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어떤 인간인가에 대해 자주 생각하는 사람이다. 나는 내가 어떤 인간인가를 알기 위해 내 이름을 부르면 대답하는 사람, 그러나 그것이 내 이름인 것이 이상하여 자꾸만 당신의 이름을 불러보는 사람이다.
나는 당신이 어떤 인간인가에 대해서도 자주 생각하는 사람이다. 저 사람은 냉소적인가 그렇지 않은가, 저 사람은 허영심이 많은가 그렇지 않은가. 저 사람은 냉소적이고 허영심도 많지만 어쨌든 나를 좋아한단 말인가 아니란 말인가. 나는 '알기' 전에는 사랑할 수 없는 사람, 하나 가끔은 알 수 없는 쓰다듬에 숨죽이는 사람이다.
나는 말을 줍고 다니는 사람, 나는 나의 수집가, 나는 나를 찌푸린 눈으로 보는 나에게 가장 버르장머리없는 사람이다. 그리하여 나는 내가 어떤 인간인가를 말해주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느라 호프집에서 오줌보를 붙든 채 상체를 기울이는 사람이다. 나는 스스로 조금은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그래서 내 앞사람이나 옆사람도 스스로를 특별하다고 생각할지 모른다는 사실에 불쾌해지는 사람이다.
어쩌면 '나는 하루에 한가지 일밖에 못하는 사람이다'라는 식으로도 나를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만일 오늘 나의 가장 큰 일과가 운동화를 빠는 일이라면 나는 정말 그날 운동화만 빠는 사람이다. 나는 게으른 사람이지만 앉아서도 누워서도 온종일 '오늘 운동화를 빨아야 되는데....'를 생각하는 점에서 부지런한 사람이다. 나는 지식을 자랑하는 사람을 싫어하지만 누군가 내 방에 와 '책이 많으시네요'라고 한마디 해주면 기뻐하는 사람이다. 나는 농담을 좋아하지만 재치있는 사람을 보면 적의를 품는 사람. 나는 때론 돈 만원 때문에 우울해지는 사람이며, 현금지급기 앞에서 항상 뒷사람을 의식하는 사람이다.
나는 낯선 이들을 웃기고 난 뒤 안도하는 사람. 나는 나의 편견을 아끼는 사람. 나는 그 편견을 얻기까지 달려갔다 다치고 온 길을 버릴 수 없는 사람이다. 나는 '그것은 수난자들의 질문입니다'라는 알료사의 말에 밑줄 긋는 사람. 나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 나는 내가 정말 아무것도 아닐까봐 무릎이 떨리는 사람이다.
나는 내가 무서워하는 것, 깔보는 것, 묻는 것이다. 나는 내가 눈을 크게 뜨고 보는 것, 곁눈질 하는 것, 눈감아주는 것이다. 나는 괜찮다고 말하는 사람, 미안하다고 말하는 사람, 감사하다고 말하는 사람이다. 혈액형 혹은 별자리에 대해, 우리가 무수히 침을 발라가며 넘겼던 해설들에 대해서도 나는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아직 잔뜩 남겨진 자이다.
나는 이것저것을 긁어모으지만 당신은 언제나 충분하지 않다고 말한다. 나는 처음부터 다시 말한다. 그리하여 이것은 관심이 없는 이성의 고백처럼 언제나 조금씩 지루해진다.
나는 내가 어떤 인간인가에 대해 자주 질문하는 사람이다. 나는 내가 어떤 인간인가 대답하기 위해 내 이름을 부르면 고개 돌리는 사람, 그러나 그것이 내 이름인 것이 이상하여 자꾸만 당신의 대답을 기다리는 사람이다.
나는 당신이 어떤 인간인가에 대해서도 자주 질문하는 사람이다. 저 사람은 유머감각이 있는가 그렇지 않은가. 저 사람은 속물적인가 그렇지 않은가. 저 사람은 유머감각이 있고 속물적이지만 어쨌든 나를 좋아한단 말인가 아니란 말인가. 나는 '묻기' 전에는 사랑할 수 없는 사람. 하나 가끔은 당신이 내 이름을 부를 때 가슴이 철렁이는 사람이다.
나는 나의 첫사랑. 나는 내가 읽지 않은 필독도서, 나는 나의 죄인 적 없으나 벌이 된 사람이다. 그리하여 나는 내가 어떤 인간인가를 설명하기 위해 인터넷 대화창 앞에서 오줌보를 붙든 채 줄담배를 피우는 사람이다. 나는 당신에게 잘 보이고 싶은 사람.그러나 내가 가장 잘 보이고 싶은 사람은 결국 나라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다.
어쩌면 '나는 사려깊은 사람'이라는 식으로도 나를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나는 따뜻한 사람이지만, 당신보다 당신의 절망을 경청하고 있는 나의 예의바름을 더 사랑하고 있다는 점에서 무례한 사람이다. 나는 오만한 사람을 미워하지만 겸손한 사람은 의심하는 사람이다. 나는 모두가 좋아하는 그림 앞에서 내가 그동안 그것들을 '그다지' 좋아한 것은 아니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나는 자신에 대해서는 '당신들이 모르는 내가 있다'고 생각하면서, 타인에 대해서는 언제나 '다른 사람들은 다 모르지만 나는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나는 동의하지 않아도 끄덕이는 사람, 나는 불안한 수다쟁이, 나는 나의 이야기, 나는 당신이 생각하는 사람, 나는 나의 각주들이다.
하여, 스스로를 책(責)하는 것이 나를 잘 아는 것처럼 생각되던 때가 있엇다. 하나의 자부, 하나의 자만. 나는 당신에게 '진짜'인 것 같았고, 내가 그렇게 말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것이 뿌듯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그것은 언제나 잘난 척보다 나빴다.
그날도 그랬던가? 그날도 나는 신중하게 옷을 고르는 여자처럼 당신 앞에서 말을 고르고 있었던가? 내가 하루에 한가지의 일밖에 못하는 사람이 맞다면, 아마 그나롣 나는 온종일 그 일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음이 틀림없다. 그 일이 비록 써비스쎈터에 휴대폰 수리를 맡기거나 칫솔통에 낀 물이끼를 닦는 일이었다손 치더라도 그것은 그날 내게 가장 중요한 일이었을 것이다.
*
(중략)
그리하여, 한번 더, 그리하여 여전히 -
나는 내가 어떤 인간인가에 대해 자주 상상한다. 나는 나에게서 당신만큼 멀리 떨어져 있으니 내가 아무리 나라고 해도 나를 상상해야만 하는 사람이다. 나는 내가 상상하는 사람, 그러나 그것이 내 모습인 것이 이상하여 자꾸만 당신의 상상을 빌려오는 사람이다.
나는 당신이 어떤 인간인가에 대해서도 자주 상상한다. 저 사람은 열등감이 많은가 그렇지 않은가, 저 사람은 달변가인가 그렇지 않은가. 저 사람은 열등감도 많고 달변가이지만 어쨌든 나를 좋아한단 말인가 아니란 말인가. 나는 '믿기' 전에는 사랑할 수 없는 사람, 하나 가끔은 그 무엇과도 상관없이 당신의 이름을 불러보는 사람이다.
나는 긴 주소지, 나는 제목만 따라 부르는 팝송, 나는 사진처럼 언제나 조금씩 잘린 모습을 하고 있는 사람이다. 나는 내가 무엇을 말하고 싶어했는가보다, 당신이 어떻게 받아들일것인가에 대해 더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는 사람이다. 나는 교양있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하는 사람, 그러나 무엇에나 쉽게 감탄하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지 않은 사람이다. 나는 자신에게 솔직한 사람들을 미워하는 사람, 나는 뻔한 사람, 그러나 당신이 뻔하다는 사실에 불쾌해지는 사람이다.
나는 이것저것을 긁어모으지만 당신은 언제나 충분치 않다고 말한다. 나는 처음부터 다시 말한다. 그리하여 이것은 관심이 없는 이성의 고백처럼 언제나 조금씩 지루해진다.
나는 기다리기만 하며 살고 싷지 않았던 사람, 나는 변명만 하고 살고 싶지도 않았던 사람, 나는 내가 경멸하는 사람에게 고맙다고 말했던 사람, 나는 아르바이트하느라 쩔쩔매는 시간에 악기를 배워보고 싶었던 사람, 나는 당신의 고통을 소문낸 사람, 나는 어쩌면 나도 모르게 누군가를 죽였을지도 모르는 사람, 나는 전동칫솔과 에어브라를 갖고 싶어했던 사람, 나는 오래전 한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었던 사람, 나는 여전히 전동칫솔이 없는 사람, 나는 여전히 기다리는 사람, 나는 세금을 받으러 온 주인의 기척이 들리면 집에 없는 척 하는 사람, 나는 점점 여기 없는 사람인 척하는 사람, 나는 여기 없는 척 하느라 당신이 불러도 대답하지 못했던 사람, 그러나 그때 사실 당신 근처까지 갔던 사람.... 하여 나는 이 많은 말들 속에서도 당신이 끝끝내 나를 찾아내지 못할 것이라는 걸 알고 있는 사람이다.
나는 이해받고 싶은 사람, 그러나 당신의 맨얼굴을 보고는 뒷걸음치는 사람이다. 나는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 그러나 그 사랑이 '나는'으로 시작되는 사람이 하고 있는 사랑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다. 나는 '그래도 나는'이라고 말한 뒤 주저앉는 사람, 나는 한번 더 '나는'이라고 말한 뒤 주저앉는 사람, 그러나 나는 멈출 수 없는 사람, 그리하여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자주 생각하는 사람이다'라고 처음부터 다시 말하는 사람이다. 하여, 우리는 흐르는 물에 손을 베이지 않고도 칼을 씻는 방법을 알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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