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무엇을 위하여 로하스를 처형하라는 사물 명령(군령의 사유화)을 내렸으며, 무엇 때문에 포로를 전원 사살하라는 ‘거짓 최고 통수부 명령’이 나온 걸까. 그리고 왜, 그 참모(작전의 신)가 전선을 돌아다니며 ‘전부 죽이라’고 독려(바탄반도 생포 미군포로 모두 죽이라던 거)하기 무섭게 부관이 쫓아다니면서 그의 말을 취소하고 다니는 소동까지 피워야 했을까.


이건 도대체 무슨 상황일까. 어째서 이런 사태가 일어난 걸까. 아니, 도대체 이런 사람들이 항상 유지해온 ‘권력’의 수수께끼는 무엇일까. 한마디로 하면, 일종의 허구세계로 사람들을 끌어들여서 그 세계를 현실이라고 믿게 만드는 이상한 연출력이다. 그리고 이런 연출력을 가능케 하는 것으로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 연기력의 기초가 되는 것으로 ‘기백’이라는 기묘한 단어다. 아무런 의욕이 없는 병사라도, 전신에 긴장감을 주면서 정맥이 드러날 만큼 큰소리로 말하고, ‘기계인형’처럼 절도 있고 똑 부러진 동작으로 연기하듯이 과장된 군인 제스처를 하면 그것을 ‘기백’이 있다는 증거로 여겼다. 따라서 상관 앞에서 이런 연기를 정교하게 하는 것이, 소위 군인들이 말하는 ‘군대는 요령이다’라는 말의 대부분을 차지했다.(기백 = 위장군기)


츠지 마사노부와 관련된 많은 에피소드를 보면 그가 ‘기백 연기’ 및 이를 기반으로 한 연출에 있어서 천재적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로하스를 처형하라든가 포로 전원을 죽이라는 등의 억지스럽고 난해한 과제 중 대부분은, 어느새 습관화된 허구적 ‘기백 과시’를 위한 자기 연출이었다. 이런 연출은 하나의 표현이기 때문에 곧 매너리즘에 빠진다. 그러면 이를 타파하고자 과대 표현이 등장하고, 또다시 매너리즘에 빠지면서 좀더 과대해지기를 반복한다. 과대화는 중독 환자들에게 있어서 마약과도 같이 늘어나면서 결국에는 본인이 먼저 하지 않으면 정신적 안정을 얻을 수 없는 상태의 비정상인이 되어간다.


사실 전선 부대에서는, 몇만 명을 학살하건 간에 어떤 책임도 지지 않을 기백 연기자를 대처하는 일이, 적에 대처하는 일 이상으로 엄청나게 어려운 것이었다. 특히 부대 본부 소속으로 사령부와의 연락망을 담당하던 장교의 경우, 이런 부류의 참모와 절충하는 일은 문자 그대로 신경이 완전히 소멸되고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로 힘든 일이었다.

-알라딘 eBook <어느 하급장교가 바라본 일본제국의 육군> (야마모토 시치헤이 지음, 최용우 옮김) 중에서

작전의 신은 사실 센 척하는 연기의 신이기도 했음.
\"군인이 안된다는 게 어디 있어. 해내란 말이야!\"
\"난 그런 명령을 내린 적이 없네만?\"