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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위대한 수학자 G.H 하디는 63세의 나이로 1940년 '어느 수학자의 변명'이란 책을 냈다.

수학의 아름다움을 미학적으로 역설함과 동시에 수학은 젊은 사람들의 학문임을 주장하는 이 수필의 1장에서, 하디는 이런 글들을 썼다.


'전문적인 수학자가 수학에 대한 글을 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는 것은 우울한 경험이다'

'설명이나 비평, 평론 등은 이류급 인간들이 하는 일이다'

'지금 내가 수학 자체가 아닌 수학에 관련된 이야기를 쓰고 있는 것은, 내 약점에 대한 고백이다'


나는 하디만큼 늙지도 않았고, 위대하기는 커녕 수학자로서 시작조차 하지 못했지만, 적어도 이 의견이 나란 사람에 있어서는 정확하다고 생각한다.

수학 자체에 대해서 얘기하기엔 배운 것이 너무나 부족하고(전적으로 게으른 나의 잘못이지만), 이류의 수학자가 될 수 있다면 기꺼이 이류를 자처할테니.

그렇지만 수학에 발을 담그지도 못한 나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혹은 심심풀이라도 될 수 있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아무리 못해도 스스로의 위안을 얻을 수는 있을테니까.


아버지는 화학(무기재료공학...인거같다)분야로 직업을 가지신 분이고, 두 누나도 이공계로 진로를 정했다. 

당연히 나도 그 영향을 받았고, 그 영향중에 가장 큰 것은 읽었던 책들이라고 생각한다.

집안의 책장에는 수학, 과학과 관련된 책들과 문학책들과 아버지의 논문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논문들은 당연히 건들인적도 없고, 문학책은 '해리 포터'나 '동물 농장', '개미'와 같이 흥미로운 책들도 있었지만 보통은 내 흥미를 끌지 못했다.

그 책들중에 내 흥미를 끌었던 것은 수학과 과학에 관련된 책들이었고, 그 중 기억나는 가장 오래된 책은 '수학 귀신'이다.

아직도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책으로, 지금 이 책은 등이 너덜너덜해져 테이프가 덕지덕지 발려 아직도 책장에 꽂혀있다.

아버지와 누나들은 이때부터 나의 적성과 흥미, 혹은 (개인적으로 좋아하지 않는 표현이지만) 변변치 않은 재능을 발견한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어머니에게는 나는 그냥 컴퓨터 게임을 좋아하고, 첫 받아쓰기에서 형편없는 점수를 받아오거나 

영어 학원에서 첫 단어시험에서 맞춘 단어가 없어 속상해 하는 어린 애였을 뿐이었다.


그 덕분에 나는 학업과는 다소 거리가 먼 유년기를 보냈다. 

중학교 2학년까지 다녔던 학원은 영어 학원뿐이었고, 돈만 내면 받아주다시피한 근처 대학의 영재 교육원에 다니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나의 일상은 TV 시청(주로 OGN에서 하는 스타리그), 일주일에 2시간만 허용된 컴퓨터 게임(주로 스타), 게임을 할 수 없어서 책을 읽거나 친구가 부르면 놀고, 

정말 할게 없고 책도 TV도 질리면 장판의 타일 수를 세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나에게 무언가 대단한 성취를 기대하거나 요구하지 않았고, 아버지도 (기대는 하셨을지도 모르나) 마찬가지였으며, 나도 나 자신에게 큰 성취를 기대한 적은 없었다.

말 그대로 '잘 자라기만 해다오'의 수준이었다.


이런 인식이 바뀌기 시작한 것은 중학교부터였다.

슬슬 중학생이 되었으니까, 너무 놀기만 하지 말고 적어도 시험은 공부를 하는게 어떻겠냐는게 어머니의 생각이었고, 

나도 어차피 게임도 못하는 시간에 타일을 세거나 귀찮게 밖에 나가는 것보다는 낫겠지라는 생각에 시험 공부를 좀 했다.

수학은 쎈, 과학은 O2, 사회는 우공비, 국어는 비상, 대충 이런식으로 문제집을 사서 공부했던거 같다.

중학교 첫 시험을 보면서 중학교 공부도 뭐 대단한건 없구나, 할만 한데란 생각을 했던것 같다.

그리고 이 시험에서 난 전교 2등을 했다.



물론 중학교 시험이 다 그렇듯 공부를 하기만 하면 어느정도 이상의 점수가 보장되다시피한 수준이었고,

어머니도 성적에 놀라워 하셨지만 공부를 강요하거나 성적을 요구하지는 않으셨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내가 '공부'라는 것을 꽤 괜찮게 한다고 느꼈던 첫 순간이었던거 같다.

그리고 아버지께서는 내게 건 기대를 좀 더 키우셨을지도 모르겠다...만 뭐 내 추측일뿐.


쨋든 나는 유년기의 일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꽤 좋은 성적을 유지했고(전교 20등안, 첫 시험이 최고였고 1위는 거의 같은놈이 계속했다)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엘리건트 유니버스' 같은 책들을 읽으면서 다른 잘하는 것도 없는데 이쪽으로 가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굳어졌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이런 교양수학/과학 책들에 대해서 호의를 갖고 있다. '물은 답을 알고 있다' 같이 유사수학인 정도만 아니면 디테일에서 좀 오류나 비약이 있더라도

아무것도 모르는 학생들이 흥미를 가지기엔 저런 책들만큼 좋은게 없다고 생각하니까.


상황이 바뀌기 시작한 것은 중학교 2학년이 끝나고서 였다.

큰누나가 얘를 과학고에 보내는 것은 어떻겠냐는 얘기를 했다고도 하고, 자식 공부에 관심이 많으시던 아버지도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셨는지 과학고 입시를 찾아보시기 시작했다.

(그렇다, 난 이때까지 '특목고'나 '영재고'의 존재를 모르고 있었다)

그 결과 얻은 정보들은 다음과 같다.

1. 현재 과학고 입시에는 올림피아드 실적이 전혀 반영되지 않는다(나의 바로 이전?부터 였던거 같다). 내신만 본다.

2. 또한 출산장려 정책 등의 일환으로 세번째 자녀부터는 비교적 쉬운 전형의 자격이 주어진다.

3. 하지만 진도는 절대 선행 없이 따라갈 수준이 아니다. 3년치를 1년반만에 끝내고 입시를 준비해야 하니까. 특히 수학이 그렇다.

-> 학교 내신은 지금 수준을 유지하고, 수학을 선행학습하기 시작해야한다.

 

그래서 중학교 2학년 겨울방학부터 영어 학원을 접고(아마 고등학교 과정을 끝냈던가 대부분 끝냈던거 같다) 수학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두 학원을 알아봤는데, ㅇ학원은 특목고를 준비하는 애들이 많이 다닌다던가 했던거 같은데, 수업 시간이 주 5일이던가에 수업시간이 상당히 길었던거 같다.

어머니의 기준으로 이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살인적인 스케줄이었고, 따라서 상대적으로 널널하고, 나도 마음에 들어했던 ㅅ학원으로 가기로 정했다.

이 ㅅ학원은 참 특이한점들이 있는데, 

1. 학원의 규모가 참 작다. 

2. 원장이 돈이 참 많고 하고 싶은대로 한다.

3. 수업 시간의 대부분의 자습이다.


각각을 보충설명하자면, 1은 학원의 선생이 (아직까지도) 단 2명이다. 원장과 여선생. 원장은 고등학생들과 중학생들 심화반을 가르쳤고, 여선생은 초등학생/중학생들을 가르친다.

2는 생각할수록 원장이 비범한데, 이 원장이 심심하면 해외여행을 가면서 학원을 쉰다. 뭐 특가로 나오는 호텔하고 항공권을 지르면 싸다는데 그래도 돈이 있어야 가지.

또 저녁으로 종종 참치회를 시켜먹었는데, 마음이 내키면 학생들에게 한조각씩 맛보게 해주었다. 이 때 참치회의 맛을 처음 알았다.

정해진 시간보다 수업이 빨리 끝나면 상아인지 석재인지 쨋든 고급스런 체스세트를 꺼내서 그낭 문제를 가장 많이 푼 사람 둘에게 체스를 두게 해준다던지,

문제를 푸는동안 자신은 뒤에서 낚시 의자를 펴고 아이패드로 앵그리버드를 한다던지... 그런 사람이다.


3은 말 그대로인데, 원장도 그렇고 여선생도 그렇고 기본은 자습이었다.

여선생 시간에는 개념원리 같은 개념서로 나 혼자서 진도를 나갔고, 여선생은 체점만 해주었던가 아예 터치를 안했던가 했던거 같다.

대신 옆에 있던 말 안듣는 놈들을 달래고 혼내면서 설명을 하고 있었는데, 뭐 나에게는 그냥 공부방이었다고 생각하면 되겠다.


원장한테는 중학생 심화반을 들었는데, AIME이나 KMO 같은 경시대회류 문제를 던져주고는 몇시간이고 풀게한다음에,

푼 사람이 있다면 나와서 풀이를 설명하고 없거나 설명 뒤에 원장이 해설을 해주는 식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이때도 KMO수준의 문제는 잘 하지 못했고 나중에 '평면 기하의 아이디어'를 나갈때는 포기하다시피 했지만,

'재미있는 문제'라는 게 뭔지 이때 처음 알게 되었던 것 같다.

중학교 시험공부를 하면서 풀었던 문제들이나, 고등학교 예습을 하면서 풀었던 문제들과는 전혀 다르고, 내신에는 아무런 도움이 안되는 문제들이었지만,

5시간의 수업시간이 결코 길지 않게 느끼게 해주는 문제들이었다.

그래서 참 고마운 학원이기도 하다. 이런 경험이 없었다면 지금쯤에 수학을 하고 있었을지가 의심스럽다.

그렇게 학원에서는 수학을 선행하고 경시대회쪽 문제들을 접하고 있었고,

학교에서는 지역 고등학교 경시대회들을 나가면서 소소한 상들을 받으면서 과고 입시를 준비했다.

자기소개서를 쓰고, 추천서를 받고, 내신 공부를 하고, 시험끝나면 피방에 가고,...

과고 입시는 1. 서류 심사 2. 면접 3. 면접 탈락자는 캠프 4. 최종 순으로 진행되는데,

서류를 통과하고 면접을 보는데 문제가 참 이상했던거로 기억한다.

뭐 중학교때까지 배운 과학적 지식을 이용해서 공장의 오염물질 배출을 감소시키는 법을 생각해봐라였나?

과고 입시가 바뀌는 중이라서 이런 병신같은 질문도 나오던 때인데, 어찌되던 훌륭한 내신 + 세자녀 어드밴티지를 가진 나는 무난히 면접에서 합격했고,

중학교 3학년 겨울방학, 나는 과학고 사전교육을 받게 된다.



사족1. 중학교때 항상 1등을 하던놈은 막바지에 1등을 놓쳤는데, 스마트폰때문에 그랬다고한다. 지금은 연세대에 다니는 모양이다.

사족2. ㅅ학원에서 풀었던 기억에 남는 문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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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의 정사각형은 한변의 길이가 12고, B는 그 중점을 이어 만든 직각삼각형이다.

이 때 오른쪽 전개도를 접은 입체의 부피는?

이 문제의 풀이는 그림 하나와 식 한줄이면 끝난다.


사족3. 중학교를 졸업할때 ㅅ학원 원장이 The Art and Craft of Problem Solving 이란 책을 하드커버로 선물해줬는데, 참 좋고 재밌는 책이다. 개인적으론 PSS보다 좋아한다.

그리고 아직도 원장과는 가끔 만나면서 지낸다. 밥도 얻어먹고.


사족4. 지역 고등학교 경시대회에서 항상 1등을 쓸어가던건 ㅂ군이었는데, 영재고에도 과학고에도 오지 않고 일반고를 갔다.

그 이유는 고등학교때 알게된다.


사족5. 중학교 2학년때와 3학년때 같은 선생이 담임이었다. 이유는 1년을 더다녔던가 하는 애를 이 선생이 3년내내 붙어다니면서 지켜봐주는데 걔랑 같은반이 되면서 얽힌건데,

이 선생님도 아주 재밌다. 지각비로 초코파이를 걷는다던지, 결혼하셨으면서 믹키유천을 대놓고 덕질하신다던지...

쨋든 매우 고마우신 은사님이시다. 아아아아아주 가끔씩 연락한다.

 


사족6. 과학고 입시때 가정형편과 학업 자신감 때문에 쓰기를 주저한 친구가 있었는데, 참 아쉽게 생각한다.

혹시 기회가 있다면 꼭 특목고나 영재고 진학을 시도해보도록 하자. 절대 손해보는 일이 없으니까.

그리고 나 말고도 한명이 더 서류에서 합격했는데(여자였다), 캠프에서도 떨어져서 결국 불합격했다.

이 두명 때문에 이때부터 '탈락자'들에 대해서 고민해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