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군대에서 증명 프로그램(언어, 공리계, 증명하고자 하는 문장을 입력하면 증명을 찾아주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보겠다는 꿈을 가졌다. 그때는 수리논리라는 과목이 있는지 몰랐기 때문에 우선 수학의 기초를 정립해야겠다고 생각하고는 나 혼자 열심히 그것을 만들려고 노력했다. 그러면서 나는 남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근본적인 것을 추구한다는 우월감에 빠졌다. 하지만 나중에 보니 수리논리는 이미 정교하게 만들어져 있었고 증명 프로그램도 누군가가 연구하고 있었다. 초등학생이 어린이 놀이기구를 타보고는 자기는 무서운 놀이기구도 타봤다고 우쭐해하는 꼴이었다.


  빌런이 생기는 이유는 두 가지인 듯하다. 첫째로, 근본적인 것에 대한 생각은 노력을 적게 들이고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철학, 수학 기초론, 양자역학 등을 소개하는 글을 읽으면 진리, 수학의 불완전함, 세계의 실제 모습 등 심오해 보이는 생각이 샘솟을 것이다. 그 정도 생각은 누구나 한다. 하지만 대부분은 얕은 지식에 기초한 생각이기 때문에 명확하지도 않고 사실도 아니다. 만약 그 주제에 관해 제대로 된 주장을 하고 싶으면 전공 서적 등으로 지식부터 쌓아야 한다.


  둘째로, 주위에 심오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근본적인 것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많겠지만, 대부분은 그것을 말하지 않는다. 오글거리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주로 오글거리지 않을 법한 주제만 이야기한다. 영화, 게임, 맛집 등이 그런 주제이다. 수학도나 수학자끼리는 수학 이야기를 할 수도 있지만 수학 자체에 관한 철학적이고 심오한 대화는 피할 것이다. 사람들이 그런 대화를 피하는 이유를 인지하지 못한다면, 남들은 단순하고 표면적인 것에만 관심을 갖는 반면 자기는 심오한 것에 관심을 갖는다는 착각에 빠질 수 있다.


  근본적인 것에 관심을 갖는 일은 좋지만 그것은 전혀 우쭐해할 일이 아니다. 어차피 그 분야를 제대로 공부하지 않은 사람이 하는 생각은 개똥철학일 가능성이 크다. 그런 개똥철학은 해도 좋고 안 해도 좋다. 그러니까 머릿속에서 심오한 생각이 샘솟는다 해서 자기가 특별하거나 우월하다 생각하지 말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