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써둔거 올려봄
1. 감각적 확신은 직접지이며, 이것에서 출발해야 하는데, 일단은 그것이 가장 풍요로운 인식으로 현상하기 때문이다.
1.1. 감각적 확신은 가장 빈약한 진리로, 오로지 사물의 존재를 말할 뿐이다.
1.2. “개별자가 순수한 이것 또는 개별적인 것을 인지한다.”(94p)
1.3. 그러나 여기에는 이미 확신하는 자아와 그 대상인 사물이 구별되어 서로 매개되어 있다.
1.3.1. 이러한 구별은 감각적 확신 자체에 내재적이다.
2. “지금은 밤이다”라고 진술할 때, 이 지금의 의미는 시간에 따라 변하지만, “지금” 자체는 유지된다.
2.1. “지금은 낮이다”, “지금은 밤이다”라고 말할 때, 이 “지금”은 서로 다르지만, 동시에 유지된다는 것이다.
2.2. “지금”은 낮도 아니고 밤도 아닌, 부정성 일반으로 유지된다.
2.2.1. 달리 말하자면 낮과 밤과의 부정적 관계를 통해 규정된다.
2.3. 동시에 “지금”은 아무 때나 사용될 수 있다. 지금이 어느 때인지 “지금”은 상관없이 쓰인다. t1이든 t2든 t3이든 t1에서 지금은 t1이고 tn에서 지금은 tn이다. 즉 지금이 지시하는 바는 계속해서 변하는 동시에 모든 것을 지시할 수 있는 것이다.
2.4. 즉슨 “지금”은 보편적인 것이다.
2.4.1. 따라서 보편적인 것이 바로 감각적 확신의 진리이다.
2.5. “여기”도 사정은 똑같다. 나의 움직임에 따라 “여기”가 지시하는 바는 매번 바뀐다.
3. 그러므로 감각적 확신의 진리는 보편적인 것, 즉 순수한 존재다.
3.1. 이런 존재는 “순수함”이라는 규정을 가지고 있고, 따라서 직접적이지 않다.
3.2. 그런데 “여기”나 “지금”의 그 당장의 지시대상이 변할 때에도, “자아”는 유지된다. “여기”나 “지금”이 무엇을 지시하는지는 “자아”에 따라 바뀐다.
3.3. 문제는 그 “자아”도 보편적인 것이다.
3.3.1. 그러니까 “자아”가 무엇을 지시하는지는 사라지고, 자아-임만이 유지된다.
3.3.2. 그렇기에 개별적인 자아는 직접적으로 지시될 수 없다.
3.4. 개별자는 직접적으로 지시될 수 없다.
4. 개별자는 항상 다른 것에 매개되어 지시되기에, 외적 사물의 존재나 경험을 절대적인 진리로 내세울 수는 없다.
4.1. 야코비는 이 점에서 오류를 범했다.
4.2. 그리하여 감각적 확신은 “여기”나 “지금”의 단순한 모음인 보편적인 것을 직접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는 “지각”으로 이행한다.
5. 어째서 지각으로 이행하는가? 달리 말하자면, 이 이행은 감각적 확신 자체에 내재적이고 필연적인 것인가? 아니면 감각적 확신의 부정만이 내재적인 것인가?
5.1. 감각적 확신은 직접적인 것을 진리로 간주하는데, 이러한 계기로 하여금 그러하다.
5.2. 즉 감각적 확신에게 보편적인 것이 직접적인 것으로 드러났으므로, 감각적 확신은 보편적인 것을 직접적인 것으로 여기게 되는 것이며, 이것이 바로 지각으로의 이행이다.
5.3. 달리 말하자면 감각적 확신은 지각에 지양되어 있는 것이다.
변증법적 탈세
헤겔 보면 글쓰기 방식부터 이미 변증법적인데 어떻게 이를 체득하고 자유자재로 썼는지 참 신기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