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해병문학] 더 이꾸릉라이저
· [해병문학] 더 이꾸릉라이저 - 프롤로그

7fed8272b58668ff51ed84e645817c7318df65a1025e90cdc022e20eb49799fd



자대로 향하는 버스 안.


훈단 생활을 막 끝낸 아쎄이인 마달필은 자신의 양옆에 앉은 동기들을 바라본다.


항상 뒤에서 1등을 차지하는 바람에 같은 소대원들이 조교들로부터 나란히 욕을 먹게 만들었던 애증어린 동기인 심통덕이 긴장어린 표정으로 식은땀을 흘리며 창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에게는 좀 미안한 말이지만, 어떻게 해병대에 들어왔을까 싶을 정도로 불어나있는 살집과 훈단에서 보여왔던 믿음직스럽지 못한 모습들로 인해 그와 같은 자대를 가게 되었다는 발표가 났을 때, 마달필은 반가움보다는 걱정이 앞섰다.


아무리 믿고 의지할건 동기뿐이라지만, 빈말로라도 심통덕은 의지하기가 힘든 존재였다.


심통덕을 본 뒤, 이번에는 반대편 옆에 앉아있는 다른 동기인 쾌흥태를 바라본다.


쾌흥태는 심통덕과는 반대로 항상 앞에서 1등을 차지하고 무적해병상을 받은 우수하고 모범적인 해병이었다.


큰 키에 다부진 체격, 그리고 그에 걸맞는 운동신경까지 이미 한 명의 해병으로써 완성되어 있던 존재가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의 존재였지만, 서로 소대가 달라 이야기를 나눠본 적은 없었고, 어쩌다 마주쳐도 거의 무표정으로만 있었기에 도저히 속을 알 수가 없는 인물이었다.


어찌 되었던 속으로 그러한 감상들을 삼키며 마달필은 저 멀리 창 밖에 나타난 자신의 자대인 6974 부대를 바라본다.






그 악명은 널리 들었지만, 해병대의 부조리를 몸소 체험한다는 것은 언제나 상상 이상이었다.


입 천장이 까질 정도로 쉴새 없이 먹어댔건만, 아직도 천자봉마냥 쌓여있는 맛동산의 봉지들을 보며 마달필은 절망감에 물들어가고 있었다.


더 큰 문제는 자신의 옆에 있는 문제의 동기, 심통덕이었다.


덩치로만 놓고 보면 제일 잘 먹게 생긴 녀석이 벌써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구토를 참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부대의 실세 변왕추가 악마같은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야, 이 돼지새끼야. 니랑 니 동기들 이거 다 못먹으면 오늘 니네들은 다 뒤지는거야."
"웁... 우욱... 무... 물좀 주시ㅁ..."
"물은 니미... 앗쎄이 새끼가 돌았나?"


물은 달라는 심통덕의 말에 변왕추는 심통덕의 머리통을 힘껏 후려갈긴다.


"야, 봉삼아. 맛동산 더 갖고 와라.

야, 돼지야. 니 때문에 니 동기들이 더 고생하는거야.

니가 물 더 달라고 찐빠냈으니까.

알겠지?"


변왕추의 말에 겁을 집어먹은 심통덕은 눈물을 흘리며 간신히 구역질을 참고 억지로 맛동산을 밀어넣기 시작했다.


'이래서 해병대 가면 병신이라고 밖에서 그렇게 욕하는거구나...'


마달필은 그런 광경을 보며, 한 순간의 안일한 생각으로 해병대에 지원했던 과거의 자신을 원망했다.


이 망할 악기바리에 실패하면 어떻게 될지, 그리고 또 앞으로 어떤 일을 당할지에 대한 걱정으로 눈 앞이 캄캄해질 무렵, 옆에서 나지막한 낮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전부 먹어치우면 되는겁니까?"


그와 동시에 산처럼 쌓여있던 맛동산 봉지가 쾌흥태쪽으로 빨려가듯 움직이고 쾌흥태는 놀라운 속도로 맛동산 봉지들을 뜯어 바닥에 흩뿌리고는 정신없이 맛동산을 집어먹는다.


아니, 들이마신다.


"야, 흥태야... 무리하지 말고 같이 먹자."


마달필이 식은땀을 흘리며 쾌흥태를 만류해보지만, 쾌흥태는 입천장이 까지는 것도 아랑곳 않고 정신없이 맛동산을 들이킨다.


"저... 저 미친...!"
"아니, 뭐 저런 놈이 다 있어?"


선임들도 무서운 것을 쳐다보는 눈빛으로 쾌흥태를 쳐다본다.


그 많던 맛동산이 눈깜짝할새 자취를 감췄다.


쾌흥태가 말한다.


"감사합니다. 정말 잘 먹었습니다."


눈 앞에서 벌어진 기상천외한 풍경에 마달필은 쾌흥태를 바라봤고, 또 한번 놀란다.


항상 무표정했던 쾌흥태가 씩 웃으며 내무반의 선임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쾌흥태의 활약으로 전입 첫 날은 어떻게든 무사히 넘길 수 있었지만, 선임들의 괴롭힘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오히려 2주 대기가 풀리자마자 통제라는 명목으로 생활하는 내내 사소한 것 하나라도 그들의 눈에 어긋나는 것이 있다면 가혹한 얼차려를 시키기 일쑤였다.


특히 가장 곤욕을 치르는 인물은 심통덕이었는데 부족한 일머리에 양옆으로 늘어난 비대한 덩치에 걸맞는 굼뜬 동작으로 선임들의 타깃이 되기 일쑤였고, 동기들의 집합의 원인중 9할 이상은 그가 제공하고 있었다.


그나마 마달필과 쾌흥태만 불려간다면 모를까, 부대 최고의 악질이자 체질 선임으로 손꼽히는 변왕추는 다른 중대의 동기들까지 불러모아 연대책임이라는 명목으로 단체 기합을 주고는 했다.


훈단에서 같은 소대였던 마달필과 자대에 와서 같은 분대에 배치받은 쾌흥태는 그러려니 하고 넘기고 있었지만, 다른 중대의 동기들은 잦은 단체기합으로 심통덕을 고깝게 보기 시작했고, 사실 마달필 또한 조금씩 심통덕에게 지쳐가고 있었다.


단지 항상 무표정인 쾌흥태만이 도무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을 뿐.


어찌 되었든, 마달필은 해병대에 온 것을 점점 더 깊게 후회하고 있었다.






드넓고 복잡한 창고 안을 세 명의 해병들이 정리하고있다.


선임들은 마달필과 그의 동기들에게 일을 짬때리고는 담배를 피우고 오겠다며 나가버렸다.


정리해야 하는 물품들은 어마어마했지만, 역설적으로 그 덕에 처음으로 동기끼리만 모여있는 시간이 주어지게 되었다.


서로 말 없이 묵묵히 창고를 정리하던 중 심통덕이 수통이 들어있는 박스를 엎고 말았다.


쾌흥태와 마달필이 조용히 다가와 엎질러진 수통을 다시 주워담는걸 도와줬다.


수통을 담는 도중 심통덕이 고개를 푹 숙이고 울먹이며 말한다.


"얘들아... 정말 미안해.
맨날 내가 실수해서...
맨날 나 때문에 다른 선임분들께 끌려가서 같이 혼나고...
괜히 나 때문에 너희들이 고생해서...

나 따위가 해병대에 와서..."

"야, 이 새끼야."


쾌흥태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심통덕의 말을 가로막고는 그의 멱살을 붙잡는다.


"넌 무슨 말을 그딴식으로 하고 자빠졌어?

무슨 죽을 죄 졌냐?

니 실수야 언제든지 고치면 그만인데 니가 그딴 생각으로 그러고 있으면 너 자신을 절대 고칠 수 없는거야.

너의 그 썩어빠진 생각이야말로 너의 실수이자 잘못인거야."


쾌흥태는 그렇게 말하고는 심통덕의 멱살을 놓아준다.


그리고는 선임들이 나간 창고 출입문을 바라보며 말한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보자.

저 악마새끼들이 우리를 불러다 갈구는 이유들 중에서 납득할만한거 얼마나 있었냐?"


쾌흥태의 말에 마달필은 그동안 선임들에게 불려가서 후까시를 먹었던 이유들을 떠올려본다.


처음 전입왔던 날에 10분 내에 선임들의 이름을 못 외웠다던가, 죽은 파리를 2시간 동안 쳐다보라 했더니 잠시 한 눈을 팔았다던가, 샤워장에서 노래를 불러보라 했더니 노래를 더럽게 못 불렀다던가, 심지어는 일과시간 도중 화장실에 가고싶다고 말했다는 이유로 다른 중대의 동기들까지 불려와 단체로 기합을 받은 적도 있었다.


전부 하나같이 말이 안되는 이유들이었다.


사실, 마달필 또한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자신들이 단체로 집합해 갈굼받는 이유들의 대부분이 원래는 심통덕 때문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지하고는 있었다.


그저 군대라는 특수한 상황에 그 불합리함으로 느끼는 불만을 표출할 길이 없으니 선임들이 표면상으로 내새우는 원인인 심통덕을 괜스래 원망하고 있었을 뿐.


수통을 주워담은 쾌흥태가 박스를 들어올리며 심통덕에게 말한다.


"너 자신이 문제라고 생각하면 너 스스로가 고치면 되는거고, 불합리한건 바꿔나가면 되는거야.

그러니 너 자신을 너무 탓하지 마.

명심해라.

해병은 전우를 버리지 않는다.

우린 언제나 니 편이다."


그 말을 들은 심통덕은 끅끅 소리를 내며 울음을 삼켰다.


쾌흥태의 말에 마달필은 마음에 변화가 생김을 느꼈다.


자신은 그저 현실에 굴복한 채 불합리함을 받아들이고 괜히 심통덕을 원망했지만, 쾌흥태는 심통덕을 버리지 않고 전우로써 대우하며 함께 나아가려 하고 있었다.


심통덕을 의지하지 못할 동기로 생각했으면서, 정작 자신은 심통덕이 의지할만한 존재가 되어보리라는 생각은 하지 않고 있었다.


마달필은 그런 자신에게 부끄러움을 느꼈고, 자신 또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쾌흥태와 같은 동기를 만났다는것에 처음으로 해병대에 온 것이 잘되었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 dc official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