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얘기는 그동안 누구에게도 해 본적 없는 이야기다.

학계에 있는 지인들은 조심스러워서 나에게 못 물어봤을꺼고, 내 아내는 학계를 떠나는 선언을 했을 때 정말 괜찮겠냐고 몇 번 물어보긴 했지만 구체적인 사유에 대해 캐묻지는 않았었다.

그럼에도 학계를 떠난지 6년이 넘어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내 스스로 마음 속으로만 생각했던 것들을 글로 한번은 정리하고 싶었고, 최대한 내 주변 지인들은 없지만 수학에 관심있는 사람들이 있을 법한 이 곳에, 이런 삶을 사는 사람도 있구나 도움이되지 않을까싶은 생각이 들어서이다.

내가 수학자가 되겠다고 진로를 결정한 것은 고1 때였다. 중학교 시절까진 전자기기와 컴퓨터에 빠져살았고 주말마다 친구들이랑 용산 전자상가를 들락날락 했었는데, 부족한 용돈으로 컴퓨터 업그레이드에 한계점이오고 흥미가 떨어질즈음 수학에 재미를 붙였던 것 같다. 요새는 모르겠지만 당시 생기부에는 학생 본인 희망 진로와 부모 희망 진로가 기록되었는데, 나는 고1 때부터 수학자로, 부모님은 고1 때는 메디컬을 희망하셨지만 나중에는 내 뜻을 이해해주셨고 나는 수시 정시 모든 원서를 수학과로만쓰고 대학에 진학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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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시절 생기부.

대학 시절은 마음껏 수학을 공부했던 시기였다. 대학 1학년 필수 교양과목을 듣는 기간이 끝나자마자 2학년 때부터는 수학 전공으로만 18학점, 21학점씩 꽉꽉채워 들었다. 3학년 2학기쯤되니 학부 개설과목 만으로는 채울 수가 없어서 대학원 과목들을 섞어 들었다.

졸업 즈음에는 운이좋게도 알고리즘 수업에 연이닿아 미 MS Research Theory Group에도 3달 정도 방문연구원 자격으로 가보게 되었는데, 유수의 아이비리그 박사들 취업 면접 세미나하는 것도 현장에서 직접보고, 필즈메달리스트 강연도 눈 앞에서 보는 귀한 경험도 하게 되었다.


대수경은 당시 활동하던 수학 학술동아리에서 다들 매년 출전하다보니 나도 으레 나가게되었는데, 대학 3학년즈음되니 대수경도 상위 입상에 자신감이 생겼다. 얼추 왠만한 문제들은 거의 풀 수 있는 상태가 되었고, 3학년 때도 시험장을 나올 때는 내심 상위 입상 기대를 했었으나 나중에보니 실수한 문제가 너무 많았다. 4학년 때는 마지막이라 아는 문제에서 실수하거나 감점은 받지 말자는 마음으로 도전했고 좋은 결과(대상)를 얻게 되었다.


보통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학 시절 진로와 인생에 대한 고민을 가장 많이 한다. 나는 그 시기에 진로에대해 고민할 필요가 없었기에 행운아라고 생각했었다. 내 스스로 좋은 수학자가 될 것에 의심하지 않았던 시기였다.

대학원 시절도 석사 1학년을 마치고 논문자격시험을 볼 때까지는 고민이 없었다. 동기들 중 1등으로 논문자격시험을 통과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세부 전공에 들어가 '연구'를 하게되면서부터 예상치 못했던 난관에 부딪히기 시작했다. 그동안은 비교적 넓은 범위의 수학을 깊지 않은 수준에서 배웠다면, 이제는 세부분야의 아주 구체적인 문제를 드릴로 파서 뚫어야하는 단계였다.


박사학위를 받는다는게 어렴풋이 어떤 과정인지를 줏어들어 알고는 있었지만,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많은 도구들을 익히고 아주 깊이 많이 뚫어야한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특히 내가 전공했던 대수기하학은 유독 심했다.


익혀야할 도구와 개념, 종류는 너무 많아서 하나하나 장인 정신으로 갈고 다듬으며 익힐 시간이 없었다. 논문자격시험을 봤어도 대수기하학 관점에서 나의 지식은 아직 19세기 수준이었고, 단기간에 100년이 넘는 세월을 가로질러 21세기 프론티어까지 가야하는 상황이었다.


몇가지 필요한 도구를 익히는데만 수 년이 필요했고, 따라서 지도교수가 알려주는 도구들을 먼저 익혀야했다. 그래야만 제 때 학위 논문을 쓰고 졸업이 가능했다. 주변의 학자로 성공하신 분들은 절대로 풀고자하는 문제에 대한 목표의식없이 호기심으로 대수기하학 관련 내용이라고 이것저것 공부하는 것을 경계해야한다고 조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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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워진 수학, 고다이라(일본인 최초 필즈상 수상자)의 글.

이 때부터 뒤늦게 방황아닌 방황을 했던 것 같다. 내 스스로 수학에대한 '흥미'와 '능력'에 대해 한 번도 의심해본 적이 없었는데, 이 모두 도전을 받기 시작했다.


첫째는 능력. 난 학부시절 해석학보다 대수학이 더 어렵다고 느낀 편이었는데, 박사과정을 거치면서 더욱 극대화 된 느낌이었다. 대수학은 공부할 때 수없이 쏟아지는 추상적인 정의와 개념들을 우선 받아들이고 나중에 구체적인 예제들을 통해 그 의미를 찾아야 하는 과목인데, 너무나 많은 양을 그렇게 소화하니 많은 개념들이 내 것 같지가 않았다. 나는 내 스스로 완전히 이해할 때까지, 아주 구체적으로 손에 잡히는 계산으로 확인할 수 있을 때까지 붙들고 생각하던 타입이었는데, 대수학을 그렇게 공부하면서 연구 목표에 도달하기엔 공부할 것이 너무나 많았다.


그래도 처음엔 논문 한 줄도 안읽히던 것이 시간이 흐르고 많은 개념들이 익숙해진 이후엔 논문들을 읽으면 그 흐름이나 증명이 이해는 되었지만 여전히 많은 내용들이 "너 이거 완벽하게 알아?"하고 물으면 손에잡히는 느낌은 아니었다. 책이나 논문의 흐름대로 이해는 되었고, 그 흐름에 맞게 다른 문제들에 적용할 수는 있었지만, 남들이 흔히 사용하는 방식을 익혀 적용하는 수준이지 그 본질을 완전히 내 것으로 소화해 내 마음대로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느낌은 아니었다.


둘째는 흥미. 이전까지 내 스스로 수학을하는 의미에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너무 고인물 레벨로 들어가니 '이게 무슨 의미가 있지?'하는 생각이 많았었다. 전세계에서 100명도 안되는 사람만이 내가 푸는 문제에 관심이 있고, 그 그룹의 사람들끼리 논문을쓰면 서로 피어 리뷰하면서 이게 맞네 틀리네 의미가 있네 없네 하는 상황. 나와 같은 연구실의 후배는 전세계 어느 저널에 논문을 보내도 본인 논문 심사 가능한 사람은 6명 밖에 없다는 얘기도 한 적이 있었다.


살면서 한번도 수학자들이 하는 수학의 '의미'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다수의 사람들은 아무 관심이없고 극소수의 전문가들끼리 맞네 틀리네하며 짝짜꿍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지? 하는 생각을 박사과정 내내 떨치지 못했다. 혹자는, 전세계의 극소수의 학자들만 인지하더라도 그들이 대가이고 대가들로부터 인정받으면 훨씬 의미있는 것이다라고 얘기하긴했지만 나에게는 와닿지 않았다. 여전히 골방에 똑똑한 사람 몇몇이 모여 '사유게임'을 하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물론 수학에도 그 의미가 무엇인지 굳이 고민하지 않아도 될만큼 파급력이 매우크고 유명한 문제들이 있다. 그런데 그 문제를 박사과정 학생이 도전한다? 이건 현생을 포기하는 것과 매한가지다.


순수수학이 원래 그런 것 아니냐, 몰랐었느냐고하면 사실 할 말이 없다. 알고는 있었지만 흥미나 재능에 대한 걱정을 안하고 살아서 생각해본 적이 없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런데 흥미가 떨어지니, 스스로 의미를 부여해서 추진력을 찾고자했고, 그 부분에 실패하면서 흥미도 함께 떨어졌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내가 하루종일 하는 연구에 스스로 의미 부여를 못하니 흥미가 떨어지고, 흥미가 떨어지니 집중력도 떨어지고 실적도 내가 원하는만큼 나오지 않았다.


사실 난 첫째의 능력 부분에 있어 흥미나 의미부여가 강력한 동기로 있었다면 훨씬 많은 부분이 극복되었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 두가지 고민이 한꺼번에 오고, 게다가 박사과정까지 다 와서 이런 고민들이 생기니 연구 몰입도도 떨어지고 참 힘들었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석박통합 6년차에 학위 문제를 완전히 바꾸는 결단을 하게되었다. 대수기하학을 하되, 지도교수의 분야와는 다른 응용 분야에 적용해서 내 스스로 의미있다고 생각하는 문제를해야 집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뒤늦게 문제를 찾다가 학과 다른 전공 교수님을 통해 양자얽힘과 관련된 문제에 내 세부전공을 적용할 수 있는 실마리를 발견했고 해당 문제를 대수기하학의 방법론을 이용하여 해결하여 수리물리분야 탑 저널에 개재하고 그 논문으로 졸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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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 논문 Comm. Math. Physics accepted 메일.

학계를 떠나는 문제는 그즈음부터 고민했던 것 같다. 내가 정말 지금하는 연구만으로 평생 행복감을 누리며 살 수 있을까하는 문제.


아마 첫 포닥자리가 좋은 자리가 아니었다면 더 빨리 결단을 내렸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운이 좋게도 첫 포닥을 국내 순수수학 연구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곳에서 할 수 있게되었고, 나의 고민은 다시 연장되었다.

포닥 생활하던 곳은 서울의 한적한 지역에 있었고 연구하기 매우 좋은 환경이었기에 그에대한 불만은 없었다. 하지만 곧 다음 일자리 준비를 해야했고, 진지하게 나 자신을 돌아봐야만했다.


일단 국내 어느대학이든 당장 교수 임용이 되는 상황이 아니라면 그 일자리보다 더 좋은 자리를 찾기위해선 해외로 나가야했다. 기혼자이자 맞벌이이자 어린 자녀가 있는 사람으로서, 이 얘기는 가족들을 한국에 두고 홀로 외국으로 나가야함을 의미했다. 국내에서 포닥자리를 알아보더라도 연구만하는 연구기관들이 보통은 대학보다 환경이 나았기에 이런 곳을 가려면 대전이든 포항이든 지방으로 내려가야만했다. 나보다 연봉이 높은 정규직 직장인인 아내가 비정규직 박봉의 포닥을 따라 연고도 없는 지방으로 함께가는 상황이 아니라면 교수 임용 때까지 기약도 없는 세월을 주말부부로 버텨야만할 상황이 도래하고 있음을 인지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런 생활 조차도, 그 옛날 아버지들 중동파견처럼 돈이라도 많이 벌러가는 것이면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일자리들은 최저임금을 겨우 넘는 수준이었다. 이것도 원래는 최저임금보다 낮았는데, 제도적으로 비정규직 박사 인력들 처우가 사회 문제화되면서 겨우 실현된 것이었다.


일이 잘풀려 어디든 교수 임용이 된다면 정말로 행복할까? 당시 나의 대답은 "나도 잘 모르겠다." 였었다. 그 즈음 이미 지인들 중에 일찍 교수 임용이 된 분들이 있었다. 내 스스로 물질적인 욕심이 없는 편이라 생각은 했었지만, 생각보다 인서울 대학들에도 교수 타이틀만 붙여주고 사실상 부려먹는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연봉이 너무나 박한 대학들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 또한 알게 되었다. 당시 내가 받던 포닥 연봉보다 못한 대학이 부지기수였다. 보통 공대 교수들은 산학을 하거나 다른 명목으로 부수입을 챙길 수 있는 여지가 많은 편이지만, 수학과는 그렇지도 못했다.


여담이지만, 지난 코로나 시기 주요 대기업 대졸 초년생들도 연봉 기준에 걸려 못받았던 코로나 재난지원금을 내 주변 교수 지인분들은 꽤나 많이 수령하였다. 가장 큰 이유는 이전 10여년간 우리나라 국민 1인당 소득이 2배가 오르는동안 대학 교수들 연봉은 동결이었다. 게다가 초임 교수들은 보통 초기 몇년 간 임금 동결 조건으로 임용되는 것이 점점 스탠다드로 잡아가기 시작했다. 이는 당연한게, 대학 등록금이 10년넘게 오르지 않았고 학생수 감소로 앞으로도 급격히 올리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연봉이 작으면 잡무라도 적어야하는데, 대부분 대학의 초임 교수들은 수많은 잡무에 시달렸다. 그 속에서도 정년 보장 논문 조건을 맞추기위해 주말 출근도 불사하며 생활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지금보면 원래 그랬는데, 그즈음 학계에 마음이 떠서 안보이던 것들이 보였을 수도 있다. 그런데 어느정도 마음이 뜨고나니, 교수를 보편적인 기준에서의 직업으로보고 다른 일자리들과 비교하기 시작했고, 아내 직장 통근이 가능한 수도권 근무와 연봉 등 그동안 크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들이 점점 더 크게 고려되었다.


그리고 학계를 떠나기로 결심했다. 그즈음 내 스스로 난 어느정도 대학 교수가 되면 만족할까에 대해 질문을했었고 속된 말도 최상위권 대학이면 ok, 아니면 학계를 떠나 보편적인 사람들이 추구하는 삶이 나의 만족도와 결이 맞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내 실적으로 최상위 대학 교수로 임용이 되기엔 갭이 컸으므로 미련없이 떠나기로 마음 먹었다.

사실 스스로를 돌이켜보면 학계를 일찍이 떠나지 못한건 수학에대한 열정보다는 자존심 때문이 컸다고 생각된다. 수학은 공대와 달리 박사학위자 절대 다수가 학계에 남고자했고, 순수수학은 더욱 그랬다. 학계를 떠나는건 스스로 완전히 '루저'임을 인정하는 것과 같았다. 세상의 시선은 그게 이상하다고 볼 지 몰라도, 수학계 내부에서의 시선은 그것이 명백했다.


좀 과거로 가보면, 수학 내에서 세부전공을 정한 것 또한 비슷했다. 대수기하학이 뭔지도 잘 모르면서, 일본 필즈메달리스트 3명이 모두 대수기하학자라고 하니, 그리고 그 분야가 수학계에서도 주류라고 하니 나도 해보고 싶어하는 마음으로 선택했었다. 나는 어떤 수학을해도 잘할꺼고, 그럼 수학 내에서도 제일 어렵다는 분야를 하겠다는 마음. 굉장히 오만한 선택이었다.


한가지 더 고백을 하자면, 그 시절 학계를 떠나기로 마음을 더 쉽게 굳힌 이유가 또 있었다. 나와 비슷한 연배의 IMO 출신들은 모두 의대를 가지않고 수학과로 진학을 했었다. 그리고 기대에 부응해 서울대를 우수한 성적으로 조기졸업하고 하버드, 프린스턴, MIT 등 유수의 명문대에서 수학에서 가장 어렵다는 대수기하학이나 정수론 등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런데 내가 학계를 떠날 즈음 그들 중 학계에 남아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개개인마다 사유가 다 다르고 구체적인 것들은 언급할 수 없지만 결과적으로 상황은 그랬다. 한 때 전국적으로 천재소리 듣고 칭송받던 이들도 연구 레벨로 가니 저럴 수 있구나. 그들도 비슷한 고민을 했을테고 결국 학계를 떠났구나하는 생각. 내가 뭐라고 학계에 남아 무언가 기여해보고 싶다는 오만한 생각을 했을까하는 생각.


인더스트리로 오고나서 몇몇 지인들로부터 교수자리 지원해볼 생각 없냐고 연락이 온 적이 있었다. 인서울 괜찮은 학교도 있었고 학과의 니즈, 학교 총장의 니즈가 현재 내 상황과 모두 맞아떨어지는 상황들이었지만 거절하였다. 현재 연봉 반토막, 세토막 나는 것도 문제지만 내 스스로 교수로서 하는 연구활동이 재밌을 것 같지 않았다.


학계를 떠나고 직장인으로 사는 삶도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 일단 경제적으로 훨씬 윤택해졌고, 박사학위자가 80%가 넘는 연구소에 있어서인지 동료에게서 배우는 것들도 많다.


단점은 내 스스로 인생의 큰 목표를 잃었다는 것이다. 직장 생활은 재미있지만, 여기서 임원을 달고 더 높이 올라가고싶은 생각은 별로 없다.


포만한에 가입한 트리거는 자녀 수학을 봐주다가 시작된 것이었지만, 나이 40이 되면서 다시 무언가를 시작하고 싶었고, 그나마 잘할 수 있고 재밌게 할 수 있는게 수학 문제 푸는 것이라 찾아보다가 우연히 가입하게 되었다.


아주 길게보면 은퇴 이후의 삶을 준비한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솔직히 그건 거창한 얘기고 그냥 내가 재밌고 의미있다고 부여할 수 일을 찾고 싶었다. 여기서 찾을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인생은 원래 우연의 연속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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