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글 작성자분은 미국에서 물리 공부하시고현재는 금융쪽에서 일한다고 하심 ㅎㅎ
1994년 가을에 에드워드 위튼이 저희 학과 콜로키움에 연사로 초청되었습니다. 위튼은 이론의 여지가 없는 당대 최고의 물리학자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전공을 갓 정하려고 하던 햇병아리 대학원생이었습니다.
전공세미나와 학술대회의 강연은 기본적인 용어의 소개도 없이 단도직입적으로 해당 분야의 최신 연구결과로 시작하기 때문에 비전문가는 강연의 첫마디부터 못 알아듣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반면에 콜로키움은 보다 다양한 청중을 대상으로 하는 포괄적인 강연입니다. 그래서 전공세미나에는 30명 안팎의 인원이 참석하는데 반해 콜로키움에는 100명 이상이 참석하는 게 드물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콜로키움과 전공세미나가 다른 점은 앞의 5~10분입니다. 어느 콜로키움이든 강연 10분이 지나면 대부분의 비전공자들에게는 외계인의 언어와 다르지 않게 들립니다. 호기심이 많았던 저는 콜로키움을 참 좋아했습니다.
위튼은 바로 전날 전공세미나에서 강연했고, 그날은 콜로키움에서 강연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조금 일찍 강연장에 들어가서 숨기 좋은 뒷좌석에 자리잡았습니다. 200여석의 자리는 금방 채워졌고, 늦게 온 사람들은 계단에 앉기 시작했습니다. 낯선 얼굴들이 많은 걸 보면 다른 학과에서도 여러명이 온 것 같았습니다. 강연 시작 몇분쯤 전에 위튼은 동료 학자들에 둘려 특이한 걸음으로 강당에 들어왔습니다. 43살의 위튼은 사진으로 봤을 때보다 나이 들어 보였고, 좀 더 통통한 모습이었습니다.
학과 콜로키움은 1시간으로 정해졌기에 모든 초청 연사들은 그 시간에 맞춰 강연을 끝내는 것이 예절이었습니다. 질문을 받기 위해 조금 일찍 강연을 끝냈던 분들도 있었습니다. 약속된 시간에 학과장은 위튼을 청중에게 소개했는데, 사실 전혀 불필요한 일이었습니다. 위튼은 매우 빠른 속도로 이야기하면서 분필로 칠판에 여러 수식을 적어 내려갔습니다. 이 세상에 저렇게 빨리 말하는 사람은 처음 본 느낌이었습니다. 똑딱이 글씨로 악필에 가까웠지만 상상하기 힘들만큼 빠른 글씨로 사정없이 방정식들을 적어댔습니다. 내 옆에 앉았던 대학원생은 처음에는 받아 적다가 이내 포기했습니다.
위튼은 가장 초보적인 이야기로 시작해서 한시간 내에 우주의 가장 깊은 곳에 숨어있었던 비밀까지 모두 청중들에게 소개하겠다는 의지에 불타있었습니다. 단단히 각오하고 왔기에 2분쯤 지나서 저는 강연 내용을 따라가는 걸 포기했습니다. 그 대신 비디오카메라처럼 강연장의 모습을 제 머릿속에 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위튼은 계속 방정식을 칠판에 쓰면서 일초도 쉬지 않고 설명을 내뿜었습니다. 설명 도중에 청중들에게 질문들 던지기도 했습니다. 시간이 아까워서인지 던진 질문마다 곧바로 자신이 그 답변을 했습니다. 내용을 쫒아가지 못했기 때문에 그가 던졌던 말들 중 양-밀즈 방정식, 게이지 이론, 모노폴, 불변량, 스핀, 프레임 번들, 리 그룹, 4차원 등등이 머릿속에 맴돌았습니다. 제 주변에 있는 청중들은 모두 완전히 넋 나간 상태로 멍때리고 있었습니다.
한시간이 거의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동안 사정없이 칠판에 적혔던 방정식은 대략 70개쯤 되었습니다. 위튼은 자신이 했던 말들을 정리하면서 특정한 불변량을 칠판에 적으며 도널드슨이라는 이름을 언급했습니다. 그리고 잠시 더 식들을 적은 후에 짧은 방정식 두 개를 다시 소개했습니다. 두 개를 합쳐도 반줄이 안 되는 짧은 방정식들이었습니다. 그리고는 분필을 놓고 청중을 바라보며 겸연쩍은 표정을 지었습니다. 청중들은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냈고 앞줄에 앉아 있던 사람들 중에는 기립박수를 보내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제가 참석한 콜로키움에서 기립박수가 나온 건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저는 그때서야 모든 청중들이 제 주변에서처럼 멍때리고 있었던 게 아니라 그중에는 저 내용을 따라가던 사람도 있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질문시간에는 맨 앞자리에 앉은 타 학과 소속 교수가 알아듣기 힘든 발음으로 쉴새없이 질문했고 위튼은 그 질문에 속사포처럼 답했습니다. 질의응답만 10분이 넘게 진행되었고, 학과장은 더 이상의 질문은 끝나고 개인적으로 하라며 콜로키움 종료를 선언했습니다. 저는 한시간이 열시간처럼 느껴졌기에 해방감에 강당을 나왔습니다. 제 주변에 앉았던 사람들도 저와 같은 기분이었는지 놀라며 웅성거리는 소리가 뒤섞여서 아주 크게 들렸습니다. 앞줄에 앉아있던 7~8명은 위튼에게 달려가서 구름처럼 그를 둘러쌓았습니다. 그들은 경쟁하듯 위튼에게 질문공세를 퍼부었고 저는 강당을 완전히 빠져나왔습니다.
저는 몇 주 후에 그날 위튼이 발표했던 내용이 수학자들 사이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10년쯤 전에 도널드슨이 SU(2)를 사용하는 양-밀즈 이론으로 해결했던 사차원 다양체의 분류 결과를 훨씬 간단하게 U(1)을 사용하여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그날 콜로키움에서 말한 것이었습니다. 위튼의 방법은 양-밀즈 이론으로는 해결이 불가능했던 톰(Thom) 가설 등 많은 문제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를 주는 것이었습니다. 위튼은 전국의 유명대학을 돌아다니며 그 강연을 했고, 그 강연 내용을 접한 수학자들은 밤잠을 설치며 위튼이 강연 마지막에 제시했던 두 방정식을 파고들기 시작했습니다.
수학자들은 1986년 필즈메달 수상자인 도널드슨의 주요 정리들을 새로운 방법으로 재증명하는 등 새로운 결과들을 매일 쏟아냈습니다. 자신의 전공분야를 내던지고 그 문제에 몰두하는 수학자들도 우후죽순 생겨났습니다. 그들은 잠도 못자고 휴식도 못 취해서 건강을 헤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1990년에 물리학자에게 필즈메달을 줬다고 불평하던 다수의 수학자들에게 위튼은 전혀 새로운 것을 들고 나와서 그들의 입을 다물게 한 것은 물론 수학이라는 분야를 쑥대밭으로 만들었습니다. 위튼으로 인해 벌어진 수학의 새로운 혁명은 1994년 10월부터 11월 사이에 이렇게 일어났습니다.
뭔가 신화같네 ㅅㅂㅋㅋㅋ
ㄴ니애미
후에에엥 싸우지말라는 데스웅 ㅠㅠ
위튼 정도 사람을 만나면 어떨가 궁금하긴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