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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컴퓨터공학(과학)을 전공하는 학부생이다.


동시에 상당한 수학적 성숙도를 가진 수학도이기도 하다.


나의 지능은 월등하여 수학을 전공하지 않음에도 수학도들이 가져야 할 태도에 대해 글을 쓰며 유의미한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것이 가능하다.


수학을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추상화하며 구조를 압축하는 쾌감.


완비순서체부터 논의를 시작하여 적분 기호가 주는 시각적 흥분과 이 적분 기호가 가지는 엄밀하고 긴 해석학적 정의의 의미를 압축하여 뇌 어딘가에 꾸겨넣는 원초적인 쾌락.


이런 쾌락은 초등학생 때 쓰레기통에 발을 넣어 눌러서 최대한 압축하는 그 쾌락과 어느 정도 비슷한 면이 있다.


그러나 훨씬 고차원적이고 쾌락적이다.


또 한 가지 쾌락은 지적 우월감을 느끼는 것이다.


그러나 지적 우월감은 소모적 쾌락이다.


나는 20살 때 대학 수학의 재미를 깨닫고 김홍종 미적분학을 이해도 못하면서 꾸역꾸역 읽기 시작했다.


내가 개어려운 김홍종 미적분학을 이해하고 있다는 착각으로 인해 상당한 쾌락을 느꼈고 그 원동력으로 대학 수학 실력에 대한 기반을 어느 정도 마련하였다.


그러나 지적 우월감을 연료로 사용하기를 반복한 결과 더 이상 지적 우월감을 통해 얻는 동기와 쾌락은 무뎌졌다.


우월한 것이 기본값이 되며 나의 뇌는 우월했을 때 쾌락을 부여하는 것이 아닌 우월하지 못했을 때 고통을 부여하기 시작했다.


수학을 잘하는 것은 분명 우월하다.


그 우월함은 수학이라는 분야에 한정된 우월함이다.


체스를 잘하는 사람이 자신이 남들보다 우월한 이유로 체스 실력을 떠올리지 않는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수학자들은 인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고 매우 존경받아왔다.


따라서 수학도들은 수학을 인류에게 기여하고 존경과 경외를 얻는 수단으로 생각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이다.


수학도들은 그저 지금까지 너무나 많은 혜택을 받고 있었을 뿐이다.


게임을 좋아해서 게임을 매우 많이하는 사람은 프로게이머가 되는 게 아니면 비교적 열등한 인생을 살아간다.


그러나 수학을 좋아해서 수학을 매우 많이하는 사람은 비교적 우월한 인생을 살아간다.


어떤 것을 좋아하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진다는 건 공평하지 못하다.


대부분의 시간을 수학을 공부하는 수학도가 현대 사회의 게임중독자처럼 취급받는 평행세계 P를 생각하자.


게임을 많이하면 칭찬받고 게임을 잘하면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돈을 많이 벌 수 있고 비교적 좋은 배우자를 만날 수 있다.


반대로 수학을 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P에서 게임을 추구할 자들은 진정한 수학 플레이어가 아니다.


P에서도 수학을 추구하는 자들이 진정한 수학 플에이어이다.


AI 특이점이 도래하여 수학자들이 모두 대체될 극단적인 사회가 도래할 가능성이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럴 확률이 매우 적거나 없다고 단정짓는 것은 나약하고 쓰레기 같은 낙관적 사고방식이다.


모든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


체스는 아무런 생산성이 없는 보드게임에 불과하지만 체스를 잘하는 것만으로 인간들의 경외를 얻을 수 있다.


그 이유는 단순히 체스 플레이어들이 많고 엔터테이먼트적 요소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수학도들도 수학 플레이어 수를 증가시키기 위한 노력을 지금부터 해야할 것이다.


최대한 많은 이들이 대학 수학의 원초적 재미를 느낄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특이점이 도래한 시대에 공허한 저차원적 쾌락이 아닌 지구가 멸망하고 우주가 소멸해도 참일 정리들을 이해해가는 우주적 차원의 쾌락을 추구하여 인류의 존재의의를 보존하여야 한다.


수학계를 부흥시키고 수학 유저들을 증가시켜 서로의 동기부여가 되어주며 동반성장을 해야한다.


이것이 특이점이 도래하는 극단적 가정의 미래에서 인류의 가치를 지키는 방법이다.


수학도들은 엔터테이먼트적 관점의 수학 사회가 도래할 수 있도록 부단히 노력해야할 것이다.


이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