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이들이 20세기 가장 위대한 수학자라고 일컬어지는 그로텐디크 수갤럼이면 모를리가 없는분이지
실제로 수많은 수학자들이 그를 여전히 칭송하고있어.
-에드워드 프렌켈-
현대수학에 있어 그로텐디크의 영향력에 견줄만한것은없다. 20세기의 후반부 50년동안 가장 중요한 수학자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많은 수학자가 주저없이 그로텐디크라고 말할 것이다. 그는 혼자서 현대 대수기하학을 창조했을뿐만 아니라, 수학 전체에 대한 생각하는 방식을 바꾸어놓았다. 랭글랜즈 프로그램의 기하학적 재공식화에서 사용한 함수와 시프에 대한 사전은 그로텐디크의 연구를 특징짓는 심오한 통찰을 보여주는 훌륭한 예다.
ㅡ 데이비드 멈포드 (필즈상 수상자)-
그는 대수기하학의 정원에서 자라난 모듈라이 공간(moduli space)이라는 꽃에 사로잡혀 있다고 회고한적있는데, 이 정원에는 놀라운 사람들이 있다며 대표적으로 날카롭고 뛰어난 베유와 정말로 인간이 아닌 다른 종으로 보이는 그로텐디크를 언급했다.
오늘은 그로텐디크의 생애주기별 모습들을 알아보고자해 ㅎㅎ
그로텐디크의 어린 시절 모습.
그로센딕의 어린 시절은 제2차 세계대전 격동기 속에서 혼란과 궁핍으로 점철되어 있었어
그의 아버지 알렉산더 사샤 샤피로(Alexander Sascha Shapiro)는 러시아 유대인이었고,
그의 어머니 항카 그로텐디크(Hanka Grothendieck)는 루터교 신자로 재능있는 작가였지
양친은 모두 아주 혁명적인 사회주의자였어. 이는 훗날 그로센딕의 좌파적인 정치관에 큰 영향을 준것으로 사료돼.
2차세계대전 무렵 아버지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사망하고 어머니와 함께 유대인 수용소를 진전하고 다녔다고해.
가혹한 환경과 신체적인 고통으로 얼룩진 수용소 생활이었지만 그로센딕은 이것이 수용소가 자신에게 준 가장 큰 선물로 여기며 이런 말을 남겼어.
'고독한 시간은 다른 사람과 전혀 소통하지 않고도 생각을 만들고 개념을 이끌어내는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이때 겪은 경험들은 후의 그의 광기 어린 수학작업과 생애에 큰 영향을 끼쳤어.
1950년대 그로텐디크의 청년시절 모습
1945년 그로텐디크는 바칼로레아(프랑스의 수능)를 마치고 몽펠리에 대학에 입학해
하지만 당시의 몽펠리에는 굉장히 낙후된 환경이었지만 거기서 적분법에 대해 씨름했어.
몽펠리에에서의 시절은 그로텐디크는 이렇게 회상했어.
그곳에 지낸 세 해를 돌이켜보면, 나는 단 한순가도 헛되게 시간을 보내지 않았다.
의식하지는 못했지만 나는 외로움이 뭔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외룸이란, 어떤 선생도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수학을 하는데는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가, 아무도 말을 걸지않고, 나의 갈증을 이해하는 어떤 사람도 만나지 못하는 가운데,
나는 사랑을 '하는'것 처럼 수학을 '하는' 사람, 그런 수학자가 되리라는 것을 느꼇다.
IHES에서 그로센딕이 강연을 하는 모습( 맨 우측은 클로드 슈발레라는 수학자 )
그로텐디크는 그후 파리에서 유망한 수학자 집단과 교류하며 수학 공부를 하게 되었어.
그러나 동료 수학자들의 지식의 양과 습득 속도를 따라잡지 못했고, 다른 수학자들과 협력연구를 하는데에 걸맞지 않는 스타일이었다.
왜냐하면 수학적 개념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모든걸 하나하나 증명해나서 힙겹게 얻어갔어.
그로텐디크는 이에 대해서 회상하기를 남들은 손쉽게 수학을 다루지만 자신은 느릿느릿 굴을 파고 올라가며 산으로 올라간다고 느꼇어.
거기에 덧붙여서 굉장히 유명한 명언을 을 남기지.
“그 집단에서 매우 뛰어났던 사람들은 유능하고 저명한 수학자가 되었다.
그러나 30~35년이 지난 후 나는 그들이 우리 시대 수학에 정말로 심오한 족적을 남기지 못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로텐디크의 이런 말과는 대조적으로 그로텐디크는 어마어마한 업적을 남겻어.
당시 그의 스승이었던 필즈상 수상자 로랑 슈바르츠와 디외도네가 풀지 못했던 문제의 절반을
겨우 몇주만에 해결하고 1년이 채 가지도전에 모든 문제를 해결
리만 로흐 정리에 대한 새로운 해석은 당시 연구세미나를 뒤흔들었어
들리는 이야기로는 아티야나 스메일같은 저명한 수학자도 그와 비교하면 수재로 보일정도였지.
그후 ihes에서 그 유명한 EGA SGA로 불리우는 대수기하의 기념비급의 업적을 남겼어.
그로텐디크의 노년 시절 모습
하지만 1970년 IHES의 재정가운데 일부를 프랑스 국방부가 지원하는것이 문제가 되어
결국 그로텐디크는 연구소를 떠났지. 스스로도 이에 대해 인생의 큰 전환점이라고 밝힐 정도의 사건이었어.
그후 조금씩 수학연구에 등을 돌리고 가족들과도 헤어지며 친구들에게도 적대적인 행동을 취하며
평화,반원자력 환경운동에 참여했어.
은둔 잠적
한시간걸렷노
제다이같노
김치 ㅇㄷ?
ㄴ fucking kimchi
암튼 재밌게보셧으면 개추좀여
존나 병신같은 글이네
그로센딕은 테렌스 타오 수준에서 정리될듯
ㄴ얘 책 구경도 못해본고 같은데
/갈루아 아니 얘는 지가 쓴 글 까엿다고 존나 난리치더니 내로남불 씹오지네 ㅋㅋㅋ
자연인이 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