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기소개부터 부탁합니다.

수리과학과 박사과정 학생입니다. 곧 졸업해서 비정규직 연구원으로 일할 예정입니다.

– 좀 더 다양한 배경을 말씀해주셔도 됩니다.

한국 나이로 31살입니다. 남자이고, 학부 때부터 계속 수학을 전공했습니다. 과학고 나왔습니다.

– 저희는 가보지 못한 대한민국 영재교육의 산실이네요. 생각해보면, 보통 사람들이 순수 수학을 박사까지 전공한 사람을 만날 일이 있을까요.

제가 만나는 사람의 80%는 순수 수학을 전공한 사람들입니다.

대수기하

– 순수 수학을 하시는데, 구체적인 연구분야는 무엇인가요.

‘대수기하’라는 분야인데, 영어로는 ‘algebraic geometry’라고 합니다.

– (…) 뭐 하는 학문인가요. 간단하게 부탁합니다.

고등학교 때 원의 방정식이라는 걸 다들 배웁니다. ‘원’이라는 기하학적인 대상을 방정식이라는 대수를 이용해서 표현할 수도 있는데 둘 사이의 관계로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는 분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굉장히 어려운 기하(geometry) 문제를 대수적으로(algebraic) 바꿔서 풀 수도 있고, 반대로 대수에서 굉장히 어려운 문제를 기하로 바꿔서 풀기도 합니다.

– 그러면 재미있나요?

(…)

– 많이 망설이는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재미있어서 시작했는데 지금쯤 되니 재미가 있는 건지 그냥 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너무 멀리 왔어요. 루비콘 강을 건넜네요.

– 지금 이 분야를 하기 위해 얼마나 시간을 투자한 건가요.

지금 박사 5년 차입니다. 박사 5년 더하기 석사 2년에 학부도 5년 반을 다녔네요. 대학을 오래 다니고 싶어서 이 좋은 데를 왜 내가 졸업을 해야 할까 하는 생각이었는데 박사를 5년 하게 될 줄 몰랐습니다. 애초에 학부 때는 내가 수학을 계속 전공할지 확신이 없었기 때문에…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미리 졸업을 했겠죠.

– 건너 듣기로 ‘대수기하’라는 분야를 전공 삼으려면 석사 2년 차에 가서야 할 수 있다고 하던데 사실인가요.

제가 다닌 대학원은 석사 1년 차 때 이미 지도교수를 정하기 때문에 분야는 정해지는 셈입니다. 다만, ‘대수기하’라는 영역을 공부하기 위해서는 그 전에 공부해야 할 것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석사 2년 차 정도까지는 일단 수업을 듣고 기초 공부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일과 

– 최근에는 포항에도 갔다왔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일이 있었나요. 

합동연구를 하러 다녀왔습니다. 요즘에는 공동연구를 굉장히 많이 하는데, 서로 다른 사람이면 보는 관점이나 생각하는 방법들이 다릅니다. 또, 가지고 있는 테크닉 같은 것도 다르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합쳐가면서 하나의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작업입니다.

– 물리적으로 어떻게 하는지를 묻는 질문이었습니다.

만나서 보통은 칠판을 앞에 두고 써 내려 갑니다. “아, 박사님 이런 문제가 있는데 해 볼 수 있을 것 같지 않나요?” 이러면 그걸 보면서 생각을 하죠. 이렇게 조금 이렇게 썼다가 지웠다가 이런 페이퍼에 관련된 언급이 있었던 것 같다 하면서 같이 찾아보고. 그런데 보통은 거의 대부분 시간이… 이번에는 특히 여름이라 늘어져서 그런지 거의 30~40분씩 둘이 말도 안 하고 그냥 응시했네요.

–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과학/수학하는 학자들의 연구 방식과 조금 다를 것 같아서 물어봤습니다. 연구실에 가면 플라스크라도 있고 랩 코트도 입고 해야 할 것 같은데 수학자는 그런 것이 없으니까요.

맞습니다. 수학자는 오히려 인문학과 어찌 보면 더 비슷합니다. 책을 읽고 페이퍼를 읽고 그다음에 쓰고. 이것이 거의 연구활동의 대부분입니다.

– 하루를 요약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느지막이 일어나서 연구실 책상에 앉아서 인터넷을 일단 클릭합니다. 아카이브(arXive.org)라는 곳Arxiv.org로 대표되는 이공계의 논문 공유 공간. 이공계 학자들이 본인들의 연구 성과를 저널에 전형적인 논문의 형태로 제출하기 이전에 프리프린트 양식으로 업로드한다. 자신이 하는 연구를 빠르게 알림으로써 학문 전반의 발전 속도 향상에 기여하는 한편 연구자 개개인은 연구 주제를 선점하는 효과를 노릴 수 있다. 대다수 저널과는 다르게 무료로 운영한다.

" style="margin: 0px 0.1em 0px 0.2em; padding: 0.34em; vertical-align: middle; background: rgb(70, 70, 70); relative; z-index: 5; top: -0.15em; box-sizing: border-box; display: inline-block; border: none; border-radius: 0.3em; cursor: pointer; opacity: 0.3; line-height: 0; transition: background-color 0.2s linear 0s, color 0.2s linear 0s; color: rgb(33, 125, 211); outline: none 0px;">에 가는데요. 프리프린트(pre-print; 거의 완성된 논문 형태의 글)들이 올라오는 사이트가 있습니다. 저널에 출판되기 전에 페이퍼를 쓰는데 그 페이퍼를 미리 온라인에 올려서 공개를 하는 거죠. 내가 이런 걸 쓰게 됐다고 침 발라놓는 그런 느낌입니다.

그렇게 한 다음에 다양한 인터넷에 사이트들을 한 바퀴 정도 돌고 공부를 합니다. 어제 실패했던 그 부분에서 다시 또 이렇게 공부하다가 페이퍼 읽을 게 있으면 좀 읽기도 하고요. 공부도 좀 하다가 생각도 하다가 보면 세미나 들어가서 세미나 듣고 방에 와서 인터넷 하다가 공부하고 그렇습니다.

– 뭔가 인터넷 하는 부분이 너무 많은 것 같은데요?

보통 이렇게 책상에 앉아서 항상 페이퍼를 찾아야 하기 때문에 컴퓨터를 켜 놓고 있다가 보면 손이 가더라고요, 컴퓨터에. 세미나를 듣고 발표한 사람과 같이 저녁 식사를 먹으러 간다거나 그런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혼자 앉아서 공부하는 거죠.

– 순수 수학 연구의 어려움이라는 부분이 좀 와 닿지 않을 수가 있을 것 같습니다. 사실, 수학이 그냥 그 자체로 어렵기도 하고 다른 분야에서는 뭘 만들어 본다든지 시뮬레이션을 돌려 본다든지 하는 작업이 있는데 여기는 그런 일이 없네요.

종이에 이렇게 쓰면서 하나하나씩 내 아이디어들을 적다가 ‘아, 오늘도 안 되는구나’ 합니다. 거의 항상 실패해요. 그러니까, 사실 되는 것이 더 신기해요. 예전에 만났던 은퇴하신 일본 수학자가 저에게 ‘열 번 시도해서 한 번을 건지는 거’라고, 본인은 평생 그렇게 연구를 해 왔다고 하셨는데 저는 그 말을 듣고 아, 당신 정도 되는 사람이니까 10개 중에 하나를 건지지 생각했어요. 저는 한 100개 중에 하나 건지면 대박이죠.

연구 환경  

– 그럼 이제 좀 진지한 얘기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한국의 수학 연구 환경을 대략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사실 유명한 한국인 수학자를 말해 봐라 하면 잘 모르기도 하고, 막 수학으로 유명한 나라도 아니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한국에서 수학연구를 하면 어떤가요?

저는 아직 대학원생이고 계속 대학원생으로서 수학을 접했기 때문에 이런 입장에서 이야기하자면, 수학을 잘 하는 나라와 한국의 가장 큰 차이는 두 가지 정도 됩니다. 일단 하나는 대학원생들에게 주어지는 연구 이외에 잡일들이 많다는 겁니다. 행정직원을 충분히 고용하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인데, 그 인원들이 없기 때문에 누군가는 그 일을 해야만 하죠.

– 대학원생은 좋은 노동력이죠.

연구비가 많은 그런 학과들은 비서를 고용해서 어느 정도 행정 업무를 하는데 수학은 그런 식의 연구비가 많지가 않으니까요. 결국, 대학원생에게 더욱 ‘로드’가 걸리게 되는 거죠. 외국의 경우에는 학회를 한다든지 외부에서 방문객이 오면 그 사람들을 어떻게 대접해야 하는가에 관해서 굉장히 훈련이 잘된 행정직원이 항상 있습니다. 적어도 제가 간 모든 기관들에는 그런 분들이 다 커버를 해주시는데 한국은 대학원생들이 하게 되니까요. 그런 것들도 분명 노하우이고, 한 직원이 계속 그렇게 노하우를 쌓아 갈 수 있으면 좋을텐데…

– 나머지 차이점은요? 

그리고 다른 차이점을 보자면, 수학은 아무래도 사람들과 이야기하면서 여러 관점이나 생각하는 법들을 많이 배울 수가 있는데. 아무래도 한국은 좀… (힘들어요). 아직은 하는 사람도 많지 않고 잘하시는 분들도 외국에 비해서는 많지가 않으니까요.

– 두 번째 부분은 여러 분야에 다 해당하는 문제인 것 같은데요? 한국이 국제적인 환경에서 연구하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까요.

수학은 연구에 이르기까지 많은 공부 시간이 필요하고 연구에서도 지도 교수가 학생을 이끌어 주는 비중이 더 큰 것 같습니다. 실질적으로 지도 교수와 함께 끌고 가는 면이 있으니 주변의 이끌어 줄 사람들의 존재가 다른 분야보다 더 중요 할 수가 있는 거죠.

– 연구 환경이 아주 우수하다고 하기는 힘든 것 같은데요, 그러면 지금 이 조건에서 순수 수학 연구는 왜 하는 거예요?

얼마 전에 어떤 국립대에서 일하는 선배랑 이야기하는데 그분이 이런 말을 합니다. 어렸을 때는 수학 하면 이공계 사람들의 로망 같은 것이 있잖아요. 이 세상의 진리를 탐구하고 파헤치는. 그런데 실제로 본인이 연구를 하면서 보니까 그런 큰 것들은 자기는 못 하는 것 같고, 조그마한 문제들 밖에 할 수 없다는 거죠. 그래서 자기는 그냥 이렇게 해서 논문을 쓰면 대학교에서 월급 주니까 수학을 하는 걸로 생각하기로 했다고 하시더라고요.

– 굉장히 실용적인 사상이네요.

많은 경우엔 이게(수학 연구) 직업이니까요. 자연스럽게 드는 생각은 그러면 왜 이런 직업을 국가에서 만들어놓았을까 하는 겁니다. 대부분 세금이고요.

수학의 ‘쓸모’ 

– 사실 사람들이 궁금해할 부분이 바로 여기입니다. 내가 세금을 내는데 국가가 그 세금의 일부로 순수 수학을 지원하겠다고 했을 때, “왜?” 라고 물어볼 수 있잖아요.

참 어려운 문제인데요. 먼저, 국가가 이공계를 지원함으로써 거기에서 파생되는 산업으로 먹고산다면 그 인력들을 트레이닝을 시킬 때 많은 수학이 필요하니까 그렇겠죠. 그 트레이닝을 시킬 때 가령 대학교 1학년 때 미적분학을 들어야 하고, 2학년 때 뭐 선형대수도 듣고, 미분방정식도 듣고, 공업수학 이런 걸 다 들어야 하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제공해 주는 의미로써. 아무래도 첫 번째 의미는 이것 같아요.

– 본인은 잘 가르칠 수 있나요?

저는 잘 가르친다고 하는데, 이게 사실 좋은 연구자와 좋은 강의자는 좀 다릅니다(…)

– 수학이라는 학문의 쓸모가 잘 체감이 안 되기 때문에 그럴까요? 대학에서조차 이제 수학을 왜 따로 가르치고 연구해야 하는지 되묻기도 합니다.

수학은 자연과학과 공학의 기본적인 언어를 제공해 주는 셈이죠. 그러다 보니까 별로 기대하지 않았던 부분에서 굉장히 유용한 일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나중에 250년 후에는 이 연구가 암호로 쓰일 거야” 라고 생각한 것이 아니라 그냥 재미있어서 했던 연구들이 실제 문제에서 쓰이고 했던 것이죠.

100개 중에 하나는 어딘가 응용이 될 텐데 무엇이 그렇게 될지 모르니 100개를 다 키워 보는 겁니다. 또 나머지 99개들도 언젠가는 유용할 수도 있고요. 실제로 요즘 순수 수학 분야에서도 직접적인 응용이 있는 부분 연구들을 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즉, 완전히 세상과 동떨어져 있지는 않아요. 생각만큼 가깝지도 않지만…

– 아까부터 땀을 흘리시는데 더워서 그런지… 유독 이 질문에 땀을 흘리시네요.

굉장히 열악한 곳에서 작업하시네요. 한국과학의 현실이 약간 느껴진달까, 이 온도에서.

– 네, 뭐, 일단 순수 수학을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완벽하게 설득이 되진 않았지만, 일단 그렇다고 합시다.

그렇죠. 제가 그걸 설득시킬 수 있는 사람도 아니고, 저는 이제 막 태어난, 수학자로서 아직 태어난 것이 아니죠. 졸업하면 이제 태어나는 셈입니다. 태아가 인생에 대해서 뭘 알까요.

“3,000원” 

– 그래도 지금까지 이야기를 들어 보니까 수학 연구를 하는 데에 사실 돈이 많이 안 드는 것 같네요.

그렇죠. 일단은 수학 연구비 대부분은 당장 공동연구를 해서 사람을 부르거나 내가 그쪽으로 가는 출장비, 혹은 사람 초청했을 때 드는 비용들 정도입니다. 아니면 미래의 잠재적인 공동연구자들을 초청하고 방문할 수도 있고요.

– 말 그대로 친목 비용… 좀 더 공적인 단어가 뭐 있죠?

교류, 네트워킹이죠. 정보화 시대 21세기에는 지식을 교류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지식들이 만들어지니까요. 여하튼 연구비 대부분이 이런 겁니다. 결국, 비행기 푯값이죠. 사실 이런 비용은 다른 분야들도 다 있는 돈이기는 합니다.

– 그러면 말씀하셨듯이 겹치는 영역을 빼고, 가령 기계공학에서 큰 실험용 기계를 사고 별도의 실험 건물도 짓고 막 하는데 수학과에서는 뭘 하나요?

수학과에서는 일단 연구를 하기 위해서는 책상이 필요하고, 풍부한 종이가 있어야 합니다. 이게 갑자기 계산이 잘 될 수도 있기 때문에. 그리고 잘 나오는 펜. 이런 데 들어가는 비용이 제 생각엔 한 달에 한 3,000원 정도 되지 않을까요. 지식 교류를 위한 활동비를 제외하고. 연구 재료비로는?

– 연구자 한 명당 3,000원. 엄청나네요.

저널을 구독하고 하는 비용이 사실 굉장히 크긴 한데, 이것은 다른 과도 다 나가는 비용이네요. 그리고 사실 A4용지를 기계과에서도 저만큼 쓸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