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분야에서 최고가 된 이들은 자신이 애정을 가진 분야를 열렬히 탐구한 이들이다. 나의 은사님께서는 노벨상을 수상한 이들 중에서 단 한명도 노벨상은 목표로 연구한 이는 없다고 하셨다. 그들은 자신이 애정을 가진 것을 부단히 탐구하다보니 자연스레 명예가 따라온 것이다.
필즈상을 수상한 수학자 히로나카 헤이스케의 수필 '학문의 즐거움'이나 1475편의 논문을 쓴 수학자 에르되시 팔의 생애를 다룬 '우리 수학자는 약간 미친겁니다.' 를 보면 그들은 명성있는 수학자가 되려 하기보단 수학에 대한 탐구 그 자체에 즐거움이 그들의 열렬한 탐구의 동기였음을 보여준다.
아무나 최고가 될 수 없지만 누구나 '무언가에 대한 즐거움'이나 '무언가에 애정'을 가질 수 있다. 학문을 익히는 이들 중에는 '높은 명성을 갖기 위해' 나'많은 부를 쟁취하기 위해'보단 학문이 자신에게 주는 즐거움, 내가 학문에게 느끼는 애정이 계기가 되었고 이 마음을 연속적으로 이어나가는 이들이 더 많으리라 본다.
최상위에 속하거나 돈을 많이 벌지 못한다면 하면 안된다는 주장은 베스트 셀러에 속하지 못한 책과 인기차트에 속하지 못한 곡은 무가치하다고 주장하는 것과 비슷하다. 마치 헤밍웨이, 톨스토이만큼 될 수 있는 자만 글을 써야한다는 것 만큼 잘못된 주장이다. 이런 주장을 하는 이들은 무언가를 쟁취하고자 하는 욕망만 경험해본, 무엇을 바라지 않고 그것에 애정을 갖기 때문에 라는 순수한 마음의 동기로 무언가를 해본 경험이 없는 이들이다.
우리가 무언가를 사랑하고 이를 행동하는데 자격은 필요 없다. 그저 애정을 갖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위와 같은 태도는 천명관 작가의 소설 고령화가족에 막바지에 나온 문장에 감각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나는 언제나 목표가 앞에 있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그 이외의 모든 것은 다 과정이고 임시라고 여겼고 나의 진짜 삶은 언제나 미래에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 결과 나에게 남은 것은 부서진 희망의 흔적뿐이었다.
하지만 나는헤밍웨이처럼 자살을 택하진 않을 것이다. 초라하면 초라한 대로 지질하면 지질한 대로 내게 허용된 삶을 살아갈 것이다. 내게 남겨진 상처를 지우려고 애쓰거나 과거를 잊으려고 노력하지도 않을 것이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겠지만 그것이 곧 나의 삶이고 나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소설, 천명관-고령화 가족 -
누군가 나를 보았을 때, 나의 행위들이 원대해 보이던 소박해 보이던 그저 나아가는 것이 개인의 삶이고 역사이다.
자신이 원대하던 소박하던, 지금 갖고 있는 애정을, 처음 가졌던 애정을 잃지않고 이 마음이 담긴 행동들을 이어나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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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받아주는 건 약간 wwe적 성향이 가미 되어있지 않나 일종의 자학유머로써
@ㅇㅇ(223.39)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blogId=tiktok121212&logNo=223940319692&navType=by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 돈을 위해서도 말고 이기적인 성취를 위해서도 말고, 사람들이 명성이라 부르는 덧없는 것을 위해서도 말고 단지 인간이 갖추어야 할 모든 것을 얻기 위해서
옳다고 생각하는 종교에 인생을 바치는 사람들 중 원하는 것을 얻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어차피 이거 믿나 저거 믿나 못 얻는 건 매한가진데 같잖게 긁는거 좆같네 ㅋㅋ
하
사실 나는 수학이 재밌어서 배우는것도 맞지만 대의를 위해서 배우는거 같기도 함 내가 한 분야를 성숙시켜서 지금의 중요한 난제들을 다 증명해낼 수 있다면 그리고 그 지식들을 다음 세대에게 넘겨줄 수 있다면 참 기쁠거 같거든
명예와 돈. 그것도 당연히 있겠지만, 만약 그것만 있다면 절대 이 길을 걷지 못 하고 중간에 포기할 거 같음. 결국 이 학문에 대한 사랑, 애정, 욕심이 있어야 할 수 있는 거 같다. 노벨상을 원하지 않고 학문을 했다고 하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거짓말 같다. 그러나 그 노벨상을 타야겠다는 마음보단, 학문에 대한 호기심과 사랑이 더 컸다는 건 분명해 보인다.
어차피 모든건 행복을 위한 수단이징 모든 행동의 동기는 본질적으로 자기 자신의 효용의 증대니깐
누가 쓴 글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