을 때 까지 성희룡 사령관을 붙잡아 둬야하지 않겠는가?"


배석도의 말을 듣고 마갈곤은 나지막히 말했다.


"...사령관의 복귀를 어렵게 만들면 되는거 아닙니까?"


잠시 생각에 잠긴 마갈곤은 곧 어디론가 전화를 건다.


"근출아. 거기 상황 널널하냐?"
[예, 이제 6974부대 하나만 남았습니다.]
"...근출아, 형 말 잘 들어. 형이 차표 끊어 놨으니까, 지금 여유있는 애들 좀 빼서... 사령부로 출동시켜라."
[...잘 못들었습니다?]
"그 사령부랑 기청룡이도 좀 조지란 말이야."
[...!]


수화기 너머에선 경악의 침묵만이 흘러나오고 있고 그것은 마갈곤의 주변도 마찬가지였다.


"왜? 너무 멀어서? 요즘 기차 빨라서 거기까지 2시간 반이면 갈거야."
[아니... 그게 아니라... 이러면... 그건 내란...]
"야, 이 새꺄!"


당황한 황근출이 말을 버벅이자 마갈곤은 탁자를 한 번 내리친 뒤 씩씩거리며 전화기를 들고 화장실로 향했다.


그 모습을 본 다른 오도해병들은 모두 얼어붙었다.


잠시 뒤, 화장실에 들어온 마갈곤은 언제 그랬냐는 듯 힘 없이 변기에 주저앉아 애원하듯 말했다.


"야, 근출아. 이 씨발놈아... 진짜 형 한 번만 좀 도와줘. 다른 간부놈들 다 족치고 사령관까지 족친 마당에 여기까지 와서 그냥 물러나면 다 좆되는거 알잖아 임마."
[...]
"이빨 하나로 여기까지 끌고 왔다. 선후배들 앞에서 형 가오 한 번만 세워 줘라 좀... 제발..."
[...갈곤이 형. 우리 해병이잖아.]
"근출아..."
[해병은 겁 안먹어. 싸워서 이기고.]
"지면 죽어라."
[걱정 마, 형. 역으로 애들 보낼게. 이제 죽기 아니면 승리뿐이잖아. 끝까지 같이 가자.]
"근출아... 고맙다. 정말 고맙다 이 새끼야!"


마갈곤은 전화를 끊고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잠시 마음을 가라앉힌 마갈곤은 다시 표정을 바꾸고 작전실로 들어간다.


그리고는 오도해병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전우님들. 저 기열찐빠들이 이거 내란이다 라고 하면 지들은 그렇게 떠들라고 하십쇼. 저쪽도 끝까지 가보자고 상황까지 발령시킨 마당인데 저희가 물러나야 하겠습니까? 저 기열찐빠들에게 밀려나고 싶으십니까?!"


가만히 앉아있던 해병들 사이에서 배석도가 조용히 말했다.


"이왕 여기까지 온거 끝까지 가야지. 깡통이 육지 찾아 바다 한가운데에서 항해중인데, 지금 뛰어내릴 사람 있나?"


그 누구도 문 밖으로 나서질 않았다.


오도 해병들의 의견들이 다시 하나로 모인다.





해병대 사령부.


기청룡이 낡은 전화기를 들고 곽말풍에게 신경질을 내고 있었다.


"야, 이 회선 이제 안쓴다고 한지가 언젠데 굳이 이걸로 연락을 하고 있어?"
[이 회선 제외하면 다른 회선은 전부 감청당하고 있습니다. 번거로우시더라도 지금부터는 이 회선을 이용하셔야 합니다.]
"그럼, 어디 연락할 때 마다 일일이 제주도에 연락부터 때려서 교환해달라고 그 난리를 펴야하냐? 하, 나 이 새끼들... 연휴인데 이놈 저놈 할거 없이 왜 이렇게 사람을 피곤하게..."
[참모장님, 그러지 말고 윗선에 이번 사태에 대한 보고를 올리시는게 어떻습니까?]
"야, 다 같이 군복 벗고싶어? 그냥 해병대 내부의 '사건'일 뿐이잖아? 그럼 우리가 해결해야지!"
[...상황이 심각합니다. 포항과 제주는 사실상 놈들에게 넘어갔습니다. 김포의 남석룡 소위가 반격을 시도하고는 있지만 저희들만으로는 역부족입니다. 그럼 차라리 다른 군에 지원 요청이라도...]


곽말풍이 타 군에게 지원을 요청하자는 얘기를 꺼내자 기청룡이 불같이 화를 내기 시작했다.


"야, 곽말풍이 이 새끼야! 진짜 보자보자 하니까 니가 뭔데 아까부터 자꾸 이래라 저래라야? 그 남석룡인지 남색룡인지도 그렇고 니네가 사령관이야?!"
[어쨌든 지금 남아있는 지점들이라도 사수해야 하니 필요하면 주한미군에게도...]
"아, 이 새끼. 왜 이렇게 말을 못 쳐들어먹어? 주한미군? 지금 국제전 하냐? 북괴 애들 내려왔어? 전쟁하냐? 자꾸 다른 애들을 끼우자고 지랄을 하고있어? 개망신 당할 일 있냐??? 어?!!!!!"


기청룡의 어거지에 곽말풍은 간신히 화를 누르며 말을 이어간다.


[같은 국군이나 동맹국에게 지원을 요청하는거 아니겠습니까? 그 사람들에게 도움 요청하는게 부끄러운 일은 아니잖습니까? 지금 저 놈들에게 밀리는게 개망신입니다.]
"아, 새끼들 진짜... 상황 보고 연락할테니까 일단 끊어."
[참모장님, 한 시라도 빨리 결단을...]


기청룡은 귀찮아 죽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매정하게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리고는 옆에 있던 통신병에게 쏘아붙이듯 말했다.


"야, 곽말풍이에게 전화 오면 그냥 끊어버려!"
"...예, 알겠습니다."


짜증을 내며 전산실을 나가는 기청룡을 바라보며 통신병은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포항 6974부대.


곽말풍이 관자놀이를 짓누르며 전화를 끊었다.


더 이상 기청룡에게 무언가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듯 했다.


잠시 뒤 황룡이 어두운 표정으로 전산실에 들어왔다.


"대대장님. 출동 나갔던 인원들이 지금 저희 부대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사단 본부가 결국 놈들 손에 넘어갔습니다."
"그래... 다친 사람 있으면 룡이 네가 좀 봐주고, 걔네들 밥부터 좀 먹여라."
"예, 알겠습니다."


황룡이 전산실 밖으로 나가고, 곽말풍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다시 수화기를 집어들었다.


그리고는 제주 해병대의 통신병들에게 무언가 전언을 남기고선 다시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김포 2사단 본부.


남석룡이 낡은 무전기에 대고 외부의 해병들과 무전을 취하고 있었다.


"군사경찰단. 들리십니까?"
[예, 잘 들립니다.]
"수색대. 들리십니까?"
[예, 들립니다.]
"말씀드리겠습니다. 상황이 급박해졌습니다. 포항 해병대와 제주 해병대가 더 이상 버티기가 어렵다고 합니다. 저희가 최대한 빨리 사령관님을 구출하고 원상복귀 시키는 것 만이 이 사태의 유일한 해결책이 되었습니다. 좀 더 신중해야 하는 만큼 놈들이 점거한 부대에 바로 진입하지 않고 전력을 조금 더 모아보겠습니다. 그리고 번거로우시더라도 휴대전화 대신 구형 무선통신장비를 사용해 주시고 현 채널만을 이용해주시길 바랍니다. 통신이 닿지 않으면 통신이 닿는 다를 부대를 통해 전파해 달라고 요청해주십시오."
[알겠습니다.]
"명심해주십시오. 대부분의 작전이 노출된 상태이니, 지금부터는 신중하게 움직여야 합니다."


무전을 마친 남석룡이 상황판을 바라본다.


아직 규모면에서는 밀리지만, 연락이 닿은 부대를 조금 더 모은다면 사령관이 억류된 부대에는 강제로 진입을 시도해 볼 수 있을 정도의 전력은 갖출 수 있을 듯 했다.


'희룡 삼촌...'


남석룡은 그 곳에 갇혀 온갖 수모를 겪고있을 성희룡을 떠올리며, 주먹은 꽉 쥐었다.





김포 오도해병 점거부대.


박철곤이 마갈곤에게 보고를 올리고 있다.


"확실합니다. 처음에 왔던 그 헌병들 중 최고 선임병으로 보이던 놈이 바로 제 훈단 동기였던 함복희 병장이었습니다."
"그래... 그 함복희인지 햄볶음인지, 걔가 니 말 듣고 확실히 마음을 돌릴까? 잘못하면 오히려 지금 우리가 계획한게 걔네들에게 흘러가지 않을까?"
"제가 설득해 보겠습니다. 훈단때 보여줬던 놈의 모습을 떠올리면, 복희 그 녀석은 확실히 넘어옵니다."
"그래... 함 믿어본다. 꼭 성공시켜야 한다. 알겄지?"
"악! 맡겨주십시오!"


허락을 받은 박철곤이 전화기를 집어들었다.





김포 군사경찰단.


함복희가 심란한 표정으로 상황실에 앉아있었다.


나약한 자신을 고쳐보고자 입대했던 해병대였으나, 입대 후 겪은 일들은 감당하기 어려웠던 부조리들에 막상 짬이 차고 일수가 되니 뒤늦게 찾아온 변화들로 자신은 정작 그 혜택을 누려보지 못하고 책임만을 지고 있는 신세였다.


그래도 좋은게 좋은거라고, 변하는게 맞다는 생각으로 반쯤 체념하며 지내고 있었으나, 갑작스럽게 터진 오도해병들의 하극상과 그들에게 당한 참패는 함복희를 더 깊은 자괴감에 빠지게 만들었다.


한참 그런 생각에 잠긴 와중, 그의 앞에 놓여있던 전화기가 울린다.


'이상하네? 일반 회선은 사용중단 지시가 내려왔는데?'


함복희는 의아해 하며 수화기를 들어올렸다.


"필승. 해병대 군사경찰단 함복희 병장입니다. 전화거신 분은 누구십..."
[복희야, 나 철곤이다.]


함복희는 박철곤의 목소리를 들은 순간, 그 무시무시했던 노인 뒤에 서있던 박철곤을 떠올렸다.


당황한 함복희는 재빨리 수화기를 가리며 주변을 둘러봤다.


다행이도 자신 뿐이다.


함복희는 목소리를 낮췄다.


"야, 박철곤. 너희들 지금 거기서 무슨 짓을 하는거야?"
[복희야. 우리가 하려는 일은 해병대를 올바르게 이끌어가는 일이야.]
"그렇다고 사령관님을 납치해? 제정신이야?"
[대화 하려는거 뿐이야. 만나기 쉽지 않은 양반인데 이렇게라도 안하면 우릴 만나주려 하지도 않잖아?]
"됐어. 너랑 할 얘기 없으니까 끊어."
[포항과 제주는 이미 우리 손에 떨어졌다. 여기도 곧 그렇게 될거야.]
"지금 나 협박하냐?"


함복희가 따지듯 묻자 박철곤의 나지막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협박이 아니야. 이해를 구하는거지. 너만 협조해주면 김포도 장악할 수 있다는거야.

복희야.

너 해병대에 입대한 이유가 뭐였어?]

"...몰라 그딴거. 이젠 기억도 안나."

[우린 복희 니가 원했던 해병대를 지키려는거야. 잘 생각해주길 바란다.]


박철곤의 전화가 끊어지고 함복희는 복잡미묘한 표정으로 전화기를 바라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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