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의 몽상"은 인문학자가 지은 수학 책이다. 제목만 보아서는 수학에 대한 지은이의 몽상이란 뜻인지, 아니면 엄밀함을 추구하는 수학자들의 몽상을 야유한다는 뜻인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이런 책이 나왔다는 것은 매우 반가운 일이다. 그렇지 않아도 문제 풀이 암기식 "수학 시험 교육" 때문에 "수학에 원수진" 사람들이 너무 많아 안타까웠는데, 수학에 대한 이해와 대중 선동 능력을 겸비한 "운동권"의 이론가가 수학의 아름다움과 필요성을 선전해 준다면 "제도권" 수학자에게 그보다 더 고마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과연 지은이는 수학사와 미적분학 및 집합론에 대한 비교적 정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수학이 시적 상상력과 혁명적인 사유까지 포함하는 자유로운 사고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여러 가지 기발한 장치를 동원하여 실감나게 보여 주고 있다. 캘큘러스 박사와 메피스토가 영혼을 걸고 흥정하는 미적분학의 탄생 설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비유클리드 기하학의 세계를 여행하는 부분, "모든 점에서 미분불가능한 함수"로부터 "괴델의 불완전성의 정리"까지를 꿰뚫는 칼리가리의 예언과 그 魔脈을 잇는 칼리하리의 이야기 등은 정말 너무너무 재미있었다. 특히 趙州 스님을 들먹이며 老莊思想의 견지에서 수학에 훈수를 두는 장면에 이르면 자못 "大家의 풍모"까지 느껴져 가슴이 울렁거릴 지경이었다. 

  학교에서 이렇게만 수학을 가르쳐 준다면 "수학에 원수진" 많은 사람들이 수학을 사랑하게 되진 않을까? 지은이의 말대로 수학에도 "왕도"가 있어서 지저분한 계산은 전문 수학자들에게 맡기고 지체 높으신 분들은 왕도를 따라 수학을 "부릴"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데 알 수 없는 것은 이 책을 읽은 몇몇 일반 사람들이 이렇게 재미있는 설명을 읽고도 여전히 이 책의 내용이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이는 것이었다. 메피스토가 설명하는 "무한소"의 개념까진 잘 이해하다가 (그건 고등학교 때 다 배운 거니까), 그 개념이 어째서 악마적이라는 건지, 입실론-델타 논법은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다는 건지, 괴델의 정리가 어쨌다는 건지, 프렌지오 감옥을 탈출하려던 세 사람은 감옥을 탈출했다는 건지 아닌지 도대체 모르겠다는 것이다. 게다가 어떤 사람은 기분이 나빠진다는 반응마저 보였다. 마치 "나는 너희들이 어렵다는 수학을 이렇게 재미있게 설명해 줄 수 있는 大家이다. 그런데 道를 깨우치지 못한 너희들은 아직도 '끄달림'에서 벗어나지 못해 쩔쩔매고 있구나." 하고 놀리는 것 같다는 불만이다. 일반 대중을 상대로 수학에 대한 글을 쓴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새삼 느끼게 된다. 

  직업수학자로서 아쉬운 부분은 이 책이 "수학자들은 모든 것을 계산하려고 한다"는 오해로부터 시작한다는 것이다. 수학자들은 수학이 자연과학이나 공학을 포함하여 "과학이고 싶어하는" 모든 학문들 여기저기에 매우 중요하게 쓰일 수 있다고 생각하며 모든 사람들이 제발 그 이치를 알아주길 바란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사랑이나 그리움 같은 것도 수치화할 수 있다고 생각하진 않으며, 인간이 추구하는 모든 학문의 영역을 수학이 평정해 주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만일 그렇게 믿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합리성과 근대성으로 대표되는 서구 문화에 대한 지나친 동경과 열등감에 사로잡힌 사람일 것이다. 
  또한 지은이는 "수학의 본질은 자유로움"이며 많은 사람들이 "수학에 원수지게" 되는 것은 쓸데없이 엄밀함에 "끄달리기" 때문이라고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고기를 잡는  그물에 구멍이 있는 것처럼 수학에도 엉성함이 있어야 한다는 비유는 牽强附會일 뿐이다. 수학이 고기 잡는 일도 아닐 뿐 더러 구멍이 많은 그물 위에서는 자유롭게 뛰어 놀기가 더욱 힘들지 않겠는가? 수학에서 엄밀함을 추구하는 것은 흘러 넘치는 자유로운 사고를 아름다운 형태로 담아내는 그릇을 만드는 일이다. 모든 새로운 수학적 시도의 배후엔 언제나 새로운 의미의, 새로운 정도의 엄밀함이 자리잡고 있다. 예를 들어 입실론-델타 논법은 무한소의 개념을 수학에서 지워버린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기초를 제공해 주었다. 그 덕분에 우리는 수학적 엄밀함에 대한 걱정을 덜어버리고 자유롭게 무한소를 가지고 놀 수 있게 된 것이다. 

  무엇보다 이 책에서 아쉬운 점은 고액 과외 선생님을 모셔 와 시험에 나올 요점을 집중적으로 배운 뒤 해당 과목을 떼어버리는 식의 "제도권 입시 공부" 버릇이 은연중 느껴진다는 것이다. 이것에 비하면 인용된 그림과 참고 문헌에 대한 불완전한 언급과 가끔씩 보이는 번역 투의 문장으로 미루어 볼 때 "첨단 혼성모방기법"의 의혹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일부의 지적은 오히려 "386세대 글쓰기의 불완전성의 정리" 쯤으로 이해하고 넘어갈 수도 있는 문제일 것이다.  

<출처 - 강석진의 홈피 축구공 위의 수학자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