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는 나에게 침묵을 물었다.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어디서부터. 무엇을. 왜. 온갖 핑곗거리가 나를 집어삼켰다
그 정도로 물에 잠겨서였을까. 이따금 눈을 떠보니 파도의 끝은
내 발목 만을 찰랑이고 있었다.
수영을 못했던 탓일까. 지레 겁먹은 탓일까.
결국 두 가지 이유 모두 핑계의 연속이었다.
그렇다고 한 걸음 내딛으며 잠겨 들어갈 수는 없다.
그저 본능. 살기 위하여. 혹은 죽지 않기 위하여.
하지만 침묵을 물었던 바다의 대한 나의 입술은 쉴 새없이 소리를 내고 있다.
그것을 깨달았을 때 조차 나의 입술은 다물어지지 않는다. 마치 할 말이 더 있다는 듯이.
발목에서 찰랑였던 파도의 끝은 어느새 내 허리를 간지럽히고 있다.
어이가 없었다.
나아가지도 않았는데 잠기고 있었다.
그렇게 멈출 것만 같았던 입술은 미소를 띄우며 소리를 이어나갔다.
더 천천히. 더 가볍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입술은 색이 변하고 아무 소리도 내지 않게 되었다.
마침내 입술은 다물어졌다.
코 밑까지 물이 차올랐다.
다물었던 입술은 소리를 내려고 발버둥쳤지만,
그 누구에게도 닿지 않았다.
그 때가 되어서야 발을 옮기며 나아갔다.
숨이 쉬어지며, 삼켜졌던 파도를 뱉어냈다.
무릎이 땅에 닿았고 얼마 안되는 것들을 걸러내기 위해
기침했다.
생각이 돌아왔을 때 고개를 돌려 바다를 보았다.
나는 바다에게 침묵을 대답했다.




바다는 나에게 침묵*을 물었다.
*침묵 같은 추상어는 직접적인 상황 묘사가 아닌 한 그 단어만으로는 텍스트를 통해 의미가 잘 전해지지 않아요
얼마 전에 추상어에 관한 얘기가 잠깐 있었는데,
추상어로 표현하느냐, 추상어를 표현하느냐는 수단과 목적이라는 점에서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추상어 자체에서 정서가 드러나는 단어를 사용해서 정서를 극대화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런 경우 추상어를 사용한 표현이 어려운 것을 분명하게 인지하고 있고 충분한 설명을 전후에 배치해서 정서를 극대화시키는 쪽으로 사용하는 것 같아요.

'아기도, 유모차도, 식탁보도, 칠면조도
드레스 차림의 여자도, 옷 가방도, 모자도
긴 머리칼의 소녀와 지팡이를 움켜쥔 노인도…………
차례차례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어
고래는 마치 꿈을 꾸는 듯
그것들이 바다 위로 떠오르는 모습을 바라
보았지
아름답구나…… 더럽게 아름다운 것들을
집어삼켰어'


*인간은 5감을 통해서 세계를 인지하고
언어 소통은 모든 참여자들이 규칙을 이해하고 따르느냐에 성공이 달려있는데
(화용론적 차원에서)
결국 5감이라는 공통으로 공유하는 인지를 통하지 않으면 언어를 매개로 한 정서적인 소통은 힘들어져요.
(그런 이유로 추상어를 5감으로 형용하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기도 하고요.)
(더 나아가서 시각을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에게는 파랗다, 노랗다는 표현은 의미가 없죠. etc..)
'단어에 의미를 부여하더라도 의미론적 규칙이 없으면 소통은 불가능할 것이다.'
-소통에서의 모호함은 재미있는 오해를 낳기도 하지만 이런 경우, 시에서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무無에요. 문장을 관통하는 공통된 인지가 없으므로, 타자에게 닿지 않으니까요.
(의미론적 차원에서)

시/글은 창작물이므로.
그 특성을 설명하는 글을 옮겨보겠습니다.

'필자들이 가장 범하기 쉬운 착각 중 하나가 필자의 생각이 문장에 그대로 녹아 있고, 그것을 독자가 그대로 이해해줄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필자의 생각 ≠ 필자의 문장≠ 독자의 이해

위의 박스를 보라, 필자의 생각과 문장, 그리고 독자의 이해가 항상일치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세 요소가 딱 들어맞을 때도 있겠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을 경우도 많다. 가급적 이런 세 요소를 맞추면 좋겠지만 필자와 독자가 같지 않기에 이 또한 쉽지가 않다. 그래서 필자와 독자가 모두 만족하는 좋은 글을 쓴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필자의 생각 ≠ 필자의 문장≠ 독자의 이해

좋은 글을 잘 쓰고 싶다면 이 세 요소간에 발생할 수 있는 차이를 최소화해야 한다. 그러려면 필자는 냉철한 시각에서 글을 분석할 줄 알아야 한다. 내가 쓴 문장이 나의 생각과 정말 일치하는가?
독자가 내가 쓴 글을 읽으면서 내 의도를 알아챌까?
독자들이 과연 나의생각을 그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일까? 이런 질문을 던지면서 내가 문장을 읽는 것이 아니라 독자가 문장을 읽는 것처럼 역지사지의 입장이 되어보는  것이다.
“내가 쓴 문장을 독자는 과연 나의 생각처럼 읽어줄까?"

현대 언어학자들 중에 상당수는 텍스트의 의미가 필자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독자에게 있다고 본다.'


이어서.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1 어디서부터. 무엇을. 왜.*2 온갖 핑곗거리가 나를 집어삼켰다*3
*1
[필자의 생각 ≠ 필자의 문장≠ 독자의 이해]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라는 문장이 실제로 그러한 정서를 충분히 담고 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정서를 담고 있는 문장은 그 자체로 정당성을 지녀요.
(서정시의 사전적인 정의가-시인 자신의 주관적인 정서나 감동을 높이 노래하는 식으로 표현하는 시이므로)
정서의 의미를 사전적으로 기술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정서가 문장에서 느껴지도록 만드는 것.
이 경우에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를 통해서 나타내고자 하신 정서가 정확히 무엇이었는지부터 접근하시고 근원에서부터 다시 문장을 조율, 조형하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2 '어디서부터. 무엇을. 왜.'는
*3 '온갖 핑곗거리가 나를 집어삼켰다'와 의미가 겹쳐요. 심화해서 드러낼 게 아니라면 단순한 중복이기 때문에 고치거나, 삭제하는 게 좋아요.


그 정도로 물에 잠겨서였을까.* 이따금 눈을 떠보니 파도의 끝은
내 발목 만을 찰랑이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위에서 이미 설명한 장면을 별다른 심화나 변형 없이 되풀이하므로 결국 독자가 읽을 때는 건너뛰게 됩니다.

수영을 못했던 탓일까. 지레 겁먹은 탓일까.
결국 두 가지 이유 모두 핑계의 연속이었다.
*제가 조금 개인적으로 지양하려고 하는. 기성 시인들의 시에서도 가끔 드러나는 부분인데, 읽으면서
붕 뜬다, 망했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으면
결국 시인 본인이 시에서 직접 자신의 시를 자평하는 경우가 많아요.
'이 시는 왜 망한걸까'
'이런 것들은 사소하다' 등
자평은 말이 아닌 행동으로 옮기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시에서 존재하는 자평이 창작 과정의 부산물처럼 느껴지기도 하구요. 과정의 부산물이 결과물에 침입할 이유를 아직 잘 모르겠어요.
여기에서도 '핑계의 연속'이라는 문구를 통해 이전 문장의 본질이 드러나는데, 이 또한 자평인 동시에 다시 핑계를 말하는 중복이니 쳐내도 의미에 변화가 생기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한 걸음 내딛으며 잠겨 들어갈 수는 없다.*
*독자가 이입할 수 있는 시적 상황이 없어요.
단지 추정될 뿐인데- 파도로 암시되는 어떤 한계 상황(야스퍼스)을 드러내는
결국 추정일 뿐이고 구체적 정황과 정서가 주어지지 않았으므로 독자는 텍스트의 껍질에서 표류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저 본능. 살기 위하여. 혹은 죽지 않기 위하여. *
*무엇을 드러내고, 무엇을 감출 것인가.
본능>>생존 본능을
살기 위하여. 혹은 죽지 않기 위하여
로 표현하기에는 아까도 말했듯이
정서가 드러나지 않는 사전적 인용에 불과합니다.
*시인이 모든 것에 이름을 붙여야 한다는 주장에는
적어도 시는 언어로 드러나지 않는 것
언어로 표현될 수 없는 것
언어 아래의 것을 말하려는 확고한 의지와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점에서 부분적으로 동감해요.
정서, 정동, 누미노제. affection. 성현의 체험. 등등등


하지만 침묵을 물었던*1 바다의*2 대한 나의 입술은 쉴 새없이 소리를 내고 있다.*3
그것을 깨달았을 때 조차*4 나의 입술은 다물어지지 않는다.*5 마치 할 말이 더 있다는 듯이.*6
*1~6
위와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는 문장들로 별다른 첨언을 하지 않겠습니다.

발목에서 찰랑였던 파도의 끝은 어느새 내 허리를 간지럽히고 있다.
어이가 없었다.
나아가지도 않았는데 잠기고 있었다.*1
그렇게 멈출 것만 같았던 입술은 미소를 띄우며 소리를 이어나갔다.*2
*1 *2
서술 시점이 변하지 않았으므로
시제는 통일하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더 천천히. 더 가볍게.*1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2
입술은 색이 변하고 아무 소리도 내지 않게 되었다.*3
마침내 입술은 다물어졌다.*1
코 밑까지 물이 차올랐다.*2
다물었던 입술은 소리를 내려고 발버둥쳤지만, *3
*123 *123
*1~6과 동일

그 누구에게도 닿지 않았다.
얘는 닿지 않았다는 단절 정서가 담겨서 읽혀요.

그 때가 되어서야 발을 옮기며 나아갔다.
*1
숨이 쉬어지며, 삼켜졌던 파도를 뱉어냈다.
무릎이 땅에 닿았고 얼마 안되는 것들을 걸러내기 위해
기침했다.
생각이 돌아왔을 때 고개를 돌려 바다를 보았다.*2
나는 바다에게 침묵을 대답했다*3
*123
*1~6과 동일

미흡하게나마 장황한 말주변을 정리해 말씀 드리자면,  4개 정도가 있을 것 같아요.

1. 의미가 무의미하게 중복되는 문장들.-삭제하거나 수정하시는 게 좋아요
2. 추상적인 문장들- 인간이 세계를 인지하는 공통적인 규칙으로서 5감의 활용을 고려해보세요.
3. 독자가 이입하고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시적 정황이 부존재함.-정서적으로 호응되는 정황들을 만들어보세요. 정서적인 흐름을 이어나가는 것도 나름대로 고심할 만한 가치가 있어요. 깊이의 문제도 있고. 선형적이던 비선형적이던 좋아요.
4. 정서의 사전적 기술.
개인적인 특수성이 없으므로. 사전적 정의 자체는 직접 느끼셨을 정서의 실제와는 거리가 있을 수 있어요.
-표현하고자 하는 정서를 드러내는 개인적인 문장들을 좀 더 숙고해보세요.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

한계 상황의 경험을 옮기고자 하신 점에서
강렬한 시적 열망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런 열망에서 비롯된 동기가 저에게 있어 확고했던 기억을 미루어 보면,
제가 감히 말씀드린 사견의 수준을 한참 벗어난 좋은 글을 쓰시고 계실 거라고 믿고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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