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마르크스를 그리고 헤겔을 위해 이 책을 읽었다. 이들과 스피노자에게는 최소 헤라클레이토스 까지 올라가는 일종의 범신론적 전통이 존재하는데, 세상만물의 전 변화를 지배하는 어떤 법칙 혹은 존재가 존재하고, 거기서 개별자들이 산출된다는 것이다. 신플라톤주의식으로 말하자면 일자의 유출이다. 에티카의 전반부는 이러한 형이상학, 즉 실체가 있고, 그 실체에서 기하학적 질서에 따라 개별자들이 산출 - 존재론적으로 연역된다고 해도 되지 싶다 - 된다는 형이상학에 바쳐진다.
스피노자의 형이상학은 척 보기에는 혼란스럽지만 나는 스피노자의 주장을 이렇게 이해하고자 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존재 자체가 가지는 법칙을 따라야 한다고, 그리고 존재하는 모든 것은 존재인 이상 존재의 일원론이 성립한다고. 관념이든 물질이든 존재하는 것이기에 존재 자체가 가지는 내적 법칙을 따라야만 한다고. 매우 사후적이고 또한 강력한 논변으로 보인다.
그런데 문제는 개별자들이 어떻게 실체에서 산출되는가에 있다. 스피노자는 그것이 기하학적 질서를 따른다고 말하는데, 관념이든 물질이든 동일한 질서에 따라 산출되기에, 결과적으로 둘이 산출된 결과는 항상 일치한다는, 이른바 심신평행론이 성립하게 된다. 이는 인식론적으로는 관념과 대상을 어떻게 일치시키냐는 문제에 대한 응답이기도 하지만, 동일한 질서를 따르는 것으로 둘을 섞어놓아 일원론을 세우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3~4부는 좀 노잼인데, 이러저러한 정서들의 정의와 설명에 스피노자가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윤리학에 별 관심이 없어서 노잼이었던 거고, 윤리학에 관심이 있다면 꿀잼일 수도 있겠다. 다만 여기서 인상깊었던 부분은 스피노자가 인간은 자기 자신의 보존에만 관심을 둔다는 개인주의적인 입장을 취하는 동시에, 그 특유의 자유개념으로 하여금 개별 인간의 이익은 궁극적으로 일치한다는 논조를 취하는데, 부분은 전체의 일부이기에 부분에서 전체를 볼 수 있다는 식이었다. 개별 인간은 개별적인 법칙을 따르지만, 그 개별적인 법칙이 전부 동일하기에 결론적으로 일치를 이룰 수 있다. 라고 말은 하지만 사실 이 부분은 반쯤 드르렁 하면서 읽어서 잘 모르겠다.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자유 개념인데, 스피노자는 필연론을 받아들이는 동시에 자유가 가능하다고 말한다. 여기서의 자유는 자유의지와는 다르다. 스피노자에게 자유란 필연으로서의 자유이다. 자유란 어떤 개체가 그 내적 법칙에 따라 운동함을 말한다. 그런데 그 내적 법칙이란 합리적인 기하학적 질서이다. 예를 들어 물체 A가 10의 속도로 운동하기로 되어 있다고 하자. 다른 물체가 부딛혀 물체 A의 운동을 방해한다면 그것은 부자유이지만, 물체 A가 원래대로 운동한다면 그것은 자유이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나에게는 이것이 자유란 합리적이고, 추론가능한 대상이라는 논변으로 느껴졌다. 이것을 정치철학에 적용하면 매우 흥미로운 결론이 나오지 않을까? 나의 정치성향은 원래 아나키즘에 상당히 가까운 편이었는데, 에티카를 읽으면서 마르크스주의 쪽으로 좀 기울어졌다. 물론 소련 체제에 대한 평가는 여전히 글쎄올시다이지만. 결정론을 받아들인다면 스피노자식의 자유 개념을 받아들이는 것이 수미일관한 결론으로 보인다.
그 밖에도 스피노자는 실체에서 개물이 산출되는 것에 대해서는 많이 말하지만, 헤겔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그 개물로 하여금 실체가 표현되고 또 제약되는 측면에 대해서는 설명이 부실한 것이 아닌가 싶다. (이 부분은 역설적으로 들뢰즈를 읽어봐야 할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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