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초세대주의->럭크만식 세대주의->현재의 해석으로 바뀌었는데
그 이유는 당연하게도 기존에 해석하던 세대주의에 문제점을 해결하고 생각을 바꿀만한 성경적이고 합리적인 해석을 찾았기 때문이다.
(행위구원으로 해석해서 교회시대에 적용할 수 없던 일반서신 구절들의 뜻이 행위구원이 아니였음)
우선 갈라디아서 2장을 푼 뒤 야고보서1장을 풀어보겠다.
갈2:7 오히려 반대로 베드로가 할례자를 위한 복음을 맡은 것 같이 내가 무할례자를 위한 복음을 맡은 것을 그들이 보았나니
갈2:9 또 기둥같이 여겨지던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은 내게 주신 은혜를 깨닫고 나와 바나바에게 오른손을 내밀어 교제를 청하였으니 이것은 우리는 이교도들에게로 가고 그들은 할례자들에게로 가고자 함이라.
여기서 야고보,베드로,요한은 유대인들을 위한 복음을 맡았고 바울과 바나바는 이방인들을 위한 복음을 맡았다.
오해하면 안되는 것은 이들이 사역할 대상의 역할을 분담한 것이지 [행위구원]과 [은혜복음]을 동시해 전하는 것이 아니다.
이 시기는 이제 막 복음을 전하던 시기였고 평생을 율법아래에 있던 할례자들에게 이러한 과도기는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이다.
유대인은 율법을 지켜왔었기 때문에 오히려 믿음의 행위를 강조하는게 받아들이기 쉬웠을 것이고
이러한 이유로 야고보서 같이 [믿음의 행위를 강조]한 교리로 은혜복음을 전한 것이며 이것을 할례자들을 위한 복음이라 표현 했다고 본다.
행15:28 [성령님]과 우리는 이 필요한 것들 외에 다른 큰 짐을 너희에게 지우지 아니하는 것을 좋게 여겼나니
행15:29 곧 우상들에게 바친 음식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너희가 멀리할지니라. 너희가 이것들을 스스로 삼가면 잘하리로다. 평안할지어다, 하였더라.
행15:31 무리가 그것을 읽고 위안의 말로 인하여 기뻐하더라.
반대로 이방인은 걸림돌이 없기 때문에 바울서신과 같이 믿음을 강조한 은혜복음을 전했고 쉽게 받아들인 후 기뻐한 것이다.
이렇게 할례자를 위한 복음과 무할례자를 위한 복음은 행위구원과 은혜복음이 아니라 구약과 신약의 과도기에 대상의 특성을 고려한 [역할 분담의 표현]이었다.
상식적으로 그리스도의 대속을 알게된 사도들이 행위구원을 전할리 없고 그렇다면 더더욱 [일반서신의 교리]가 믿음의 행위를 강조한 것일 뿐 행위구원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결론이 나온다.
놀라운 것은 그들이 역할 분담을 함으로써 바울서신은 믿음,일반서신은 믿음의 행위로 균형을 잘 이루고 있으며
이것으로 과도기를 사용하신 하나님의 섭리를 볼 수있다
[갈2:1,9 해석의 정리]
사도들은 과도기때 민족의 특성을 고려해 역할을 분담했고 할례자들에게 환란교리가 아닌 믿음의 행위를 강조한 은혜복음을 전했다.
하나님께선 할례자들에게 구약에서 신약으로 넘어가는 유예기간을 주셨고 그 과도기를 사용하셔서 믿음과 행위를 강조한 일반서신들이 균형을 이루게끔 하나님의 섭리가 작동했다.
이어서 야고보서 1:1절을 풀어보겠음
약1:1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는 널리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에게 인사하노라.
여기서 말하는 열두 지파의 정체는 다음과 같다.
행2:14 ¶ 그러나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함께 서서 소리를 높여 그들에게 이르되, 유대 사람들과 예루살렘에 거하는 모든 사람들아, 이것을 너희에게 알려 주리니 너희는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성령께서 오순절에 강림하신 후 사람들이 다른 언어를 말하게되었고 행2:5에 예루살렘에 거하던 유대인들이 듣고 깜짝놀라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의심하니 베드로와 열한사도가 그리스도의 대속과 부활을 선포한 것이다.
행2:37 ¶ 이제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찔려 베드로와 나머지 사도들에게 이르되, 사람들아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까? 하거늘
행2:38 이에 베드로가 그들에게 이르되, 회개하고 너희 각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아 죄들의 사면을 얻으라. 그리하면 너희가 [성령님]을 선물로 받으리니
행2:41 ¶ 그때에 그의 말을 기쁘게 받아들인 자들이 침례를 받으매 바로 그 날에 삼천 혼 가량이 그들에게 더해지니라.
사도들이 그리스도를 선포한 후 그들이 마음이 찔려 침례를 받아 삼천혼이 성령님을 받았고 이때 구원받은 유대인은
행8:1 사울이 그의 죽음에 동의하더라. 그때에 예루살렘에 있던 교회에 대한 큰 핍박이 있어서 사도들 외에는 그들이 다 유대와 사마리아의 지역들로 두루 널리 흩어지니라.
스데반이 순교한 후 사도들 외에 유대인과 이방인은 널리 흩어졌으며
행26:7 우리 열두 지파는 밤낮으로 끊임없이 [하나님]을 섬기며 이 소망에 이르기를 바라는데, 아그립바 왕이여, 이 소망으로 인해 내가 유대인들에게 고소를 당하였나이다.
흩어진 이 열두지파는 바울과 부활을 소망하며 밤낮으로 하나님을 섬겼다.
약1:2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에 빠질 때에 그것을 다 기쁨으로 여기라.
약2:1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을 가지고서 사람들의 외모를 중시하지 말라.
1절에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는 2절에서 [내 형제들]인 것을 알 수 있고 2:1절에서도 [내 형제들]이라 부르고 있다.
야고보서1:1은 그들을 열두지파라고 불렀지만 그들 또한 그리스도안에서 하나의 교회였던 것이다.
벧전1:1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와 갈라디아와 갑바도기아와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두루 흩어진 나그네들
마찬가지로 벧1:1절 또한 스데반때 흩어진 이방인 형제들에 편지하고 있으며
약1:1 서신의 대상인 열두지파는 벧1:1과 같이 그리스도인으로써 교회를 말하는 것임을 정확히 알 수 있다.
야고보서는 서신작성 당시 신약 아래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믿고 [거듭난 유대인]에게 전달 된 서신이며
서신 그 어디에도 야곱의 고난의 때에 있는 열두지파에게 전달한다는 말은 없다.
[약1:1 해석의 정리]
흩어진 열두 지파는 스데반때 이방인과 흩어진 구원받은 그리스도인 형제들이므로 야고보서의 1차 수신자가 당시 그리스도인 이였듯이 환란성도의 환란교리로만 봐야할 이유가 없으며 오히려 교회가 야고보서의 수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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