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네덜란드와 교류하면서 난학으로 서양학문을 17,18세기부터 수입함 짤은 해체신서라는 해부학책인데 검색해보면 18세기 일본인들이 힘들게 네덜란드어를 배워가면서 해부학 스터디같은거 한거도 나옴
난학은 의학만이 아니라 화학 물리학 수학 공학같은 이과계열 학문으로 확산됨.. 일본화학의 개척자들이라는 책보면 일본인들이 얼만큼 열정적으로 서양과학을 파고들었고 그게 어떻게 일본최초 제철소 설립같은 부국강병으로 이어졋는지 나옴
18세기 조선은 일본과 달리 강한 성리학의 그늘아래서 제한적으로 실학사상이 중국을 거친 서양의 영향을 받았고 그마저도 농업이나 농업을 위한 천문등에만 한정적인 영향을 끼침 한국이 서양과학을 직접 받아들인 역사는 일본보다 한참 한참 늦음
더구나 한국은 20세기에도 경제성장을 위해서 인재들이 과학 수학등 기초학문을 건너뛰고 공학으로 몰림
결론: 수학은 서양학문이라 서양학문에 개방된 역사가 중요함
한국은 조선성리학>조선멸망 식민지 전쟁난리통>20세기 공학으로 학문의 역사가 압축되어버림 일본은 서양에 일찍 직접개방된 역사로 서양기초학문을 찬찬히 기초부터 받아들엿고 그게 현재 수학 과학과 같은 기초학문의 레벨에서 한국보다 앞선 이유라고 본다는 내피셜
난학은 의학만이 아니라 화학 물리학 수학 공학같은 이과계열 학문으로 확산됨.. 일본화학의 개척자들이라는 책보면 일본인들이 얼만큼 열정적으로 서양과학을 파고들었고 그게 어떻게 일본최초 제철소 설립같은 부국강병으로 이어졋는지 나옴
18세기 조선은 일본과 달리 강한 성리학의 그늘아래서 제한적으로 실학사상이 중국을 거친 서양의 영향을 받았고 그마저도 농업이나 농업을 위한 천문등에만 한정적인 영향을 끼침 한국이 서양과학을 직접 받아들인 역사는 일본보다 한참 한참 늦음
더구나 한국은 20세기에도 경제성장을 위해서 인재들이 과학 수학등 기초학문을 건너뛰고 공학으로 몰림
결론: 수학은 서양학문이라 서양학문에 개방된 역사가 중요함
한국은 조선성리학>조선멸망 식민지 전쟁난리통>20세기 공학으로 학문의 역사가 압축되어버림 일본은 서양에 일찍 직접개방된 역사로 서양기초학문을 찬찬히 기초부터 받아들엿고 그게 현재 수학 과학과 같은 기초학문의 레벨에서 한국보다 앞선 이유라고 본다는 내피셜
한국전쟁 이후 공학 중심으로 성장했기에 지금은 세계에 내노라하는 기업들 여럿이지. 서울대 수학과에 교수가 30명 넘은 게 불과 10여년 안팍이던가? 카이스트 정도가 30명 넘지. 포스텍이 겨우 20명 넘고, 연고대도 20명이 안돼.
인구 두 배 되는 일본에 도쿄대가 교수 68명이야. 서울대나 카이스트가 겨우 인구비례로 교수 수 맞춘거고. 일본 큰 대학들엔 교수들 정말 많다. 순수기초과학에 대한 집권자들의 정신상태를 알 수 있지.
그래도 이젠 젊은 교수들 중에 invent도 쓰고 Duke도 쓰고 그러잖아. 국내에서 학위한 사람들인데도. 그렇게 천천히 크는거다.
훠훠훠 마튀쥬 한뒈 보눼드릴꽈요?
인구비례는 말이 안 되지. 대학 갯수가 인구비례지 개별 대학의 질적 수준이 인구 비례가 되는 게 말이 되나 ㅋㅋㅋ 정말 너무 투자 안 하는 거 같음.
물론 추가로... 대략 5, 60년대 학번들은 전쟁통에 먹고 사는게 문제라 그렇다 치고(그들도 교수된 이후에 유학 더시 나갔다 와서 박사학위 제대로 받곤 했더) 70년대 학번들이 유학 제대로 갔다와서 소위 선전문물을 들고 들어온 학번인데, 그 학번들 중에 연구를 이어나가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는게 안타까운 점들이다.
연구비란 게 언제부터 생겼냐? 90년대다. 70년대 학번이 80년대에 교수되어 들어와봤자, 해외 학회 한 번 나가기 어려웠던 시절이었던거지. 알다시피 연구란 건 혼자하는게 아니거든. 박사학위 때 아무리 최신 이론을 배웠으면 뭐해. 돌아오고 나면 고립된 상황인데. 그러니 하던 거나 사골물 파며 하는 수 밖에. 세상은 훨훨 변했는데.
80년대엔 실험실 시약도 없어, 미국에서 ibrd 같은 걸로 원조해 준 시약 남은 거로 할 수 있는 실험만 겨우했다. 앞서가는 연구란 걸 무슨 수로 하냐? 비판은 쉽지만, 제대로 된 비판을 하려거든 좀 알아보고 하던가. 일본 짱짱 이러고 있으면 지 몸값이라도 오르는 줄 아는 어리석음이라니.
80년대에 국제수학자대회에 우리나라 수학자들 처음 방문할 때, 돈이 없어 개도국 지원 펀드 받아 겨우 몇 명 갔었다. 그게 불과 40여년 전이야. 딱 한 세대 전. 지금 대학의 정년 앞둔 60대 교수들 시절 이야기지. 얼마 안 된 시절이다.
60년대 학번 교수하다 유학 나가 학위 받고 들어올 때 한 일이 논문 복사해 오는거였다. 어떤 교수는 복사한 논문만 1m가 넘었다지. 왜? 국내에서 구독하는 학술지가 없으니까. 왜? 나라에서 돈을 안대주니까. 그러니 무슨 연구를 할 수 있었겠냐. 참 힘들게 연구하던 분들이다.
조선시대가 문제가 아니라 그냥 제대로 학문을 할 여건 자체가 정말 극히 최근에나 만들어졌고 그나마도 여전히 열악하지. 그 조건에서 이 정도면 딱히 못하는 것도 아니고.
밑에 메이지유신 어쩌고 하는 무지성일뽕글 있길래 써본글임
개추는 타이밍이야 내가 보냈다!
일본은 350년 전에 이미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랑 교류하면서 세계동향 분석보고 하던 기관이 있었음. 데지마 인공섬이라고 쳐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