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병동 철책 너머 ‘정상 세계’의 공기는 현란한 도파민의 잔치로 가득하다. 사람들은 어젯밤 무대를 수놓은 걸그룹의 안무를 복기하고, 경기장의 함성에 심장을 맡기며, 넷플릭스가 선사하는 정교한 서사 속에 자신을 투영한다. 승리를 쟁취하는 게임의 쾌락과 소통의 즐거움. 그것은 인간이 진화의 끝에서 쟁취한 가장 안락하고도 당연한 보상이다.


그러나 이 화려한 낙원을 등지고, 스스로 습기 찬 석조 건물 속 ‘수학과’라는 병동으로 기어 들어오는 자들이 있다. 그들은 눈을 번뜩이며 “수학은 즐거운 유희”라고 속삭인다. 틀렸다. 그것은 미학적 찬사가 아니라, 이미 현실의 색채를 잃어버린 신경계가 내뱉는 마지막 섬망이다. 그들에게 수학은 ‘재미있는 것’이 아니라, 삶의 생생한 즐거움보다 차라리 무미건조한 고통을 택하는 것이 수월해진 중증 감각 마비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이 가련한 환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논리가 아니라 도파민이다. "수학이 재밌어요"라고 말하는 초기 증상자들에게는 즉각적인 처방이 내려져야 한다. 화려한 아이돌의 무대, 박진감 넘치는 스포츠, 밤을 지새우게 하는 게임. 인류가 정제해낸 이 고농축의 즐거움들을 투여하면 대개는 치유된다. 더 강력한 자극 앞에 추상의 유희는 그저 허기진 영혼의 자위행위였음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일차적 진료에도 정신을 못 차린 이들은 마침내 ‘수학과’라는 정신병동에 발을 들인다. 그리고 마주한다. 본인이 믿어왔던 ‘수학’이 거대한 허상이었음을.


병동의 일과는 가혹하다. 정상인이라면 단 1초 만에 수긍할 자명한 사실을 ‘맞다고 우기기 위해’, 자폐적인 환자가 벽에 낙서를 하듯 A4 용지 위에 기괴한 기호들을 줄줄이 늘어놓는다. 한 페이지를 빽빽하게 채워야만 비로소 “1은 1이다”라는 당연한 결론에 도달하는 이 가학적인 의식. 대다수의 중도 입소자들은 여기서 비명을 지르며 도망친다. 그들은 비로소 병원 문을 박차고 나가 넷플릭스를 켜는 ‘정상인’으로 복귀한다.


진정한 비극은 이 충격 요법조차 통하지 않는 ‘만성 질환자’들에게서 완성된다. 일상의 찬란한 행복을 전혀 수용하지 못하고, 오직 흑백의 수식 속에서만 안식을 찾는 자들. 사회는 이들을 치료하기를 포기하고 ‘대학원’이라는 상위 교정 기관에 격리한다.


그곳에서 마침내 ‘교수’라는 최종 진화형에 도달한 자들에게, 국가는 더 이상 그들이 사회적 구실을 할 수 없음을 인정한다. 그리고 ‘월급’이라는 명목의 장애인 수당을 지급하며 그들이 병동 밖으로 나오지 않도록 관리한다.


아아, 이 얼마나 고결한 비극이며, 얼마나 정교한 미친 짓인가. 오늘도 병동의 종소리가 들린다. 스스로를 지성이라 믿는 새로운 광인들이 입소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