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밀을 따지려면 순수히 정보만 존나 많은 백과사전식 수학서적을 찾아야하거나

수학자의 관점에서 (최소 박사학위) 본 자료가 필요



예를 들어서 라마누잔이


C.S CARR의 PURE MATHRMATICS라는 책을 사서

봤다고한다 거기는 정리들이 나름대로 엄밀하고 자세하다

라마누잔은 수학자가  쓴 일종의 백과사전을 보고 공부한것이다

갈루아 또한 수학 공부를 하기위해

르장드르의 기하학원론

르장드르의 대수학 서적?(잘은 모름)들을
보면서 공부했다고한다

제르맹은 아르키메데스가 당대에 가장 순수한 수학이라 여겨지던 기하학에[4] 그토록 열중하였다면, 수학은 배워볼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9] 제르맹은 아버지의 서재에 있던 수학과 관련된 모든 책을 읽어나갔다.[10] 아이작 뉴턴과 레온하르트 오일러의 저작을 읽기 위해서 스스로 라틴어와 그리스어도 독학하였고, 에티엔 베주의 《산술 연구》를 읽은 다음, 자크 앙투안 조세프 쿠진의 《미분 계산》마저 읽었다. 《미분 계산》의 저자 쿠진은 어느날 제르맹의 집을 방문하였다가 제르맹의 학습을 보고 매우 놀라워했다.[

아인슈타인은 유클리드의 원론을 보고 논리에 감탄

1821년 아벨이 대학에 입학했을 때 그는 이미 노르웨이에서 가장 지식이 풍부한 수학자였습니다. Holmboe는 더 이상 가르칠 것이 없었고 Abel은 대학 도서관에서 최신 수학 문헌을 모두 공부했습니다. 그 기간 동안 Abel은 근수 에서 5차 방정식 을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



옛날에 배운 사람들을 보면


수학자가 쓴 책의 직접적인 논리들을 가지고
공부했다


축소된 2차적인 저작물이 아닌




또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가 아닌 한낱 교사의 입장에서도


책을 저술할수있을정도의 수준이었고


그때는 교사는  교수 취급이었다




포이어바흐의 정리로 유명한


포이어바흐도 김나지움(기관마다 다른데 아마 공립학교는 교수 비인가 교육 시설은 교사라는 명칭이 쓰이는듯? 옛날에는 의무교육이 없어서 학교에서만 배워야한다가 없어서. 김나지움은 중등교육기관임)의 교수였고




가르치는 입장도 저술활동과 정리를 만들어낼줄알고


배우는 사람도 수학자의 저술들을 보면서 공부했다


수학자체는 엄밀함의 학문인데


배울때 이때는 간단히 배워야하고


이때는 엄밀하게 배워야한다는 모순인듯하다


모두가 공통적으로 배워야하기때문에

수학의 엄밀함을 포기했고

수학을 올바르게 이해한 애들


욕구를 충족하고 집착을 하면서 큰그림을 그리고 싶은 애들은

원하는 정보를 일일이 찾아서 욕구를 충족해야하는

불편함이 있는데


찾을수 있는 자료는 한정적이라

영어서적 혹은 일본어 서적을 찾아야지(일본은 필자의 경험성 평면기하학에 관한 질 좋은 자료가 간혹있다

듣도보도 못한 정리들을 알수 있음)

원하는걸 알수 있고

또한 저자 수학에 깊이있는 사람이 아닌 아마추어일수도 있어서

관점의 차이가 있을수도 있다




결론 모두가 공평하게 교육받아야하고 양을 정해서


평가를 해야하기때문에


수학의 엄밀함이 포기된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