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간밤에 폭설이 닥쳐와 아쎄이 582마리가 해병 짜장을 누다가 해병 젤리가 꽝꽝 얼어버린 2024년 -69°월 -74°일!

오전 6시라는 매우 늦은 시간에 일어난 오혹딸 해병은 어둠을 헤치고 연병장으로 튀어갔다.

중간에 한가로이 월광욕을 하던 섹시 황근출 해병님이 오혹딸 해병의 해병 제설 작업에

눈으로 덮이어 데몰리션맨이 되는 등 앙증맞은 찐빠가 있었으나

오혹딸 해병은 아랑곳 않고 새하얀 눈밭을 성큼성큼 지났고,

매서운 강추위조차 기합 가득한 전우애로 뚫어버렸으나
이게 무슨 일인가...?


오혹딸 해병은 눈앞의 광경이 믿기지 않는다는듯 눈을 비비다가, 분명 밤새 자신보다 빠르게 도착해 지금쯤 구보를 뛰고 있어야 할 전우들이 연병장 위에 무더기로 쓰러져 있는 참혹한 광경을 보았다.


대체 이게 다 무슨 일인가 싶어 달려가니

아, 똥꾸녕이 찢어지도록 비참한 그 광경이란!

훈단 입소 날로부터 지금까지 선임의 빠따도 기합도 애무도 전우애로 똘똘 뭉쳐 이겨내던 나의 동기들이

이런 화창한 날 새벽에 재수없이 비명횡사를 당하다니!

실날같은 희망으로 그들의 멱살을 잡고 흔들어 보았으나 요지부동이었다.


이미 정신줄과 목숨줄을 놓아버린 전우들 앞에서 목놓아 울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건만

오혹딸 해병은 해병혼을 다잡고 마음을 추스르려 하였다

해병 주화입마에 빠져 스스로를 해병 수육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

땅에서 솟구친 건지 하늘에서 떨어진 건지 모를

바닥의 등1신대 크기의 해병 줄줄이 소세지를 줏어 먹었던 것도 잠시

외로 고개를 기울여도 모로 봐도 가을걷이가 끝난 논밭의 짚더미들처럼

전우의 시체들이 쌔고 쌨으니 그러한 위안도 일없게 되는 것이었다.


오혹딸 해병은 그대로 칙칙한 해병 눈밭 위에 누워 주식에 전재산을 꼴은 것처럼 허무에 빠졌다.

나는 왜 이렇게 되었는가?

아니, 우리는 왜 이렇게 되었는가?


나의 전우들은, 감히 달콤한 수면의 늪에 빠져 본래 기상 시간보다 69시간 늑장을 부린 나와 다르게

단지 과업을 묵묵히 짊어져 해병대의 의무를 수행하려 하였을 뿐이고 성실함을 보이던 기합 가득한 해병일진대,

마치 전우애의 기미도 없는 황룡을 도살하고 그 육편을 취하듯 광란의 떼씹전우애난교에 취하여서는,

어째서 끝없이 새하얀 눈밭의 공간에 갇혀서 이다지도 고통스러운 최후를 맞이하여야 했단 말인가?



그 이유에 대한 실마리를 찾기 위해서는, 약 1시간 뒤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때는 바야흐로 일주일 전 1950년 8월 27일.

김평걸 해병님께서 황근출 해병님께 지건을 하시다가 날아간 황근출 해병님의 몸이 그대로 내무실의 전구를 깨뜨렸던 때였다.

그러자 칠흑 같은 어둠으로 뒤덮인 내무반 안에서 우리는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에 두려움에 떨었으니,

가장 먼저 기열스러운 짓을 하신 것은 김평걸 해병님이셨다.

김평걸 해병은 사태 초기에 기차화통을 삶아 먹은 듯 쩌렁쩌렁한 목소리를 우리를 다그치셨다

"야 이 새끼덜아! 불 꺼진 걸랑 쫄지덜 말고, 싸게싸게 새삥으로 안 갈아 끼우냐!"

그러나 이 명령은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치게 되었는데,

왜냐하면 불을 다시 키기 위해서는

의자를 깨진 전구를 교체하는 한 명의 아쎄이와,

한명이 전구를 끼우기 위해 의자에 올라갈 동안 의자 다리를 잡고 빙빙 돌려줄 사람 2+2명

도합 2+2+1명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김평걸 해병님께서 전구를 끼우는 역할을, 기절한 황근출 해병을 제외한 2+2명의 아쎄이들이 아래서 의자다리를 잡고 돌리는 역할을 맡았으나, 해병 일동은 또다른 난관에 봉착하였으니,

바로 전구를 갈아 끼울 때 시계 방향으로 돌리는지 반시계방향으로 돌리는지 아는 해병이 단 하나도 없다는 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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