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생각할때 바이블 빌리버라면 일반서신서를 교훈으로만이 아닌 우리 신앙의 교리로써 확립하여 적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근대의 세대주의 해석은 여럿으로 나뉘어있고 그들중 대다수는 히,약,요일 등을 교리로 인정하지 않는데 이는 구절을 오해하여 생긴 문제이다.
1.교회시대 부르심을 받은 제자들은 신약의 복음을 전했고 수신자가 히브리 사람이건 이방인이건 무늬만 다를 뿐 그리스도안에서 교회였다.
2.일반서신에서 몇몇 구절들을 구원 탈락, 구원 취소, 행위 구원 근거 구절로 오해해 우리의 교리가 아니라고 가르쳤지만 이는 바른 해석이 아니며 당시 서신의 목적은 믿음으로 의롭다 인정받은 그리스도인이 그 자리에 머물 것이 아니라 믿음의 행위로 겉사람 또한 의롭다 인정받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었다.
이런 해석으로 돌이키기 힘들다고 보는 몇가지 이유는 성경 권위자와 자신의 해석이 틀리지 않았을 거라는 안일한 믿음, 말씀을 가벼이 여겨 엄중하게 연구하지 않는 소홀함, 주변에 같은 해석을 하는 지체와의 관계 등등 많은 이유들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나도 사람이기에 주변 형제들과의 마찰이 생길까 눈치를 봤었고 이미 모든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있었으므로 엄중하게 여긴다고 말했었지만 "현재 고수하는 나와 우리의 해석이 하나님의 뜻과 다르진 않을까?" 라는 생각에 미칠정도로 엄중히 돌아보진 않았었다.
말씀으로 확정받은 교회시대 오직 믿음 구원은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히,약,요일 등 구절 일부를 떼어내 보는 해석은 틀렸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만약 틀렸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곡해하여 잘못 전한 것이라는 두려움이 생겼다.
아직 부족하지만 그런 근심으로 지금의 해석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혹여나 내 글을 읽어본 형제들이 본인의 생각, 해석을 사람의 권위와 주류의 시선에 굴복하지 않고 엄중히 판단해볼 용기를 가진다면 자기 자신을 못 박을 수 있는 용기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지혜에 박수를 보낸다.
잠9:10 {주}를 두려워하는 것이 지혜의 시작이요, 거룩한 것들을 아는 것이 명철이니
잠17:10 지혜로운 자를 한 번 책망하는 것이 어리석은 자를 백 번 채찍질하는 것보다 더 깊이 박히느니라.
잠16:23 지혜로운 자의 마음은 그의 입을 가르치며 그의 입술에 학식을 더하느니라.
혹시나 아래 글이 도움이 될까하여 가져와 봤으니 읽어보고 곰곰히 생각해보길 바란다.
전통적으로는 "이들 히브리인(히브리서 기록 대상자)들은 성령님과 더불어 구원의 문턱까지 갔었으나 실제로 구원받기 전에 뒤로 물러나버린 입으로만 믿는다고 고백하는 자들" 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래 전부터 이 견해가 잘못되었다고 확신해 왔습니다.
왜냐하면 이들에 대한 묘사가 이들이 진실로 거듭난 사람들이었음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들이 전에 맺은 열매들은 이들이 참된 신자임을 증언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서신에 나오는 복들에 해당되는 부분은 우리 자신에게 적용하고 심판에 대한 부분은(히브리서6장과 10장) 애꿎은 히브리인들에게 적용하는 태도는 구약에 나오는 이스라엘의 미래의 영광과 회복에 관한 예언들은 교회에 적용하고 심판과 저주는 이스라엘에 적용하는 것만큼이나 일관성이 없다고 하겠습니다.
-히브리서 연구 책 내용중 일부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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