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에 더 가깝긴한데.. '잘 정의된 무언가'를 못 까나? 애초에 객관이란건 다수의 주관을 꺼내어 합의될 때 성립 가능한건데
자연어는 밑바닥부터 잘 쌓아올리는게 불가능함? 그런 '합의를 끌어내는' 시도들을 이미 논리실증주의나 통일과학운동이 했단건가?
합의를 거쳐야만 객관이 성립한단 말에서 이미 실체 너머의 궁극적인 무언가는 절대 알 수 없다하면 할 말은 없네
아 복학하면 집합론이나 수리논리 들어야겠다 존나 궁금함. 수학과 선대는 하다가 때려쳤는데 ㅅㅂㅅㅂ 잘 할수잇겟지?
집합론부터가 집합(또는 class)을 제대로 정의하지 않고 시작하니 집합론 듣는다고 그게 해결될거 같진 않네
물리 하다가도 맨날 이런 철학적인 내용들로 자주 빠지는데 철학으로 건너가야하나...
철학은 뭐 다르냐? 그냥 포기해
기본적인 논리체계를 객관적 사실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 어떤 학문의 전개도 불가능한데, 만약 이 논리체계가 실제로 객관적인 진리인지 탐구하려는 시도가 있다면 이건 일종의 순환논증이 돼버리지
그렇지 그래서 그에 대한 질문은 전혀 무의미하니 무시하고 살아야한다는 쪽이었고 그냥 있다고 믿어도 된다는 생각이었는데 어제 낮에 안그래도 저걸로 얘기하고 새벽에 글 보니까 꽂히더라고
집합론 해봤자 ZFC 안에서 놀잖아 너가 원하는 답은 안나올것 같은데 수리논리는 그게 열리는 수학과가 얼마나 있을지..
열리더라
저학년과목? 고학년과목?
ㅁㄹ?? 6000단위고 학년제한 없이 교선인데
전공 아니고 교양선택이면 깊게 안들어감. 철학과에 논리학 커리큘럼이 있다면 그거 따라가는게 나을 것 같음.
ㄱㅅㄱㅅ..
내가 밑에서 언급한 번역 불확정성의 정리도 한번 알아보셈. 자연어 문장의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일관적인 해석은 존재할 수 없는것 같음. 뢰벤하임-스콜렘 정리와 분명 관련있을것같음.
난 수리논리의 ㅅ도 몰라서 적절한 인용이 아닐 수 있는데 이거 뢰벤하임-스콜렘 정리 생각남. 관련있는거 맞냐?
이거 좆무 보니까 번역 불확정성 정리로 이어지는데 자연어와 관련해서 이쪽을 조사해보는게 어때
걍 뇌피셜임. 자연어에서 의미 다 떼고 만든 게 기호논리학인데 거기서 시작해서 아무리 잘 쌓아올려도 괴델의 불완전성 때문에 그 체계 안에선 잘 쌓은건지 아닌지 절대 확인 불가능함. 상위 체계에서나 확인 가능함. 그래서 "자연어는 밑바닥부터 잘 쌓아올리는게 불가능함?" 이런 의문 보다는 상위 체계가 존재하냐? 만들 수 있냐? 그걸 생각하는 게 더 의미 있어 보임. 다시 말하지만 뇌피셜임ㅇㅇ 미안하다
명제의 진리치를 어떻게 결정하는지에 대한 나이브한 설명은 대충 이러함. 기초적인 사실들에 대한 원자 명제들의 진리치는 경험적 검증을 통해, 즉, 그것이 실제 세계를 반영하는지에 따라 결정됨. 예를 들어 명제 A(c)가 참인지는 경험적으로 검증할 일임. 그리고 이 명제들을 연결사나 양화사로 결합한 복합명제의 진리치는 논리적 추론규칙들에 따라 원자명제들의 진리치의 함수로서 결정됨. A(c)와 A(c)->B(c)가 참이라면 그로부터 B(c)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건 논리적 진리임. 그렇다면 임의의 명제의 진리치는 그 명제를 구성하는 기초적인 원자명제들의 진리치를 경험적으로 검증하기만 하면 자동적으로 계산되는 셈임.
근데 실제로 학자들이 이론을 두고 싸울 때든 사람들이 일상에서 이견이 발생해서 토론을 할 때든 늘 이렇게 시원하게 해결되지 않지? 너랑 가치관, 세계관, 정치적 신념이 전혀 다른 사람과 키배를 뜰 때를 생각해보셈. 상대가 의존하는 원자명제 하나 찾아서 그게 거짓이라고 반증하면 그냥 상대가 와르르 무너져야 하는데 많은 경우 그렇게 안 됨. 상대가 의존하는 기초적인 경험명제 A를 근거 E로 반증해도 상대가 E가 A를 반증하는 근거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지. 확실하게 이거 하나 때리면 겜 끝!이 아니고 아프간에서 탈레반이랑 술레잡기하는 미군마냥 뱅뱅 돌게 되기 십상임.
사고체계, 신념체계의 각 부분들은 체계의 전체와 상호의존하는 관계에 있음. 어느 한 부분만 떼어서는 검증을 수행할 수 없음. 매우 개별적이고 기초적이어 보이는 관찰명제조차 그것을 해석하는 이론체계가 전제되어 있어야 함. 때문에 상대의 믿음체계 중 기초적인 요소 하나만 떼서 검증함으로써 상대의 입장을 반증하려는 시도가 툭하면 전체적인 신념체계에 있어서의 이견으로 돌아가버림.
형식체계의 경우 이와 달리 깔끔하게 딱딱 떨어지는 것 같지만 형식체계는 그것의 언어와 의미론을 정의하기 이전에 메타이론, 메타언어를 전제함. 메타이론은 통상 자연어와 기초적인 유한수에 대한 이해를 포함함. 이것들에 대한 이해는 합의된 것으로 주어졌다고 전제하고 시작함. 하지만 우리의 언어체계, 신념체계 자체에 대해 논하는 것은 그 체계 내부에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지.
논리적 진리에 관해서도 배중률이 과연 보편타당하게 참이라는 믿음을 확증하는 어떤 근거가 있냐 물으면 답하기 힘듬. 무언가를 논하려면, 무언가를 증명하려면 언제나 다른 무언가를 전제해야만 함. 데카르트가 모든 것을 의심하더라도 내가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만은 의심할 수 없다고 했지만 비트겐슈타인이 지적하듯 이런 데카르트의 사유과정도 그 사유과정에서 사용되는 언어의 의미까지 의심하지는 못함.
철학에서도 요즘 저런거 하면 굶어죽기 좋은 주제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