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의 길이는 왜 각에 비례할까?

이런 질문을 만나면 대부분 돌아오는 답은 "그게 각도의 정의니까"이다. 그러니까 "라디안 = 호의 길이 / 반지름"이 각의 정의이므로 당연하다는 것인데, 뭐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렇게 좋은 답변도 아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각도를


"유사라디안 = 현의 길이 / 반지름"


으로 정의한다면 이 사람의 각도는 호가 아니라 현의 길이에 비례할 것이고, 따라서 각도가 2배가 되면 현의 길이도 2배가 될 것이다. 왜냐면 그렇게 정의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정의를 보면 대부분은 무언가 이상한 불편함을 느낄 것인데, 결국 그것은 우리가 직관적으로 생각하는 각도의 성질을 유사라디안이 만족하지 않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무엇이 문제길래 우리는 유사라디안이 잘못된 정의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예를 들어 다음 그림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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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는 인터넷에 대충 호의 길이 검색해서 나오는 사진 가져옴

아무튼 이 그림을 보면, 똑같은 호를 두 개 갖다 놓으면 호의 길이가 두 배가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당연). 마찬가지로 똑같은 부채꼴을 이어놓았으니 중심각의 크기도 두 배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러운데, 위의 유사라디안을 각의 정의로 삼는다면 실제로는 각의 크기는 두 배가 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현의 길이가 두 배가 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가 유사라디안을 각의 정의로 인정하지 않는 이유는,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똑같은 부채꼴을 두 개 붙이면 각의 크기가 두 배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인 것이다. 유사라디안은 이를 만족하지 않는다.


조금 더 일반적으로, 각도를 어떻게 정의하든간에, 각각 호의 길이가 x, y인 부채꼴 두 개의 중심각을 f(x), f(y)라고 하자. 이 둘을 나란히 이어놓아 만든 커다란 부채꼴의 중심각은 당연히 f(x)+f(y)가 되도록 각도함수 f를 정의하고 싶을 것이다. 커다란 부채꼴의 호의 길이는 x+y이므로 다시 말해 우리는 함수 f가


(1) f(x+y)=f(x)+f(y)


라는 식을 만족시키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그리고 직관적으로, 호가 커지면 중심각의 크기도 커져야 할 것이다. 즉 f는 증가조건


(2) x<y이면 f(x)<f(y)


도 만족해야 한다. 그리고 (1), (2)를 만족하는 함수 f:R->R은 사실 일차함수밖에 없다는 매우 유명한 사실이 알려져 있다. 따라서 필연적으로 f(x)=Ax 꼴인 상수 A가 존재한다. 그리고 편의상 A=1이도록 한 것이 바로 라디안이다. 우리가 쓰는 60분법은 원 한 바퀴에 360도가 부여되도록 A를 조정한 것이다.


세줄요약

1. 호의 길이가 각에 비례하는 것은 정의 이전의 문제에 가까움 (유사라디안을 각으로 인정하는 사람이 없으니까)

2. 우리가 "각도"라는 개념에 바라는 성질인 (1) 부채꼴을 이어붙이면 각이 더해진다 + (2) 부채꼴이 커지면 각이 커진다 를 모두 만족하는 함수는 일차함수밖에 없음

3. 따라서 각도가 위의 두 성질 (1), (2)를 만족한다는 가정 하에 각도는 무조건 호에 비례하게 되어 있고, 라디안은 상수를 가장 간단하도록 맞춘 정의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