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속에서 수학연구하면서 30대 초반에 논문 쓴 게
바일 눈에 띄여서 프린스턴 고등연구소에 초청 받은 뒤에
미국에서 연구..
33살(확실하진 않음)에 미국 넘어가서 울프상, 필즈상까지 탔는데
당시에는 요즘처럼 최신 수학을 빨리 접하기가 힘들었을텐데 어떻게 이런일이 가능했던거?
내말은 고다이라가 살던 때도 미국 일류대 대학원 재학생들이 있었고 그사람들은 주류수학을 제일 먼저 접하면서 배웠을텐데
어떻게 변방의 수학자가 그들을 다 제치고(?) 필즈상을 탈 수 있었을까/...
그냥 재능인가
그 외에도 고로 시무라, gromov같은 수학자들은 어떻게 고립된 환경에서 그렇게 수학연구를 잘할수있었던걸까? 추가로 천싱선도 독일에서 잠깐 유학하고 중국으로 돌아와서 논문 많이 썼다고 하던데.
일본은 전쟁 전 한참 전 메이지유신 때부터 독일과 교류하였습니다. 그 당시 독일은 학문의 최전선에 위치한 나라였고요. 그리고... 1900년대 초의 일본은 "변방"이 아니었는데요? 세계를 상대로 전쟁을 일으키고 아시아 대부분을 잡아 먹은 나라가 어찌 "변방"이겠습니까?
아 그랬군요..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근데 제가 고다이라 자서전을 읽었을 땐 무척이나 힘들게 공부한거같아서요. 군대에 들어가기 싫어서 대학원에 진학한 이야기. 수업중에 폭격이 떨어져서 피난 다니면서 강의한 이야기 또.. 수업중 사이렌이 울리면 지하로 도망갔던이야기. 심지어 전쟁이 끝나고 도쿄로 돌아왔을 때도 난방은 난로하나에 먹을것도 제대로 못먹었다는 이야기 등등. 미국에 가기전 건강검진 후 구충제를 먹었는데 30cm짜리 유충이 나온이야기, 심지어 annals of mathematics에 박사논문을 제출할 때도 미군을 통해서 했다고 하더라구요. 저자도 무척이나 힘들었던 상황이라고 묘사했었습니다.. 나중에 회고하길 도대체 뭘 이루고자 그 전쟁통 속에서 열심히 공부했는지 지금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다고 적ㄴ
어 놨었는데, 학문적으로 아예 고립된 상황은 아니었나보네요.
아 그러고보니 고다이라 이야나가 쇼이치 교수가 국제수학연맹 이사로 있었다는 내용도 있었고, 이야나가 쇼이치의 지도교수가 힐베르트 아래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는것도 본 기억이 있는데 일본은 옆나라이면서 우리랑 왜이렇게 다른지..
*고다이라의 지도교수인 이야나가 쇼이치 교수
이야나가 쇼’키’치 아님? 내 지도교수의 지도교수의 지도교수인데
일본은 임진왜란 전후부터 서양하고 무역 활발하게 했는데 무역만 하다가는 잡아먹히겠다 싶어서 메이지유신 과감히 했지. 그때부터 독일 1베를린으로 유학도 가고.
거기 유학갔던 수학자들이 일본에서 제자들을 많이 길러냈고.
이토 기요시도 있고 당시에 잘나가던 사람이 꽤 있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