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적으로 요한일서는 앞뒤 문맥상 거듭나면 돌이킬 수 없는 [신약 교회시대를 전제]로 말씀하는 중이기에 행위구원 근거 구절이 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당시 은혜의 복음을 믿고 전하던 요한이 다른 복음을 전했을리 만무함)


신약 교회시대 교리,교훈임을 증거하는 몇가지 근거 구절을 보자면




요일2:1 나의 어린 자녀들아, 내가 이것들을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죄를 짓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지어도 우리에게 [아버지]와 함께 계신 변호자가 계시니 곧 의로우신 분 예수 그리스도시라.

요일2:2 그분은 우리의 죄들로 인한 화해 헌물이시니 우리의 죄들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들로 인한 화해 헌물이시니라.

요일3:1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사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불리게 하셨는가. 그런즉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세상이 그분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라.

요일3:2 사랑하는 자들아,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들이니라.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되 그분께서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분과 같게 될 줄 아노니 이는 우리가 그분을 그분께서 계신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라.

요일5:1 누구든지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는 [하나님]에게서 태어났으며 낳으신 그분을 사랑하는 자마다 그분에게서 난 자도 사랑하느니라.

요일5:4 무엇이든 [하나님]에게서 난 것은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곧 우리의 믿음이니라.

요일5:5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누가 세상을 이기는 자냐?

잘못된 청지기들은 이러한 구절들을 무시하고 요일의 몇몇 구절을 떼어서 교회시대가 아니라고 설명하지만 분명히 신약 교회시대 시점을 시작으로 말씀하고 있다.

그럼에도 교회시대가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요일3:10 이로써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드러나나니 누구든지 의를 행하지 아니하는 자나 자기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느니라.

요일3:14 우리가 형제들을 사랑하므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간 줄을 우리가 알거니와 자기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 안에 거하느니라.

요일3:15 누구든지 자기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 속에는 영원한 생명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 너희가 아느니라.

"하나님께 속하지 않는다"
"사망안에 거하느니라"
"속에는 영원한 생명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 너희가 아느니라"

등을 놓고 앞뒤 문맥과 상관없이 교회시대 말씀중 이런 구절들만 특별히 교회시대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형제를 사랑하는 것을 통해 구원받는다]는 뜻으로 오해했기 때문인데

이 말씀은 형제를 사랑해서 구원받는다는 것이 아니라 그가 하나님의 사랑(복음)을 알았고 믿었다면 자연스레 형제를 사랑하는 모습이 나타남으로 정녕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믿어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형제임을 구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요15:17 내가 이것들을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은 너희가 서로 사랑하게 하려 함이니라.

요15:18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그것이 너희를 미워하기 전에 나를 미워한 줄 너희가 아느니라.

그런 해석을 뒷받침 하는 구절로는 요15:17~18이 있는데 이는 요17:1~4을 봤을때 그리스도께서 곧 대속하실 것을 아시고 요14:1에 말씀하셨듯 제자들이 근심하지 않도록 신약 대속후 있을 일들을 말씀하신 것이다.




요일3:13 내 형제들아,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이상히 여기지 말라.

그러므로 요일3:13,15 또한 우리에게 적용해야하며 자신이 하나님의 사랑(복음)을 알고 믿음으로 구원받은 형제라고 말하지만 그리스도의 지체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않은 [세상 사람]이라고 알 수 있는 것이다.




요15:19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 것을 사랑하였으리라. 그러나 너희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내가 세상에서 너희를 택하였으므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요3:14:15이 단순히 형제간에 육신의 본성으로 화가나서 다투거나 사랑하지 않는 수준이 아니라, 세상이 하나님을 미워함으로 그리스도인 형제를 미워하고 사랑하지 않는 것과 같은 상황을 말한다.




요일3:6 누구든지 그분 안에 거하는 자는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누구든지 죄를 짓는 자는 그분을 보지 못하였고 알지도 못하였느니라.

요일3:9 누구든지 [하나님]에게서 난 자는 죄를 범하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분의 씨가 그 속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라. 그는 [하나님]에게서 났으므로 죄를 지을 수 없느니라.

이 말씀은 거듭난 자에 관한 설명인데 그분을 알지도 못하였다는 것과 하나님에게서 났다는 것에 주목해야한다.

그분을 안다는 것은 복음을 믿었다는 것이고 그가 하나님에게서 났다는 것은 성령으로 다시 태어났다는 뜻이며 거듭난 자의 혼은 죄를 짓지 않으신 그리스도의 의로 옷입은 상태이다.




요일3:4 누구든지 죄를 범하는 자는 율법도 범하나니 죄는 율법을 범하는 것이니라.

요일3:5 그분께서 우리의 죄들을 제거하려고 나타나신 것을 너희가 알거니와 그분 안에는 죄가 없느니라.

예수님은 죄를 제거하셨고 그분안에는 죄가 없다.

고로 죄를 짓는 다는 것은 죄가 없으신 그분을 알지도 못함으로 그분에게서 나지도 않은 상태이기에 죄를 짓지 않으신 그리스도의 의가 전가되지 않은 상태를 말한다.

육은 육의 본성으로 죄인의 행위를 하고 징계를 받을 수 있지만 혼은 죄를 짓지 않으신 그리스도의 의로 옷 입었기 때문에 의롭다 여겨주신다.

이해하기 쉽게 말하자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자는 세상을 이겼다. 하지만 내가 한 것이 아닌 그리스도가 죄를 짓지 않으심으로 이기신 것이고 구원받으면 내안에 그리스도가 있으시기에 내가 세상을 이긴 것으로 해주신다.

만일 이 구절을 [육이 죄를 지으면 애초에 거듭나지 못했다] 라고 잘못 해석다면 어떤 육체도 구원받을 수 없다.




벧전2:16 너희가 자유로우나 너희의 자유를 악을 덮는 도구로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들로서 행하라.

율법을 다 지키시고 믿는 우리에게 의를 전가해주심으로 영원히 그리스도와 같이 죄를 짓지 않는 상태로 만들어 주셨다.

당연히 율법으로 죄를 인정 받지 않는다는 이 자유를 악을 즐기고 덮는 도구로 사용하면 안된다.




요일3:16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놓으셨으므로 이로써 우리가 그분의 사랑을 깨닫나니 우리가 형제들을 위해 우리의 생명을 내놓는 것이 마땅하니라.

대부분의 성도들이 이 말씀에 부담을 가질 것이다.

아무리 형제를 사랑한다고 해도 그 사람을 위해 내 목숨을 버릴 수 있는가? 라는 문제에 들어가면 모두 고개를 흔들 것 같은데 사도는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날 위해 목숨을 버리셨기 때문이고 이러한 희생과 긍휼이 사랑의 본질이라는 것

형제를 위해 목숨을 버리라는 것은 위험에 빠진 형제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대신 죽으라는 의미가 아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육신을 구하기 위해 죽으신 것이 아니라 혼을 구하기 위해 죽으셨다 따라서 형제의 혼을 위해 목숨을 버리라는 뜻으로 이해해야 하는 것이고 이러한 마음으로 형제의 혼을 위해 살라는 것이다.

형제의 혼을 살리기 위해 나의 모든 것을 내어 놓아도 좋을 정도로 혼의 문제는 중요한 것이며, 형제의 혼을 생각하는 것이야 말로 형제를 사랑하는 것임을 말하는 것이다.




요일3:17 그러나 누가 이 세상의 좋은 것을 가지고 있으면서 자기 형제가 궁핍한 것을 보고도 동정하는 마음을 닫아 그를 피하면 어찌 [하나님]의 사랑이 그 속에 거하겠느냐?

이 말씀 또한 형제의 궁핍을 보고 행위를 하지 않기 때문에 구원받지 못한다는 뜻이 아닌,

구원 받았다고 말하는 누군가가 좋은 것을 가지고 있으면서 자기 형제의 궁핍을 보고 마음을 닫아 그를 피한다면 정녕 그런자의 속에 하나님의 사랑이 거한 상태이겠느냐? 라는 뜻으로 해석한다.




요일3:18 나의 어린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요일3:19 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을 알고 또 그분 앞에서 우리의 마음을 확고히 하리로다.

그래서 17절이후 18,19절에 그런 진실함으로 행하자는 것이고 앞서 설명했듯이 진실하게 행함으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해있는 줄 안다는 것




요일4:6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은즉 [하나님]을 아는 자는 우리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아니하나니 이로써 우리가 진리의 영과 오류의 영을 아느니라.

요일4:7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인즉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에게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요일4:8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사랑이시기 때문이라.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하나님께 속한 자들은 하나님을 알기에 우리의 말을 들으나 하나님께 속하지 않는 자는 듣지 않을테니 그것으로 그의 속에 무슨 영이 들어있는지 안다는 것이다.

그러니 하나님께 속한 우리가 하나님께 속해있는 사랑을 하자는 것이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에 그들은 그리스도인 형제를 사랑하지 않고 미워한다는 해석이다.




사랑을 얘기할 때 자칫 초점을 사랑을 실천하는 것에만 둘 위험이 있지만 먼저 중요한 것은 사랑을 아는 것이고 세상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하늘의 사랑, 즉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예수님의 사랑을 아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이란 독생자 아들을 죄인된 우리를 위해 세상에 보내신 것이 아닌가?

그리고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그로 말미암아 사망에 처한 우리에게 새로운 생명을 얻게 하신 사랑이 아닌가?

이 사랑을 아는 사람들이 모인 것을 교회라고 일컫는 것이고 예수님의 크신 사랑에 온전히 마음을 빼앗긴 자들이 모인 것이 교회인 것이다.

이러한 교회에서 당연히, 마땅히 나타나지는 것은 사랑일 수 밖에 없을 것




그렇다면 예수님의 사랑에 점령당한 마음에는 무엇이 있겠는가?
나의 죄를 용서하신 은혜에 대한 감사가 가득 있지 않겠는가?

그 은혜를 드러내는 것이 사랑인 것이다.

나같은 죄인을 용서하신 사랑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형제를 만나는 것이 사랑이라는 뜻
그래서 교회로 모인 형제 들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또한 사랑이 그들 안에 있다면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다.

이렇게 은혜에 거하고 사랑에 거하는 자로 살아가는 사람을 보면 그는 하나님의 사랑이 속에 거하는 것을 안다.
그러므로 누군가가 사랑이 아닌 모습이 보인다면 그것은 곧 하나님의 사랑을 바라보지 않은 결과임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 앞에서는 모두가 용서 받아야 할 죄인이다.

그런데 하나님에 대해서는 자신이 죄인이라고 하면서 사람에 대해서는 의인으로 군림하려는 것을 많이 볼 수 있다.
특히 세상적 기준에서 나보다 못하다고 여겨지는 사람에 대해서는 그런 현상이 더욱 뚜렷하게 드러난다.

그래서 그를 무시하고 지배하려고 하게 되는 것.

이것이 곧 하나님의 사랑을 바라보지 않는 결과임을 사도가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가 [서로 사랑하라]고 말하는 것은 사랑을 실천하라는 요구로 이해하기 보다는 [너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바라보는 자로 살아가는가?]를 묻는 의도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즉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하는 사도가 진심으로 의도하는 것은 사랑의 행위로 구원받으라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사랑이 나타나고 증거되는 것에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




요일4:12 어느 때나 아무도 [하나님]을 보지 못하였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분의 사랑이 우리 안에서 완전하게 되었느니라.

이 내용을 보면 우리가 먼저 서로 사랑하는 조건으로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는 것처럼 여겨질 수 있지만
우리가 하나님을 볼 수 없기에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그리스도인에게만 가능함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그리스도인이 형제를 사랑하는 것은 그가 하나님께로부터 났음을 증거하는 증거물인 셈이라는 것




요일4:16 우리를 향해 [하나님]이 가지고 계신 사랑을 우리가 알았고 또 믿었나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므로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

요일4:17 이 점에서 우리의 사랑이 완전하게 되었나니 이것은 우리가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라. 이는 그분께서 어떠하신 것 같이 우리도 이 세상에서 그러하기 때문이니라.

그래서 12절 이후 16,17절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알았고 믿은 자는 사랑안에 거하는 것으로써 사랑이신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신다고 설명하신 것이다.




각 장의 핵심을 말해보자면

1장:기록한 목적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바르게 증거 하여 성도들로 주님 안에서 하나님과 참된 교제를 나누게 하는 데 있음을 밝힌다.

2장:하나님을 사랑하여 그분과 교제하기 위해선 그분의 계명을 지켜야 하고 세상 사람들처럼 육신의 정욕대로 행해서는 안 된다.

3장:하나님의 사랑안에 거하는 자녀들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닮아 가지만 마귀의 자녀들은 불법을 일삼는 일에 빠져서 옳은 일을 분별 할 수 없다.

4장: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사건을 부인하는 자는 이단임을 지적하며 그들을 경계 할 것

5장:요한은 마지막으로 자녀들에게 진실하게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그분의 계명을 실천하는 자임을 들어 믿음과 사랑의 불가분적 관계를 증거 하는 내용한다.





[결론]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되었다면 그 사랑이 나타나지는 것이 당연한 것이고, 그 사랑은 형제 사랑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이 형제를 사랑하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증거인 것인데 만일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사랑(복음)을 알았고 믿는다곤 말하나 그리스도의 지체인 형제를 미워한다면 그가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것이 아니라 헛되이 믿고 구원받은 형제가 아닌 것을 안다는 해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