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6974부대.
건물 내부에 설치된 방송장비에서 사령부에서 날아온 방송이 계속 흘러나오고 있다.
[기열 해병들은 들어라. 지금 투항하면 너희들의 명예는 지켜질 것이며, 남은 군 생활을 사령부에서 보낼 수 있도록 배려해 주겠다. 순순히 투항하라. 반복한다. 지금 투항하면 너희들의 명예는...]
따로 연락이 날아오지는 않았지만, 사령부가 저들의 손에 넘어갔음이 분명해졌다.
그리고 창 밖을 내다보니 저 멀리서 붉은 색으로 칠해진 차량들이 벌떼처럼 몰려오고 있었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와 몰려오는 차량들을 보며 곽말풍은 이제 포항 해병대의 끝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꼈다.
곽말풍은 대대 내의 모든 병사들을 불러모았다.
그리고는 담담하게 말했다.
"사령부가 함락당했고, 이제 여기 포항도 저 좆게이들의 손으로 넘어갈거다. 더 이상의 저항은 무의미하니, 너희들은 나가서 투항하고 명예를 지키도록 해라. 모두 고생 많았다."
"저... 대대장님께선...?"
병사의 물음에 곽말풍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했다.
"여기가 내 부대고, 난 여기 지휘관이다. 내 명예는 여기서만 지킬 수 있다. 그러니 너희들은 이만 나가 봐."
병사들은 고개를 떨군 채 밖으로 나가고 곽말풍은 방탄모를 착용하고선 허리춤에 두르고 있던 진압봉을 꺼내든다.
그런데 누군가가 다시 대대장실로 들어온다.
황룡이 진압봉과 스패너와 같은 여러 잡동사니들, 그리고 포장지에 싸여있는 무언가를 들고 나타난 것이다.
황룡의 모습을 본 곽말풍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룡이, 내 말 못들었나? 어서 나가라니까."
"대대장님 퇴근 안하셨는데 CP병이 어딜 갑니까? 혼자 계시면 적적하시지 않겠습니까?"
"여긴 나 혼자만 남으면 된다. 그러니 나가 봐."
"혼자서 복사기도 못 쓰시면서 어쩌려고 그러십니까?"
곽말풍이 뭐라고 말하던, 황룡은 대대장실 내부에 있던 각종 가구들과 잡동사니들을 밀어 출입문을 막았다.
"룡아, 저 미친 놈들이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데 안무섭냐?"
"순순히 받아들이고 다시 옛날로 돌아가면 그것대로 무섭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솔직히 무섭긴 무섭지만, 대대장님 같은 분을 언제 또 모셔보겠습니까?
그런 황룡의 모습을 보며 곽말풍은 쓰게 웃었다.
"황룡. 의대 나왔다길래 머리 좋은 놈인 줄 알고 데려왔더만... 이제 보니 모자란 구석이 있구나."
"하하. 그 모자란 놈을 대대장님께선 못알아보시지 않았습니까?"
그렇게 실없는 농담을 주고받던 중, 아래쪽에서 정신없는 발소리들이 들려오기 시작하고, 이윽고 그 발소리들은 점점 위쪽으로 올라와 대대장실 앞에서 멈춰선다.
곽말풍이 목소리를 낮췄다.
"룡아, 왔다. 준비해라."
"예, 대대장님."
황룡이 숨을 죽이고 조용히 문 쪽으로 다가간다.
문 너머에선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다.
"황룡, 나 황근출이다. 니 동기 근출이. 존도, 라봉이, 백룡이. 다 기억 하지? 훈단때 같이 어울려 다녔잖아. 존도랑 라봉이는 지금 우리편이고, 백룡이도 설득중이야. 너도 우리랑 같이 가자. 지금 니 옆에 있는 그 대대장만 넘기고 너도 나와라. 원한다면, 사령부로 보내줄게."
잠시동안이지만, 황룡은 동기 황근출의 목소리와 다른 동기들의 이름을 듣고 눈빛이 흔들렸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잡고 황근출에게 말한다.
"니들... 지금 이게 무슨 짓인지는 알지?"
"오해하지마. 해병대를 바로 잡으려는거야."
"우리들이 훈단 때 그렇게 자주 어울려다녔던 이유가 뭐였는지 기억은 나? 거기 조교라는 놈들에게 항상 뒤지게 쳐 맞고서 우린 이러지 말자고 서로 부둥켜 안고서 엄청 울었잖아. 그리고 다신 이러지 않아도 되는...
우리들의 봄이 찾아왔는데...
근출이 넌 왜 거기서 그러고 있는거야?"
"..."
"근출아, 너야말로 다시 돌아와라."
"..."
잠시간의 침묵 뒤 황근출이 외친다.
"포철해(포 신으로철거하는건뭐든지잘해) 해병! 대대장실의 문을 부수고 강제로 진입하도록!"
"악! 알겠습니다. 황근출 해병님!"
그 소리를 들은 황룡도 맞받아치듯 말한다.
"누구든... 그 어떤 놈이든... 대대장실에 한발짝만 들어오면... 그 자리에서 죽는다!!!"
무언가 부숴지는 소리와 함께, 문 앞에 쌓아놓은 장애물들이 무너져내리기 시작한다.
황룡과 곽말풍은 식은땀을 흘리며 진압봉을 치켜든다.
잠시 뒤, 장애물들이 모두 무너져 내리고 거대한 포신 하나가 문을 부수며 그 틈 사이로 돌진하며 들어온다.
황룡이 진압봉으로 그 포신을 내려친다.
"따흐악!"
외마디의 비명과 함께 길고 흉측한 포신이 뒤로 튀어나가고 그 틈을 향해 황룡이 포장지를 뜯어내고선 그 안에 있던 버드콜의 줄을 잡아당기고 집어던진다.
"따흐앙! 황룡이 공군놈들을 풀었다!"
새 소리가 울려퍼지자 오도해병들이 혼비백산에 빠진다.
황룡과 곽말풍이 문 밖으로 뛰쳐나가 진압봉을 휘두른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새 소리가 사라지고, 정신을 차린 오도해병들이 두 사람을 무자비하게 구타하기 시작한다.
"아악! 윽...! 끄어억...!"
황룡의 비명소리를 들은 곽말풍은 필사적으로 오도해병들을 뿌리치고 황룡에게 다가가려 하지만, 중과부적으로 벌떼처럼 달려드는 오도해병들을 이겨내지 못하고 바닥에 고꾸라져 그대로 제압당한다.
상황이 진정되자 곽말풍의 눈에 들어온건 정신을 잃고 바닥에 축 늘어져있는 황룡의 모습이었다.
"룡아... 황룡...! 야, 이녀석아, 정신 차려!"
곽말풍이 울부짖으며 애타게 황룡을 부르지만 오도해병들은 정신을 잃은 황룡을 짐짝처럼 질질 끌고 나간다.
황근출이 오도해병들에게 외쳤다.
"끝까지 제안을 거부하고 기열로 남기로 한 놈들이다! 철저히 길들이도록!"
곽말풍이 황근출을 향해 말했다.
"황근출... 니놈은 지금 니 동기, 너의 전우를 저 꼴로 만든거야. 니들의 그 정신나간 짓거리들을 계속 하겠다는 이유로... 최소한의 양심이 있다면 병원부터 데려가...!
황근출, 이 개새끼야!!!
구급차부터 부르라고 이 씨발놈아!!!!!"
황근출은 아무런 대답 없이 고개를 돌려 그런 두 사람을 외면하고 곽말풍은 질질 끌려가면서도 악을 쓰며 황근출에게 분노를 쏟아낼 뿐이었다.
김포 군사경찰단.
수색대의 차량들이 군사경찰단의 기지 앞에 도착한다.
"나 수색대의 석영민 상사다. 합류하러 왔으니 문 열어."
석영민이 위병소에 출입을 요청하였으나 위병들은 그저 곁눈질로 수색대를 바라보며 어디론가 전화를 하고 있을 뿐이었다.
"아니, 이것들아! 시간 없어! 빨리 문 열라니까!"
석영민이 위병들을 보채지만 위병들은 계속 전화기만을 붙잡고 있을 뿐이었다.
석영민은 초조하게 발을 구르며 옆에있던 수색대원을 바라본다.
긴장을 했는지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로 덜덜 떨고있었다.
석영민은 그런 수색대원을 달래기 위해 말을 붙인다.
"야, 무섭냐? 그래. 무섭긴 하지. 나도 존나게 떨리는데... 그래도 다 잘 될거다 임마. 사령관님만 구출하면..."
"저... 그게 아니라 석영민 상사님...
일반 전화기는 사용 금지령 내려오지 않았습니까?"
"어???"
그러고 보니 저 위병들, 일반 회선을 사용하는 전화기로 어디론가 통화를 하고 있었다.
분명 도청 위험이 있다고 쓰지 말라는 지시가 내려왔는데...
그 순간 어디선가 어느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차려 총.
길게 찌르고 돌려쳐."
석영민의 옆에 서 있던 수색대원이 순식간에 벽으로 튕겨져 나갔다.
어느 순간 뒤를 돌아보니 수많은 오도해병들이 수색대원들을 둘러싸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제일 앞에는 전우회장 배석도가. 아니, 전설의 오도해병 배썩둑이 위압적인 분위기를 풍기며 수색대원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허허허허! 내 예전부터 수색대라는 곳이 어떤곳이었는지 궁금했는데 이제서야 확인을 해 볼 수가 있게 되었구나!"
이제서야 석영민은 군사경찰단이 자신들을 배신했다는 것과 그들의 함정에 빠졌음을 깨달았다.
주변을 둘러본 석영민이 나지막히 말혔다.
"쉽진 않을것 같구만..."
석영민은 숨을 크게 들이 마신 뒤 큰 소리로 구호를 외친다.
"악에서!"/"악으로!"
"안 하면!"/"할 때까지!"
"안 되면!"/"될 때까지!"
석영민은 배썩둑을 노려본 뒤, 수색대원들을 향해 외친다.
"전원 돌격! 저 좆게이들을 제압한다!"
수색대원들이 오도해병들을 향해 달려들고 석영민은 배썩둑을 향해 달려든다.
배썩둑은 만족스럽다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으허허허! 새끼, 기합. 악바리 하나만큼은 기합이로군.
나도 진심을 다해 맞서주겠네.
차려 총.
우제치고 좌베고 길게 찔러."
배썩둑이 달려드는 석영민을 향해 포신을 휘두른다
김포 2사단 본부.
수화기를 들고있는 남석룡의 표정이 절망으로 물들어있다.
수화기 너머에선 군사경찰단 함복희 병장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수색대는 전부 체포 및 구금되었습니다. 그리고 저희 헌병들은 더 이상 작전에 참여하지 않을겁니다. 남 소위님께서도 잘 생각해주시길 바라겠습니다.]
"..."
남석룡이 힘없이 수화기를 떨군다.
사령부가 함락당하고 구심점이 없어진 상태에서 그나마 김포의 주축이었던 수색대가 당하고 군사경찰단의 배신까지 겹치자 해병대의 통제를 따르던 부대들도 거의 대부분이 이탈했다.
더군다나 오도 해병들이 해킹한 통신장비들을 통해 흘러나오는 방송의 내용들은 간신히 남아있던 해병들의 마음마저 꺾어버렸다.
[모두들 안녕하십니까? 저는 병,부사관 대표를 맡고있는 마갈곤 하사 라고 합니다.
자, 상황 파악이 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제 다 끝났습니다.
저희가 뭐 대단한거 요구하는게 아니고, 저희들의 문화를 존중해 달라는것과 사령관님 모시고 이야기 몇 마디 나누고 싶었던거, 그게 다였는데, 서로 말이 통하지 않으니 저희가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저희들의 의견을 전달할 방법이 없지 않겠습니까?
어쨌든 대화를 하실 마음이 생겼으리라 생각하고 제안을 하나 드리고자 합니다.
해병대의 개혁을 전면 취소시키는데 동의해 주시고, 저희 병, 부사관들의 의견이 제대로 반영된 운영계획을 받아들여주십사 합니다.
사령관님을 설득시켜주시는데 도움을 주신다면 더할 나위없이 좋고 말이죠.
그렇게만 해주신다면, 좀 전에 말씀드렸던것 처럼 사령부에서 남은 군생활을 보내실 수 있도록 배려해 드리고, 저희도 사령부에 대한 간섭은 하지 않겠습니다.
제안을 받아들이실 분들은 즉시 사령부로 향해주시고, 저희와 함께하실 분들은 저희가 있는 부대로 와주시길 바라며...
끝장을 보고 싶으신 분들은 부대에 남아보시길 바랍니다.]
기청룡을 포함한 수뇌부들은 동요하는 눈빛을 보이고 있고, 사단에 있던 도병헌을 포함한 지휘부도 체념의 눈빛을 보이고 있었으며, 병사들의 사기도 바닥을 치고 있었다.
남석룡은 굳은 표정을 지으며 홀로 화장실로 들어가 주머니에 들어있던 로켓을 꺼내 안에 들어있던 사진을 펼쳐본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유품인 로켓과 그 안에 들어있는 자신의 연인이자 약혼녀인 윤지혜의 사진.
오늘, 남석룡은 다시는 돌이키지 못할 선택을 할것이다.
남석룡은 윤지혜에게 전화를 건다.
[석룡 오빠? 연휴때도 바쁠거라더니 무슨 일이야?]
"...지혜야, 내가 정말... 그동안 너에게 참 못되게 굴었었지? 학교다닐때는 공부한다고, 사관학교 가서는 훈련한다고, 임관하고서는 바쁘다고... 너한텐 너무 미안해... "
[오빠, 갑자기 왜 그래?]
남석룡은 터져나오려는 울음을 필사적으로 참으며, 무겁게 입을 연다.
"내가 마지막으로 너에게 못할 짓 하나만 할게... 우리 이만 끝내자. 난... 너에게 떳떳할 자신이 없고, 너를 행복하게 해 줄 자신도 없어..."
잠시 침묵이 흐르다가 윤지혜가 입을 열었다.
[...무슨 힘든 일이 우리 석룡 오빠를 괴롭힐까?]
"..."
[어릴때부터 본 석룡 오빠는 힘들어도 티내지 않는 사람이었어.
그런데 그게 날 너무 아프게 해.
그거 알아?
오빠는 잘 숨긴다고 생각했겠지만, 거짓말하면 항상 티가 났다?
그러니까 힘들고 괴로운 일이 있으면, 거짓말하지 말고, 나에게도 얘기해주면 좋겠어.
오빠, 내가 왜 오빠에게 반했었는지 알아?
오빠는 어려운 일이 있어도 포기하지 않고 맟서왔잖아?
그리고 항상 올바르고 강직하게 살아가는 그 모습 때문이었어.
오빠가 지금 어떤 힘든일이 있던간에 오빠는 확실히 이겨낼거고, 올바르게 이끌어갈거야.
오빠...
힘들면 또 전화하고, 우리 다음부터는 그런 말 하기 없기다?
그리고 이젠 군인의 아내가 될 몸이고 그 삶을 각오했는데, 기다리는 일 하나 못하겠어?
난 언제든지 기다릴게.
또 전화하고... 다음에 만나.
사랑해.]
윤지혜의 목소리도 울음을 참는듯 한 목소리다.
자신의 감정이 복받치는 와중에도 담담히 남석룡을 위로한다.
윤지혜를 힘들게 했다는 생각과 자괴감이 겹치자 남석룡의 눈에선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응. 알았어... 미안해 지혜야... 나도 사랑해."
눈물을 이겨내지 못한 남석룡은 짧게 대답할 뿐이었다.
통화가 끝나고 감정을 추스른 남석룡은 군번줄에 로켓을 끼운다.
그리고는 로켓을 바라본다.
엄하고 무뚝뚝했지만, 사실은 다정하고 정의로웠던 자신의 아버지.
그리고 자신을 믿고 기다려주는 약혼녀 윤지혜.
이들을 생각해서라도 부끄러운 사람으로 남지 않겠노라고 다짐하며 남석룡은 마음을 다잡는다.
남석룡은 제주 해병대의 하백룡이 전해준 곽말풍의 마지막 전언을 떠올린다.
'그 곳으로의 연결은 도청당할 염려가 없으니 안심하셔도 된다고 합니다. 상황이 어려워지면 사용하십시오.'
남석룡은 어디론가 전화를 연결한다.
몇 번의 신호음이 간 뒤 누군가가 전화를 받는다.
"전화 받았습니다. 공군작전사령관 탁노수 중장입니다. 전화 주신 분은 누구십니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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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노수면 황근출도 못이길 듯 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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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청룡 이새끼 분명 지혼자 살려고 사령부 가서 공군 작전에 어깃장 놓을 것 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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