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 경쟁의 초기 선두주자는 제3제국이었다. 뛰어난 물리학자와 화학자 상당수가 유대계 선조를 가진 탓에 나치를 피해 유럽을 빠져나갔지만, 그래도 다수는 여전히 독일에 남았다. 독일은 또 전쟁 초반에 미국으로 실려간 분량을 제외한, 벨기에의 광산 업체 위니옹 미니에르가 콩고에서 추출한 고농도 우라늄 재고 전부를 장악했다. 물리학자 베르너 하이젠베르크는 중수를 감속재로 사용하는, 독일인들이 “우라늄 장치”라 부르던 원자로를 열심히 개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독일의 원자력 계획은 과학자들의 내분과, 전쟁에서 승리하기 전에 쓸만한 핵무기가 완성되리라고는 믿지 않은 나치 고위 당국자의 무관심으로 그 잠재력을 잃어버렸다. 그런데도 필요한 모든 요소는 독일에 있었으며, 진격하는 미군과 소련군 사이의 무인 지대에 끼어있었다.
그로브스 장군은 독일의 원자력 연구 성과를 서둘러 긁어모아야 한다는 일념에 알소스Alsos라는 암호명의 정보 부대를 만들었다. 이 부대는 러시아 내전에서 적군과 싸운 백계 러시아인 망명자 가문의 저명한 자손이자 성격이 불 같은 보리스 패시가 이끌었다.
1944년 후반 스트라스부르의 버려진 독일 물리학연구소에서 문서가 대량 발견되자 패시와 그의 부하들은 현장으로 달려갔다. 패시는 곧바로 원하던 것을 발견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한 미국인 조사관은 이 당시 “이틀간 눈이 아플 때까지 문서를 검토”했다고 회고했다.” 해당 문서는 알소스팀에 독일의 원자력 연구가 실패했음을 알려주는 지침서였다.
알소스팀의 조사 목록 상위에 있던 것 중 하나는 우라늄 광석을 금속으로 정련하는, 베를린에서 북쪽으로 24킬로미터 떨어진 오라니엔부르크의 아우어 화학공장이었다. 오라니엔부르크가 소련군 점령 예정 지역 깊숙이 있었기 때문에 미군이나 영국군이 먼저 들어갈 방법은 없었다. 이 공장을 파괴할 유일한 방법은 항공 폭격이었다.
오라니엔부르크는 폭탄 1784톤과 소이탄 세례를 뒤집어썼다. 스패츠는 표적이 “완파”되었다고 보고했다. 표면상 폭격의 대상은 독일이지만, 알소스팀은 이 시점에서 이미 독일의 원자력 연구가 당면한 위협은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했다. 이 작전의 진짜 목적은 소련에 우라늄을 주지 않으려는 것이었다.
알소스팀이 압수한 문서에 따르면 벨기에령 콩고에서 온 우라늄 원광의 가장 큰 재고는 독일 북부 도시 마그데부르크 주변에 있는 슈타스푸르트의 공장에 감춰졌다. 오라니엔부르크와 마찬가지로 슈타스푸르트도 앞으로 소련 점령지가 될 곳에 있었지만 서방연합군과의 경계선에 가까워 우라늄을 향해 서둘러 달려갈 수도 있었다. 미군 장교들은 알소스팀이 이 지역으로 들어가면 생길 “러시아와의 온갖 말썽”을 예상했지만 제12집단군 사령관인 오마 브래들리는 이를 무시했다. 아직 미군과 소련군이 엘베강에서 만나기 전이었다. 부하들이 의견을 묻자 브래들리는 이렇게 쏘아붙였다.
“러시아 따위 신경쓰지 말라고.”
4월 17일, 알소스팀은 슈타스푸르트 인근 소금광산에서 우라늄 원광 1100톤을 발견했다. 우라늄은 벽이 없는 오두막의 나무통에 담겨있었다. 많은 통이 썩거나 뜯겨서 개봉되어있어 오랫동안 그 자리에 있었음을 암시했다. 은회색 기운이 감도는 우라늄 석판을 다른 곳으로 옮기려면 재포장해야 했다.
미국인들은 주변 마을에서 적당한 포장재를 찾고 골판지상자를 만들던 공장도 발견했다. 상자를 포장하는 데 요긴할 철사를 만드는 공장도 찾았다. 4월 19일까지 독일인 강제노동자 수백 명이 광석을 재포장하고 트럭에 실었다. 그 뒤 3일 밤낮 동안 우라늄 2만 통이 수백 킬로미터에 걸쳐 영국군 점령 지역 깊숙한 곳에 있는 하노버의 공항 격납고에 입고됐고, 결국 배와 항공기로 영국에 옮겨졌다.
1943년 3월 이후 맨해튼 계획에 대한 정보가 스탈린과 베리야에게 지속적으로 흘러들었다. 나치독일과의 실제 싸움 대부분을 치르는 소련이 원자폭탄 비밀을 공유할 가치가 있다고 믿는 미국·영국 내의 스파이와 공산당 동조자들이 정보원이었다. NKVD는 이 정보를 소련이 갓 시작한 원자폭탄 계획의 책임과학자인 이고르 쿠르차토프에게 넘겼다. 쿠르차토프는 해당 정보를 토대로 휘하 연구자들에게 새로운 개발 방향을 제시하되, 자신이 그 탁월한 통찰력을 어디에서 얻었는지는 비밀에 부쳤다. 이 턱수염이 난 물리학자는 “조국과 과학에 이루 헤아릴 수 없이 중요한” 정보의 가치에 처음부터 놀랐다. 꾸준히 들어오는 비밀정보는 소련 과학자들에게 서방 측 과학자들이 시간을 허비해야 했던 수많은 시행착오를 피할 수 있게 했다.
제3제국이 무너지자 NKVD는 독일 원자력 계획의 폐허에서 뭐라도 건져보기 위한 자체 특별 탐색 부대를 편성했다. 이 원자력팀은 이미 독일의 공장 설비를 해체해서 소련으로 싣고 가는 전리품여단을 본떠 만들었다. 이들은 미국의 알소스팀과 매우 흡사하게 작전을 실행했다. 라이벌보다 먼저 정보를 모으고, 독일 과학자를 붙잡은 뒤 의심가는 독일 핵 관련 시설들을 샅샅이 조사했다. 소련이 보기에 가장 중요한 전리품은 우라늄이었다. 미국이 이미 추측했듯 소련의 우라늄 재고는 매우 적었다. 우라늄이 더 없으면 러시아제 원자폭탄 제조는 불가능했다. 런던에 있는 스파이들 덕분에 소련은 나치가 벨기에령 콩고에서 운반된 대량의 우라늄을 “독일 동부 지역”에 보관 중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주코프가 베를린을 함락하고 바로 다음 날인 5월 3일, 러시아 과학자 30명이 NKVD 장성 한 명과 함께 “독일 동부 지역”에 비행기로 도착했다. 기밀 유지를 위해 NKVD 대령 복장으로 위장한 저명한 물리학자 다수가 동행했다.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유학하고 최초의 소련 원자폭탄을 설계한 물리학자 유리 하리톤은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했다. 쿠르차토프 연구팀의 최고선임자이기도 한 하리톤은 자기 머리 사이즈보다 훨씬 큰 군모를 쓰고 있었다. 다행히도 귀가 워낙 크다 보니 모자가 얇고 학자풍인 머리 절반을 다 집어삼키는 꼴은 면할 수 있었다. 베를린에 도착하자 하리톤을 비롯한 “대령들”은 달렘 남서쪽 외곽에 있는 카이저 빌헬름 물리학연구소로 곧바로 달려갔다. 흰색 3층 건물의 폐허 속에서 그들은 독일 원자력 계획의 청사진을 발견했다. 독일은 원자폭탄 개발에서 미국은 둘째 치고 소련보다도 훨씬 뒤쳐졌다. 하이젠베르크를 포함한 핵심 과학자들은 2년 전 장비 대부분과 함께 하이겔로흐로 피신했다. 이 매우 귀중한 문서에 더해 러시아 물리학자들은 연구소에서 “수도꼭지, 문손잡이, 세면대까지 포함해 남아있는 모든 것을 뜯어”갔다. 달렘 지역은 베를린의 미군 점령 지역에 포함될 예정인지라 서둘러야만 했다.
“대령들”은 소그룹 몇 개로 나뉘어 소련군의 독일 점령지 안에서 원자폭탄 제조와 관련된 물건을 찾아 헤맸다. 이들은 미군이 먼저 소련 점령 지역 내에 있는 슈타스푸르트의 가장 중요한 우라늄 은닉분을 가로챈 데 격분했다. 이 때문에 노획한 문서와 독일 과학자를 취조해 얻은 정보를 토대로 더 적은 양의 우라늄 은닉분을 추적해야 했다. 마치 나라 전체를 가로지르는 범인 추적처럼 보였다.
하리톤은 포츠담의 한 공장관리인을 심문한 끝에 노이슈타트라는 도시에 우라늄 수백 톤을 은닉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불행히도 독일에는 같은 이름의 도시가 20곳이나 있었다. 소련군이 점령한 독일 동부에만도 열 곳이나 있었다. 하리톤팀은 베를린 북서쪽으로 240킬로미터 떨어진, 소련군 점령 지역에 있는 노이슈타트 암 글레베를 방문할 때까지 나머지 아홉 곳을 모두 들러야 했다. 마침내 마지막 노이슈타트에서 가죽무두질 공장 창고에 보관된 가공 산화우라늄 100톤을 발견했다. 이것만으로도 하리톤과 쿠르차토프는 1946년 12월까지 소련 최초의 흑연 감속 우라늄 원자로를 건설할 수 있었다. 1945년 5월 이전까지 소련이 보유한 산화우라늄은 많아야 7톤을 넘지 않았다.
그사이 NKVD 대령으로 변장한 또 다른 물리학자 게오르기 플레로프는 3월에 미군이 폭격한 오라니엔부르크의 우라늄 처리 공장을 맡았다. 쉽게 흥분하고 군모 아래에 놀랄 만큼 너저분한 검은 머리를 감춘 플레로프는 소련 원자폭탄 계획의 아버지 중 하나였다. 플레로프는 1942년 4월 스탈린에게 편지를 보내 미국이 핵무기를 연구 중인 것이 확실하다고 경고했다. 이 편지를 쓸 때만 해도 29세의 공병 장교로 전선 주변에서 복무 중이었고, 그 어떤 비밀정보도 입수할 수 없었다. 플레로프는 이 놀라운 통찰력을 ‘감’으로 얻었다. 지역 도서관에서 미국의 물리학 학술지를 읽던 플레로프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주 보이던 핵분열 관련 기사가 없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미국과 영국의 대표적인 핵물리학자들이 연구 결과 발표를 중단했고,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분명했다. 과학자들이 군 극비 프로젝트에 영입된 뒤 입막음을 당했다. 이것은 셜록 홈스 이야기에 나오는 “짖지 않는 개”(말이 도둑에게 끌려나갈 때 감시견이 짖지 않은 이유는 도둑과 안면이 있기 때문이라는 추론-옮긴이)와 맞먹는 과학적 추리였다.
플레로프는 자신의 조사 능력을 동원해 우라늄 원광 처리 전문 회사인 아우어 사의 최고 과학자를 추적해나갔다. 나치 항복 직후인 5월 중순, 플레로프는 니콜라우스 릴이 베를린 외곽 별장에 있는 것을 발견하고 “며칠간” 과학 관련 토론을 하자고 초청했다. 릴이 나중에 기록했듯이 이것은 “10년간 지속된 며칠”이었다. 뛰어난 연구시설과 생활환경을 약속받은 데 더해, 거절했다간 무슨 일이 생길지 겁이 난 독일 과학자 수십 명은 “반쯤 자청해서, 반쯤 강제로” 소련 원자폭탄 계획에 참가하기로 했다. 비록 서부 독일에서 알소스팀이 모은 과학자들만큼은 아닐지라도, 동부 독일의 과학자들 중에도 뛰어난 핵물리학자와 기술자들이 있었다. 릴은 흑해 연안의 휴양도시 수후미에 있는 우라늄 처리 연구소의 책임자가 되어 스탈린이 죽은 지 2년 뒤인 1955년에야 독일에 귀국했다. 독일을 떠나기 직전, 릴은 플레로프를 비롯한 “대령들”을 3월 15일에 미군이 폭격한 오라니엔부르크의 아우어 공장으로 데려갔다. 당시만 해도 이 폭격을 릴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오라니엔부르크 공장은 언제 무너질지 모를 정도로 악화된 독일의 전쟁 수행 능력에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릴은 새로운 러시아인 동료들이 폐허를 탐욕스럽게 헤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문득 그 엄청난 폭격의 목적을 깨달았다.
“폭격은 독일을 상대로 한 것이 아니었어. 소련을 상대로 한 거지.”
조사 결과 B-17 플라잉포트리스 폭격기와 B-24 리버레이터 폭격기는 사실상 완벽한 승리라는 주장에도 불구하고 가장 중요한 임무 완수에 실패했다. 공장 자체는 파괴됐지만 고순도 산화우라늄 약 100톤은 멀쩡했다. 우라늄은 즉각 포장되어 모스크바로 실려갔다. 노이슈타트에서 하리톤이 노획한 우라늄과 합치면 이제 러시아인들은 시험 원자로에 더해 완전한 규모의 플루토늄 생산 원자로까지 만들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우라늄을 손에 넣었다. 쿠르차코프는 나중에 유럽의 종전 직후 독일에서 발견한 우라늄이 소련의 “원자폭탄 개발을 1년 앞당겼다”고 회고했다.
-알라딘 eBook <1945> (마이클 돕스 지음, 홍희범 옮김) 중에서
???: 공장이 소련 점령 예정지에 있어? 그거 폭격으로 묻어버려. 우라늄이 소련 점령 예정지에 있어? 선수쳐서 다 빼와.
###: 미국 놈들이 선수쳤네? 노이슈타트? 그건 또 왜 그렇게 흔한 도시명이야? 아이고, 미국아 폭격으로 다 갈아엎어야지 여기 우라늄이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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